장마 때라서 인지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아파트 창가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98년의 겨울을 생각한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겨울 비 치고는 여름 장마철처럼 굵은 비가 내리던 그날
나는 북창동 뒷골목 어느 막걸릿집에 앉아서
씨답잖은 안주거리와 양은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세상 고민을 다 끌어안고 있는 양
술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는 IMF 시절이 왔다 고 했다.
IMF가 무엇인지 몰라서
친구가 집을 샀는데 "집값이 오를까" 걱정했고
쥐뿔 모르는 나는
"부동산은 변할 수가 없지" 나름 큰 소리쳤다.
임원급 명함을 뿌리면서
잘 나가는 신문사에 다닌다고
어깨에 힘을 좀 주고 다녔는데
IMF는 냉정하게
인사명령 종이 한 장으로 책상도 명함도 다 앗아가고
마지막 남은 어깨 힘마저도 가져갔다.
후배들이 위로를 한 답 치고 마련한
북창동 뒷골목 막걸리 집에서
못 먹는 술을 마시며
한탄스러운 세상을 씹었던
그날
북창동 뒷골목에는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어둠 속에서 화려한 간판 불빛 밑으로
술에 취해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식당에서 퍼저나 오는 퀴퀴한 냄새를 타고,
흘러나오는 가라오케 음악소리와 함께
불빛에 빗방울이 아른거리며
꿈결같이 비가 내렸다.
푸른 막걸리 병이 쌓여가고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그득할 즈음
그렇게 씹던 이야깃 거리도 떨어져서
후배들은 한놈, 두 놈 떠나가고
나는 혼자 남아서
벌건 얼굴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왠지 모를 상념에 술잔을 들고
알 수 없는 허무에 노래를 불렀다
빗속에서 시퍼런 가슴을 적셔가며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나가는 자동차에 물세례를 받던
그날은
5인 가족이 딸려있는 마흔두 살 가장의
비 내리는 겨울밤이었다
그해 98년의 겨울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