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누군가의 발판이 되어주는 곳

by 청두

몇 년 전 방산시장 안, 좁은 복도에 생긴 작은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래서'. 많은 이유와 공감의 의미를 담은 듯한 책방의 이름이었습니다. 좁은 사무실과 창고가 줄지어 있는 좁은 복도 사이에 있는 서점을 보며 어떻게 이곳에 서점을 만드셨을지,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했습니다.


이후, '그래서'에서 여러 작가들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나갔다는 소식을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래서'를 운영하시는 선생님 두 분을 다시 만난 것은 올해 초 중구문화재단이 주최한 지역 예술가들의 모임에서였습니다. 그 자리를 이끌어 주시는 두 분은 평어를 사용하며, 함께하는 이들이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이후 그간 '그래서'가 해오던 일들을 조금씩 알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을 마무리하며, '그래서'의 이야기를 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환영할 수 있게 해 주고, 내가 남긴 것을 누군가가 다시 쓸 수 있게 해 주고, 자신의 부족함에 좌초되지 않도록 새로운 성장을 건네는 곳. 한 해를 닫고 새 시작을 준비하는 지금, 환대와 성장을 실천해 온 두 분의 이야기는 더 시의적절해 보입니다. 누군가의 발판이 되어주는 곳 '그래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그래서 이야기

기획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그래서 로고@4x.png






그래서 이야기



안녕하세요. 두 분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현행 : 직업이나 이런 걸 다 떼고 나를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적어 봤어요. 진심, 진실, 진리를 아름답게 전할 때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저는 세상이나 사람을 이해하는데 가장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더해질 때 감동을 해요.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싶을 때 그 사람의 진심이 전해져서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될 때, 그런 그 순간이 어떤 아름다움이 더해진다면 저는 그 순간을 가장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에서는 책을 읽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책을 나누고, 기획하고, 진행하는 걸 담당하고 있어요. 그 외에 주현이 싫어하는 건 다 제가 해요. 주현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도록.


주현 : 작고 사소한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별거 아닌 것들이 아주 멋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사람의 사소한 습관이 멋있는 책이 됐을 때, 그럴 때 마음을 확 뺏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제 주변에 있는 이런 작은 것들이 멋있는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제본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에서는 ‘워크룸’ 운영을 하고 있고요. 재미있는 일은 제가 먼저 달려들어서 하고, 꼭 오래 해야 되는 지속적인 일을 현행에게 맡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락을 담당하고 있어요. 제가 모든 연락처와 소통을 담당하고 있고, 더불어 재정을 담당하고 있어요.


책방을 운영하셔서 일까요. 소개를 들어보니 세상을 아름답게 보시는 눈을 가진 분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뻐하면서 귀한 모습을 발견해 주시는 두 분을 만나면, 발견당한 사람은 매우 행복할 것 같아요.




‘그래서’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려요.


현행 : ‘그래서’는 책방과 더불어 전시실, 공유 작업실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냥 ‘그래서’라고 대외적으로 표기하고 있어요.


주현 :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 방산시장의 작은 문화 공간이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책방’, ‘쇼룸(전시실)’, ‘워크룸(공유작업실)’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글쎄요, 정리를 해보면 책방 같지 않은 책방, 갤러리 같지 않은 쇼룸, 대단한 모임 공간 아닌 것 같은 워크룸을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책방은 책을 파는 공간이라기보다 책을 추천하는 공간처럼 느끼고 있어요. 더불어 그래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있어 사람들과 연결되는 시작이 벌어지는 곳 같아요.


현행 : 마찬가지로 우리가 또 변해가는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도 해요. 책을 읽음으로써 출판계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이슈를 계속 감각하게 되거든요. 어떤 것들은 낡은 생각이 되고, 새로운 생각들이 생겨나고, 이런 것들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곳이 출판계인 것 같아요.


두 분이 세상을 감각하는 더듬이 중 하나가 책방이 되어주고 있나 봐요. 수신과 송신의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네요.




‘그래서’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게 된 거예요?


현행 : 우리는 처음에 출판으로 시작했어요. 당시엔 책방은 없었고요. 당시 지은 이름이 ‘그래서’였어요.


