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미술 심의를 마치며
공공예술 심의가 있었다. 3번째 심의였다. 결과는 다시 한번 부결이었다.
서울시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엔 작품 제안에서 1심이 부결되면 2심부터는 작가나 대행자가 직접 심의위원들에게 발표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주주총회가 늦어지면서, 심의에 2번 떨어지면서 어느새 준공 예정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작품이 완성되지 않으면 준공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거대한 자본이 움직이는 건축에 있어 하루에도 붙는 이자를 생각하면(내가 시행사 관계자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심의는 광화문에서 있었다. 중구와 종로구가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곳으로 서로 포기하지 못했다는 건물로 처음 들어갔다. 20층에 올라서 심의 현장에 도착하니 창 밖에 웅장한 경복궁과 북악산이 정면으로 내려다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이 시렸다. 지난 몇 년간 심사자의 역할을 하다 심사 대상이 되니 오랜만에 떨림이 다시 찾아왔다. 무거운 떨림이었다.
3분의 짧은 시간, 준비한 발표에서 70% 정도의 내용을 전달했던 것 같다. 발표를 마치니 세 가지의 질문이 나왔다.
청년 주택에 설치될 작품이다. 왜 역동적이지 않냐
작품이 설치될 공간이 너무 비좁지 않냐
불가살이에 대해 찾아보니 부정적인 의미의 괴수이다. 청년 주택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의에 제안한 작품은 2018년에 그렸던 '산림동 불가살이 부가전'이라는 그림책의 표지에 그려진 '아기 부가'의 모습을 입체 조형물로 만든 작품이다. '부가'는 '불가살이不可殺'를 모티브로 초성 ㅂ,ㄱ을 따와 가마솥을 상징하는 '부釜'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가佳'를 합쳐 지어진 이름이다. 사람을 배불리 먹이는 아름다운 쇠 솥이라는 뜻을 담았다.
불가살이에 대한 여러 설화가 있지만 일제강점기 한영선 작가의 작품 속 불가살이는 쇠를 먹고, 끊임없이 자라고, 외적을 물리쳐 백성을 보호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해 고려가 가진 사회 문제를 개혁하는데 도움을 준 괴수로 기록되어 있다.
'부가'의 이야기는 그곳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려말에 백성을 구한 불가살이가 어딘가에 잠들어 있었다면, 그곳이 을지로가 아니었을까. 을지로의 철공소 마을을 보고 있자니 불가살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 계속 모여드는 동네
경제와 예술아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동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 준 동네
몇몇 행정가들과 개발 업자들의 손으로 재개발을 해서 전부 철거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동네
산림동에 여전히 남아 있는 길목, 가옥, 발굴 유적등을 통해 조선 초부터 임진왜란,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에 이르는 부가의 서사를 그려나갔다.
다시 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심의가 끝나면 심의위원들의 논의가 회의록으로 작성되고 공개된다. 20명에 가까운 심의위원들이 다수결로 내린 결과는 부결(불합격)이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꽤 재미있다. 다음은 1심에 제안한 부가 입상에 대한 회의록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긍정적인 의견>
- 반추상에 가까운 상징적인 조형성과 강한 양감이 주변 환경에 활력을 줌
- 부드러운 형태와 자연스러운 색감
- 흥미로운 조형성과 구현하는 소재에 대한 작가의 동기
- 지역의 장소성을 고려하여 창작을 진행해 온 작가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청년 주택 공간에 재미와 생기를 부여함
<부정적인 의견>
- 작품의 형태 및 컬러가 공간과 부조화되며, 모호하고 둔탁한 표현방식
- 컨셉, 조형과 비비드한 컬러의 괴리감
- 작품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워 시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난해한 작품
- 형태의 둔탁한 표현을 세밀한 표현으로 개선하면 좋겠음
- 구조물을 이루는 소재형식에서 공간 예술적 의미가 부족함
- 청년 주택으로 보다 활기차고 다층적인 개념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함
동일한 내용이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이 동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공공예술 작품의 설치 여부가 결정된다.
제8차로 열린 심의에서 받았던 질문을 돌아본다. 멍청한 질문과 멍청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답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질문 01. 청년 주택에 설치될 작품이다. 왜 역동적이지 않냐
대답 01. 본 작품은 부가전 책 표지의 아기 부가의 모습을 입체 조형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철을 먹는다는 부가가 어릴 적 벼가 그려진 50원을 쪽쪽이처럼 빨고 있는 모습입니다. 본 건물은 청년주택입니다.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청년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를 위한 건축물입니다. 계속 성장해 나갈 아기 부가의 모습이 입주자들이 이 건물에서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과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땡!
나는 답을 하지 말고 그녀에게 물었어야 했다. "왜 청년주택에 설치될 작품은 역동적이어야 하죠?"