우리가 살면서 어떤 분류에 있는 사람일까,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일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우리는 어떻게 분류되는지, 왜 우리 옆엔 우리가 닮고 싶은 사람이 없는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어요. 가끔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들을 통해 ‘왜 우리는 저 사람을 좋아하는지’ ‘저 사람은 뭐가 다른지’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아마, 다른 삶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관찰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들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더 궁금해지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나는 들을 준비가 됐고, 네 얘기가 너무 듣고 싶어. 그다음 얘기를 들려줘.”라는 뜻으로 ‘그래서’가 되었어요.


궁금해했던 사람들의 공통점도 찾으셨을까요?


현행 : 그 사람들한테서 공통되게 보이는 삶의 방식, 가치관은 무엇인지 살펴보니 책을 읽는 사람들이었어요.


좋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으실 것 같아요.


현행 : 맞아요. 우리가 만난 좋은 사람들을 통해 이렇게 삶이 흘러온 것 같아요. 지금처럼 우리도 그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고, 잡지를 만들고 싶어요.



_MG_3647.JPG 복층에 위치한 출판사로 올라가는 계단과 독서 카드, 2025 ⓒ작은도시이야기




손님이 많아요. 그러고 보니 전에 왔을 때도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현행 : 체류 시간이 길어요. 손님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한 번 오시면 오래 계시다 가니, 자꾸 서로 겹치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 부분이 재밌어요.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일어나는 상황이 제일 찌릿할 때에요.



_MG_3648.JPG 그래서 책방, 2025 ⓒ작은도시이야기







기획 이야기




'그래서'에선 다양한 기획들이 많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세분화된 이야기를 하기 앞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관통하는 두 분의 지향이 있다면 듣고 싶어요.


현행 : 저희는 늘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을 기획하고 싶어요. 누군가 돋보이고 주인공처럼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드려고 고민하는 것 같아요.



주현 : '그래서 북토크' 나 행사를 진행할 땐 작가에게 우리 참여자를 소개하는 것을 먼저 하고, 토크를 들으러 오신 참여자들도 본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주인공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요. 그 지점을 서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자리 잡는 느낌을 받아요.


관계를 만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그것이 만들어주는 가치와 안정감이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쇼룸’은 어떤 공간일까요?


현행 : ‘쇼룸’이라는 곳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에 저희가 이 공간을 어떻게 써야 될지 실험하는 시기를 보냈다면, 올해 하반기부터 뭔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느낌이요.


주현 : 초반엔 작은 출판사, 독립 출판 작가, 독립 책 등을 홍보해 주고 싶은 공간이었어요. 작은 출판사는 홍보 기회가 부족해요. 새로운 책이 나와도 꽂혀 있으면 책 등만 보이게 되잖아요? 그래서 책을 편하게 펼쳐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현행 : 그래서 우리가 쇼룸을 설명할 때 ‘책을 공간에 펼치고 여러 감각으로 감각해 보는 곳’이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독립 출판 페어들도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저희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이 반짝이는 모습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어요.


한때는 우리도 전시처럼 만들고 싶어, 갤러리처럼 멋지게 만들어야 할까? 욕심이 생기기도 했었어요. 그러다 어떤 작가가 “여기서 하는 건 전시가 아니잖아요.”라는 이야기해 준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아,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을 더 힘을 줘야 하는구나. 조명도 달고, 벽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홍보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춰야 하고.’ 고민을 많이 하다 우리 역할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가장 문턱을 낮추고, 가장 아래 있어야 된다. 발판이 되어야 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누군가 시작하고 싶을 때, 우리를 밟고 일어서면 되는 거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누구나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이 공간을 통해 벌어졌던 일들이 너무 잘 되는 거예요. 우리 작가님들이 여기 전시를 통해 더 좋은 기회를 얻고, 더 좋은 공간에서 전시를 하게 되고, 이런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주현 :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어느 작가님이 “아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그러셨잖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어요. 정말 깊이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어요.”라는 말을 하시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이 공간은 그런 공간이었구나. 작가님 덕분에 깨달은 거죠. 그래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하는 공간이라면, 다른 갤러리들이 부럽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공간 안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이 작품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펼쳐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인 것 같아요. 소개하면서 말씀해 주셨던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애정 때문에 쇼룸이 그렇게 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요.



image0 (1).jpeg 김리아 작가가 방산시장의 재료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설치한 그래서 쇼룸 전경 일부 ⓒ그래서




‘워크룸’은 어떤 공간일까요?


현행 : ‘워크룸’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필요해서 만들어졌어요. 책방과 쇼룸이 작아서 10명 이상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워크룸을 운영하게 됐어요.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그중에 몇 가지를 얘기하자면 공장들에서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버리지 않고 나누는 ‘쓸모를 찾아서’라든지 그림책을 같이 그리는 ‘그림책 방’ 모임이라든지, ‘교환일기’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작가님들이 작업실로 이용하기도 하고요.


주현 : 모이는 공간이 없을 땐 우리가 기획하고 끌고 갔지만, 이제는 같이 하는 구조가 생겼어요. 이제는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모임들이 계속 생겨서 작년 한 해는 끈끈하게 진행됐어요. 그리고 그 모임은 계속 이어져요.


모임원들의 성격과 내용이 요구에 따라서 계속 발전해요. ‘교환일기’는 처음엔 일기를 써서 나눴다면 지금은 같이 자신의 책을 집필하는 모임으로 이렇게 변해가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림책 모임’을 하는데 우리끼리만 하기엔 너무 아까워서 하나 더 만들어서 진행을 하고 있어요. 계속 모이는 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마음에 따라 계속 모임이 변하고 있어요.


모임이 유기체 같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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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작가 남정희 전시 세번째이야기 그래서, 나비’전시연계프로그램 아나의호수 바느질토크가 있었어요. . #아니의호수 #키티크라우더 #논장 .새벽 루틴으로 인형을 만들고 있.jpg
‘인형작가 남정희 전시 세번째이야기 그래서, 나비’전시연계프로그램 아나의호수 바느질토크가 있었어요. . #아니의호수 #키티크라우더 #논장 .새벽 루틴으로 인형을 만들고 있 (1).jpg
《그래서, 나비》전시 연계 프로그램 《아나의 호수》바느질 토크, 2025 ⓒ그래서




‘북클럽’은 어떻게 운영되었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현행 : 우리가 북클럽을 한지 꽤 되었었어요. 처음 북클럽을 할 땐 서울에 처음 올라온 대학생이었던 친구가 이제는 졸업도 하고, 대학원도 가고 했어요. 서울에 정 붙일 데가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친구를 보면 되게 뿌듯해요. 중간에 남자친구도 데리고 오고.


한 멤버는 중간에 결혼도 했어요. 하필이면 결혼하는 날이 굉장히 큰 독립출판 페어에 나가는 날 딱 중간이었어요. 부스를 작가님들에게 맡기고 결혼식에 다녀왔어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 좋아요.


주현 : 북클럽은 모임 참여자를 공지하는데 10분 만에 바로 다 차요. 그런 경험을 몇 번 했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너무 신기했어요.


현행 : 마치, 아이돌 티켓팅 하듯이요. 북클럽이라는 것이 저희 클럽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어요. 열려 있고,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하기 위에서 외부에서도 사람을 받으려 했는데 사람이 너무 빨리 차서 그러진 못했어요. 클럽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나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주현 : 맞아요. 북클럽이 원주에서 또 열리면 우르르 신나게 원주까지 가기도 해요. 이런 재미난 일들도 생기 더라고요. 우리 클럽 멤버 중 한 사람은 원주에 책방을 낸 덕분이에요.


‘교환일기’는 일기를 쓰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모임일까요?


현행 : 교환일기엔 ‘그냥 너, 하나의 문화생활’이라는 부제가 있어요. 그래서 서로 문화생활을 즐기고 와서 기록하는 거예요. 전시를 갔다 왔으면 전시를 기획하고, 뮤지컬을 보고 왔으면 뮤지컬을 기록하고, 서로 똑같은 일기장에 서로의 문화생활을 기록해 보여주는 거예요.


첫 번째 시즌, 두 번째 시즌, 세 번째 시즌이 쌓이다 보니 이건 뭔가 책을 내고 싶다는 욕구들이 생겼어요. 세 번째 시즌에서는 책을 내는 모임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어느 만큼 원고가 완성돼 가는 단계라 내년엔 북페어도 같이 나가보고, 기회가 되면 해외 페어도 나가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또 하나, 모임이 되게 재미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독립출판 작가도 있고, 디자이너도 있고, 인쇄소 집 딸도 있어요. 서로 도움이 되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더라고요.