질문 02. 작품이 설치될 공간이 너무 비좁지 않냐
대답 02. 본 작품이 설치될 건물은 애초에 공공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을 계산에서 누락했던 건물입니다. 때문에 작품이 여유롭게 설치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채 설계가 되어 더 넓은 공간을 찾거나 옮기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최대한 환경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본 작품의 아기 부가는 건물에 등을 기댄 형태로 설치될 예정입니다. 건물 자체가 기대어 살 수 있는 등받이가 되어주는 형태로 설치하고자 합니다.
흠,,
뭐 이 대답은 최선이었다. 실로 작가의 마음과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질문 03-1. 불가살이에 대해 찾아보니 부정적인 의미의 괴수이다. 청년 주택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답 03-1. 불가살이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제가 처음에 불가살이를 알게 된 것은 창 밖에 보이는 경복궁에서였습니다. 중전이 살았다는 교태전 뒤엔 아미산이라는 정원이 있습니다. 그곳 굴뚝엔 불가사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불가살이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기호로 오랜 시간 쓰여 왔습니다. 이성계를 도와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질문 03-2. 불가살이는 요괴이다. 백성을 괴롭히고 왜적의 편에서 침략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에 청년 주택에 맞는다고 생각하냐.
대딥03-3. (아니 도대체 뭘 보고 오신 거지..?)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불가살이는 이성계를 도와 왜적을 물리쳐 백성을 보호한 이야기 있습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준 상징으로 근대 문학에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 맥락에서 그림책을 만들고 본 작업을 만들었습니다.
질문 03-3. 이순신 장군을 도와서 왜적을 물리쳤다고 해도 이런 요괴가 집 앞에 만들어지는 건 좋지 않아 보인다.
대답 03-3. 이순신이 아닌 이성계 임을 말씀드리며, 요괴가 집 앞에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성장하고 함께 살아가는 상징으로 불가살이를 모티브로 삼을 작품을 설치하고자 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땡!
불가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부가는 모티브를 불가살이에서 따온 것이지 불가살이가 아니다. 심의위원이 이야기한 불가살이는 부가가 아니며, 심지어 불가살이는 실존하는 생명이 아니며, 역사 속에 실존했던 멸종된 동물도 아니다.
앞서 있던 작품을 재해석해 시대상을 담아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지난 예술사에서 계속 있어왔던 일이다. 불가살이는 여러 강한 동물들의 모습을 합쳐 만들어진 상징이다. 심의위원이 공부했다고 이야기한 불가살이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불가살이였는지 알 수 없으나 어떤 시대의 모습을 담아 화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것 중 하나인 것이다. 아니, 심의위원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불가살이었을지 모른다. 여하튼 그 자리에서 그분의 관념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그 관념 안에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문화예술진흥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문화예술교육의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국가의 문화 역량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예술진흥법'과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의 목적은 위와 같다. 문화예술은 제1조(목적)이라는 큰 토양 위에 공공이라는 이름도 존재한다.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우리 사회는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해야 한다. 또,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 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 향상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은 곧 국가의 문화 역량이 강화됨을 뜻한다.
그렇다면 공공예술은 지금 어디에 서있을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공예술의 형태로 도시의 일부가 예술로 채워졌었다. 그곳에서 예술은 치장으로 기능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를 해석해 화두를 던지고, 일상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도시에 쌓인 이야기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줬다.
건축조형물은 공공미술작품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대답이 어떻더라도 심의는 떨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멍청하게 망하진 말았으면 좋았을걸.
광화문 사거리 나무 그늘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세 번째 질문에 말려든 것이 원통했다. 다시 올라가 심의회의장 문 앞까지 갔었으나, 안에서 토론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갈지, 고민을 하다 돌아 나왔다. 회의 소리를 몰래 엿듣다 들어오는 모습처럼 읽히고 싶진 않았다.
'부가'는 항상 만들고 싶었던 친구였다. 애틋하게 오래 떨어져 있다 이번 일로 다시 만났다. 기왕 활시위를 당겼으니 아기 때 모습부터 다시 곱씹어 보며 작업해보려 한다.
'청년주택은 10월 말이 준공 예정일이다. 때문에 더 이상 조형물 심의를 진행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시행사와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해봐야겠다.
그럼, 멍청함들 안녕
심의는 부결 되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꼼꼼하게 챙겨주신 서울시 주무관님과 아낌 없이 조언해준 선배님들께, 함께 고민해준 작가님들께, 힘이 되어준 친구에게 감사와 죄송함을 전합니다.
· 미술작품 심의위원회, 서울시 : opengov.seoul.go.kr/proceeding
· 괴물의 원조 불가살이, 네이버 케스트 : terms.naver.com/entry
· 불가살이 전, 한민족문화대백과 :terms.naver.com/e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