다만, ‘교환일기’ 본래의 색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서 내년엔 책 만드는 모임을 독립시켜서 ‘교환일기’ 본래 취지대로 가져가려 하고 있어요.


모임의 모습을 상상하게 돼요. 모임이 생장하는 생명처럼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 같고요.

그런 분들은 어떻게 모이게 된 거예요?


현행 : 항상 새로운 사람을 모집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에 사람들이 어느 만큼 모이니, 모임을 서로 제안해서 함께 하는 일들이 생겨요.


인연에 인연이 살을 붙이네요.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고받을 수 있어 참여하신 분들이 얻어 갈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




‘그림책 모임’은 어떤 모임일까요?


주현 : ‘그림책 모임’엔 ‘동구리’도 있었어요.


앗, 여기서도 동구리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인터뷰 특별 출연 전문 동구리!


현행 : ‘그림책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아동문학을 연구하시는 분이 모임을 이끌어주세요.


워크룸이라는 공간이 그런 것 같아요. 느낌과 생각, 경험이 막 섞여요. 시인이 오시면 ‘시 창작 워크숍’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종잡을 수 없고, 계획할 수 없어요. 자연스럽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에요. 책방이나 쇼룸과 달리 워크룸은 서로들을 이렇게 자기의 이야기와 생각을 얘기하는 곳이잖아요. 서로가 얼마나 다르고, 다른 관점으로 보는지를 알게 되는 곳이에요.


칵테일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행께서 바텐딩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웃음)


현행 : 책방에서 만들어진 인연이 쇼룸의 전시가 되기도 하고, 워크숍이 되기도 하고, 계속 뻗어가는 것 같아요.


주현 : 그리고 정말 너무너무 궁금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저희가 연락을 하기도 해요. 도대체 이 분은 어떤 분이실까 하는 궁금증을 못 참고요.



_MG_3670.JPG 그래서 워크룸 입구, 2025 ⓒ작은도시이야기




그래서는 처음 ‘출판’에서 시작되어서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까지 출판하신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현행 : 서울수집 이경민 작가님과 함께 만든 책이에요. 샛마루 사람들’는 25년 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금호동, 행당동에서 있었던 재개발 이후 지역의 공동체거 어떻게 고군분투하고 오늘까지 왔는지를 담은 책이에요. 사실, 우리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도 그곳이었어요.


주현 : 92년도 여름 ‘희망의 집’ 공부방이 있었어요. 천주교 평화의 집 재단에서 어린이들을 보호해 주는 공부방이 있었어요.


현행 : 대표적인 산동네다 보니 아이들 교육이나 돌봄이 매우 열악해서 학생들이 공부방을 만들고 숙제 지도, 영어·수학 등 교과목을 지도해 주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철거 지역이 되면서 철거 투쟁을 하게 되었고, 부모들이 투쟁에 나간 사이 이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철거반대투쟁을 통해 가이주단지지를 얻어서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전까지 생활을 하실 수 있었고, 그분들이 계속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지금까지도 계속 주민운동과 지역사업을 하고 계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심 놀랐어요. 그 과정을 담고 현재를 조명하며 샛마루 공동체’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어요.


주현 : 참, 인연이 너무 신기했어요. 그때 가르쳤던 아이들도 이제 가정이 있고 어른이 되어 있었고요. 사실, 당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나이차이가 얼마 안나잖아요?


현행 : 책을 만들면서 25년의 공백들이 채워졌어요. 이분들이 가이주단지에 있으면서 생계를 위해 공동작업장을 만들고 일감을 떼다가 미싱을 돌리고, 지금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 되어 있어요. 또 입주를 위해 자금을 만들기 위해, 신협을 만들어서 해결해 나가고.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해오신 노력들을 알 수 있었어요. 뭔가, 인터뷰를 하고 책을 만드는 과정이 빚을 갚는 기분도 있었어요.


사라지는 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 온 ‘서울수집’과 함께 한 분, 한 분 얘기를 들었어요. 주민들이 얘기를 가지고 오시면 그것들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더라고요. 그렇게 두 권을 만들게 되었어요. 제게는 의미가 큰 책이었어요.


주현 : 우리가 젊었을 때 했던 공동체가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때 공부방 교사들은 지금도 만나요. 다른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때 기억이 한편에 있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누구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 기본 소득에 관해서 일을 하고 있다거나, 지방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회를 만드는 도서관 관련 일을 하고 있다거나.


현행 : 공부방 선생님들이 흩어졌지만, 결국은 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제 그 존재가 큰 힘이 되는 거예요. 주민들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키워왔다는 것도 고맙고, 흩어져서 살아온 교사들도 가치관을 지키면서 살아온 것도 고맙더라고요.


25년을 돌아 다시 그곳의 이야기를 만난다니, 두 분의 개인사에서도 도시의 맥락에서도 꽤 낭만적인 장면으로 읽혀요.



image4.jpeg 그래서에서 출판한 샛마루 공동체 시리즈 ⓒ그래서




‘그래서’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뿌듯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현행 : 어디 가서 우리 책방을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자랑은 책방에 오는 사람들이에요. 저희는 우리 책방에 오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좋은 분들이 오시니, 계속 좋은 분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주현 :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북클럽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축구 모임 만들기도 하고, 누구네 집에서 모여서 놀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현행 : 특히 올해는 ‘돌봄’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했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멤버들 사이에도 느슨한 공동체가 형성되었나 봐요. 함께 나이 먹고, 함께 서로 돌보면서 사는 그런 가능성을 서로 얘기 나눴었어요. 특히 남성, 아저씨 멤버들 같은 경우는 어디 가서 친구들하고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쉽지 않다고 해요.


연결된 분들의 삶에도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책을 매개로 시작되었는데, 삶을 같이 살아가는 형태로 발전한 거네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게 느껴지실 것 같아요. 책방에 찾아오신 분들 외에도 예상치 못한 만남들이 있었을까요?


주현 : 저희가 대만하고 인연이 많이 생겼어요.


현행 : 코로나 때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지 못할 상황이 되었어요. 그래서 단위를 쪼개서 동네 책방에서 분산 개최를 하게 되었어요. 한 출판사와 한 서점을 매칭시켜서,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는 출판 부스를 서점에서 만드는 형식이었어요.


우리는 그때 신생이고, 초짜여서 출판사에서 마지막까지 우리를 선택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반대로 어떤 서점도 ‘움직씨’ 출판사를 선택하지 않았더라고요.


주현 : 우리 둘의 운명처럼 매칭이 되었어요. 그 이후로 많이 친해졌어요.


현행 : 이후 ‘움직씨’에서 ‘구묘진’이라는 대만 작가를 조명한 인연으로, 대만 기자와 인연이 닿았는데 그 기자가 서울에 있는 독립서점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저희를 소개해줬더라고요. 이후로 대만에서 계속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특히, 이번 국제도서전은 주빈국이 대만이었는데 각종 대만 매체와 출판사가 방문해 주어서 ‘그래서 책방’이 서울의 대표적인 책방이 되어버린 느낌인 거예요.


주현 : 대만 국제도서전에 갔었어요. 저희가 실린 잡지를 사 오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현행 : 그런데, 그 잡지가 엄청 큰 잡지더라고요.


주현 : 저희가 나온 사진이 있어서, ‘이게 우리예요’라고 말을 했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었어요. 박수쳐주시고.


현행 : 그러면서 우리에게 대만에서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많이 다녀가셨어요. 그래서 대만에 가면 꼭 들리겠다고 약속을 드렸었고, 약속을 지킨 거죠.


주현 : 그 외에도 책을 소개하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그 책에 번역가를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벌어졌어요.



image0.jpeg 대만 잡지에 소개된 그래서



독립서점 국제무대에서 ‘그래서’가 한 축이 되어주셨네요. 참, 나라를 넘어서 새로운 인연이 연결되고 신기해요.


현행 : 맞아요. 우리 하정 작가님도 일본의 멋진 할아버님을 소개해주셨어요.


주현 : 그런데 그분이 책방에 오셔서, 눈을 마주치시면서 “과거가 미안해요.”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일본의 과거가 부끄럽다고, 동학, 4.3처럼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장소들을 다 가보셨어요. 이번에 열 번째 오셨다고 하는데, 그곳을 다 가보고 싶으셔서 한국 책을 굉장히 많이 읽으셨어요.


어제 수첩을 보여 주셨는데, 계엄에 반대하는 응원봉을 들고 시위하는 국회 대로 사진을 스크랩해 놓으신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국회 인근으로 산책도 다녀오고 했었어요.


현행 : 그걸 보면서 부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주현 : 일본은 지금 정치 상황이 안 좋아서 이 상황이 너무 부럽다고 하셨어요.


일본과 한국이 닮은 듯 참 많은 지점에서 다른 것 같아요. 그 할아버지께선 어떻게 하정작가님과 인연이 되신 거예요?


주현 : 하정작가님 팬이셨어요. 한 번은 책 커버가 잘못 나와서 못 쓸 상황이었는데, 작가님께서 더 잘 되려고 그런 것 같다며 내지를 무지 노트로 만드셨었거든요. 그래서 책 한 권과 무지 노트 한 권이 같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그 노트에 필사하시고 생각을 적으신 거예요.


현행 : 원래는 학교 선생님이셨어요. 쉰둘에 그만두셨다고 해요.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시간이 너무 아깝더래요. 그때부터 한글 공부를 해서 한글로 된 책들을 읽기 시작하셨다고 해요.



image1.jpeg 그래서 책방을 방문하신 일본에서 오신 선생님 ⓒ그래서




책방, 워크룸, 쇼룸이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물줄기가 계속 흘러갈 수 있게끔 두 분이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이곳에 찾아온 분들이 서로 교류하고, 대만과 일본이 또 한국 계신 분들과 연결되고.


예상치 못하게 연결된 물줄기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현행 : 국제 도서전에서 대만이 주빈국이어서 부스가 엄청 컸어요. 그 부스를 운영하는 업체들을 컨택해야 하는데 저희에게 그것을 부탁했었어요.


주현 : 사실, 저희가 행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작가님들에게 상황을 알렸더니 답을 쫙! 주셨어요. 일을 할 사람들을 추천해 주시고, 자신들이 전에 일을 할 때 어떤 점이 좋았는지 까지 정래 해서 보내주셨더라고요. 그 정보들을 전달드릴 수 있었어요. 그중 한 업체와 연결이 잘 되어서 행사를 무사히 치렀다고 해요.


참, 그렇게 까지 정보를 공유하고 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두 분 사랑받고 계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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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있소》 바자회가 열리는 쇼룸, 2025 ⓒ작은도시이야기







공간 이야기




을지로에 오시게 된 서사가 궁금해요.


주현 : 처음엔 공덕동에 사무실이 있었어요. 출판사와 손제본 워크숍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곳은 너무 외로웠어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러야만 오는 곳이었어요. 오피스텔 있거든요. 건물 자체가 폐쇄적이었어요.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복도를 가진 공간이었어요.


현행 : 그러다 한 친구(원주에 책방을 연)가 갑자기 책방을 하자고 그러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너무 괜찮은 거예요. 책방이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우리도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그 긍정적인 생각이 패착이었죠. 발을 잘못 딛었어요.(웃음)


생애 전환기라고 하잖아요. 무엇인가 다른 삶을 찾아봐야겠다는 시기가 저희에게 왔던 것 같아요. 딱 교집합이 그때 만들어졌어요. 언젠가 출판과 제본을 하면서 책방을 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오래 미뤄지던 일이 그때 딱 벌어졌어요.


그래서가 책방을 막 열었을 때 저는 출판을 하고 있었고, 주현은 제본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책방 운영은 다른 친구가 맡아서 했었죠. 그러다 6개월 만에 원주에 가버렸어요. 갑자기 책방 운영까지 떠안게 되었죠.


주현 : 둘 다 책방 운영은 처음이었어요. 그냥 일단 이거 열심히 해보자 했었어요.


현행 : 하던 일을 조금 뒤로 미루고, 책방에 올인했어요. 딱 2년만 해보자 했었죠.


주현 : 그렇게 6년째 하고 있어요.


현행 : 책방이 어느 정도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제본도 하게 되고, 출판도 하게 되었어요.


보통 인쇄소는 인현동 쪽에 많이 있다고 알고 있어서요. 방산시장으로 거점을 잡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주현 : 종이 회사가 여기 있어요. 삼원, 두성이요. 저는 손제본을 하기 때문에 직접 종이를 보고 한 장만 사도 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실이며, 부자재들이 모두 여기에 있어요. 문구 관련된 바인더 하나씩도 팔아주세요. 리본도 있고. 정말 천국이죠.(웃음)


현행 :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걸 다 만들 수 있어요. 여기서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테이블, 책장, 다락 모두 이 일대에서 만들고 설치했어요. 숙련된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가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더라고요.


주현 : 그리고 책방을 같이 시작한 친구와 지리적으로도 중간이기도 했고요.


지리적인 위치, 재료 등 많은 것들이 잘 맞물렸네요. 그런데 책방은 1층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2층으로 오신 이유도 있을까요? 그것도 복도 안쪽이라 저는 여러 번 헤매다 이제 길을 익혔거든요.


현행 : 이렇게 숨어 있을 수 있어서요.(웃음) 당시 친구들이 사람들하고 만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반드시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2층 구석에 있으면 누가 찾아오겠냐며 제가 너무너무 답답해했었죠.


주현 : 손님이 오면 현행이 사람한테 자꾸 말을 시켜서 그러지 말자고 했는데, 안 시키면 너무 어색하고. 그땐 그냥 좀 숨어 있고 싶었어요.


불특정 다수에게, 이질적인 공간에 숨고 싶은 주현의 마음도 이해되지만 답답해했을 현행의 마음도 너무 이해됩니다. 어떻게 그 답답함을 극복하셨어요?


현행 : 그래서 커피를 오시는 분들께 나눠드리고, 커피 마시면서 얘기나 하자고 하고 했어요. 한, 두 사람 지나가니 붙잡아야 되는 거예요. 누가 와주면 너무 반가웠어요.


오아시스 같았을 것 같아요.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이요.

초반에 작가들과의 연락도 떨렸을 것 같아요.


현행 : 거의 처음 하정 작가님께 책을 받았어요. 그때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책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연락을 해보았어요. 얼마나 떨렸는지. 그런데 작가님께서 집이 가깝다며 책을 직접 들고 오셨어요.


주현 : 사실, 작가님이 여기까지 직접 오시는 게 너무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딱 보자마자 “어, 여기 되게 쾌적하네요.”하면서 들어오셨어요. 그 말이 힘이 되었어요.


‘아, 우리 쾌적하구나!’ 그러면서 숨고 싶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어졌어요.


현행 : 하정 작가님 같은 경우는 우리의 은인이었어요.


주현 : 그 외에도 목요일마다 책방을 지켜주는 ‘일일 점정’ 프로젝트도 해보았고요. 그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현행 : 그래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드리기로 했어요.


하정 : 하나는 들어주셨고, 하는 들어준 셈 치고,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습니다.(웃음)


좋은 분들 사이에 ‘그래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밌는 일, 감동적인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공간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_MG_3655.JPG 문 너머로 보이는 책방과 현행, 2025 ⓒ작은도시이야기



방산시장이라는 공간이 특수한 공간 같아요. 오피스 사무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옆집과 서로 개방되어 있고, 여러 목적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층별로 목적도 다를 것 같고.


현행 : 맞아요. 저희가 시장에 있잖아요. 우리 방문하는 사람이 많게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사실 많이 오진 않아요. 하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와요.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저희 책방에 방문하는 분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시장 안에 있어서 그런 걸까, 조금 더 숨겨져 있어서 그런 걸까.


우리 책방엔 예술가 분들도 많이 와요. 을지로라는 특성이 반영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지점들이 되게 재밌어요. 그리고 이곳에 온 사람들로 인해 또 인연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다른 책방의 서사들과는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하게 됐어요.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책방들이 성장하는 서사와는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하정 작가님처럼 이곳을 방문하시는 사람들에 따라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듯 책방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하시나요?


현행 : 저희는 책이 중심에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보통 책방은 주인장들의 취향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이미 우리 책방의 책들은 저희 취향이 아니에요. 우리 책을 받는 사람들의 취향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도 저희가 뭔가를 만들어야겠다고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요.


‘그러면 그거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이거 한 번 해보자.’가 시작이 돼요.

그러면 또 이런 거 하고, 누가 와서 ‘나 해보고 싶은 거 있다’며 기획을 해요.


강력한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없이도 오는 사람들의 스스로의 동력으로 ‘그래서’ 안에서 일을 벌이고, 협력하고, 운영하는군요. 집합돼서 만들어지는 구조인데, 이런 요소들은 포용적으로 누군가와 나의 자원을 기꺼이 나누겠다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현행 :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 어떤 식으로 가게 될지 명확히 알 수 없어요. 칼자루가 저희에겐 없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런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방문과 활동이 처음부터 수용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외향적인 사람들이야 수월하겠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에겐 어려운 일이잖아요.


주현 : 너무 힘들었어요. 초반엔 서로 빗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좋은 사람이 많이 오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갈수록.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각자의 의지와 취향으로 일들이 벌어지고, 그것이 새로운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결과를 보면 아름다운데, 운영이라는 것은 과정을 다 같이 겪으며 견디는 지점도 반드시 수반된다고 생각해요. 중간에 그래서만의 색이 생겨나는 과정 중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현행 : 그런 고민을 했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책방들이 잘 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뭐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규모가 커진 것도 아니고, 매출이 커진 것도 아니었죠. 책방으로서의 브랜드가 커진 건 아닌 것 같아요.


책방의 성장 과정 중 어떤 경로가 있다면, 우리는 그 경로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런 생각들이 가끔 불안하게 만들기도 해요.


어느 순간 뭔가 방향이 달라진 것 같아요. 4주년 파티를 했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멤버들끼리 와서 계산하고, 칵테일 말아서 나눠주고, 축하한다고 꾸며놓고 각자 주인이 되어서 함께 놀고 있는 거예요.


앉아 있을 곳도 없고, 발 붙일 곳도 없었어요. 그런데 서로 인사 나누고 책 추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4년 동안 책방을 내주는 일을 했구나. 방향이 완전히 바뀐 시점이 그때였어요.


주현 : 이렇게 흘러가게 두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목표를 가지고 책방을 만든 건 아니었고, 그래서라는 출판사도 무엇을 이뤄내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오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정리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게 중요했다는 생각을 해요.


문브로 : 저, 잠깐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사업이라는 것이 생을 거난 일이잖아요. 잘해야 되는 일이죠. 그런데 두 분은 살아남으셨잖아요. 그 어려운 시기에 같이 시작한 분들 중 정점을 찍고 사라지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런데 항상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지난 시간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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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시장 상인들이 편히 책을 빌려갈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서재와 물물교환대, 2025 ⓒ작은도시이야기






내일 이야기




10년 후 두 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주현 : 이거 제일 어려운 질문이에요. 근데, 저는 책방을 하면서 다짐한 것이 하나 있어요. 사람들이 “너 뭐 하고 살래?”라고 물으면 “나는 반가운 사람 할 거다!”라고 말하고 살았어요. 제가 책방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사람이 없을 때에요. 우리가 기획한 행사에 사람이 없을 때, 정말 반갑게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사람이 돼줘야지.’라는 다짐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갔던 사람의 어떤 행사라든지, 공간이라든지, 그런 곳에 애써서 가려고 해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있어요.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쉽진 않지만요.


현행 : 아마, 10년 후면 여기도 이제 사라질지 모르겠어요. 개발 계획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되면 공간을 정리하는 수순으로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요. 그냥 그러면 그때는 공간이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는 편집자가 된다거나, 기획자가 되거나 그런 생각들을 해보고 있어요.


10년 후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키우는 일을 하고 싶어요.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하는 일이 좋아요. 그래서 에이전시 같은 것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가지고 살고 있어요.


10년이면, 지금 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이곳에서 만나진 사람들과 물 흘러가듯 많은 일들이 연결되고 폭이 넓어지고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가까운 미래로 내년엔 어떤 일들이 계획되어 있으실까요?


주현 : 물 흘러가듯 하던 일들을 계속할 것 같아요.

쇼룸이 1년 차에 있고, ‘쓸모를 찾아서’를 지금 같이해주시는 분들이 움직이고 있거든요. ‘북클럽’도 있고, 모임이 계속 흘러가고 있어요.


현행 : 내년엔 북페어에 더 많이 다니고 싶어요. 성격이 다양한 북페어들이 있는데, 그에 맞춰서 나가보고 싶어요.


을지로를 기반으로 인연이 된 독립 출판 작가들이 같이 북페어에 나가고자 만들어진 진 것이 ‘다세대 을지로’라는 팀인데 각각 101호, 102호, 201호, 301호, 302호예요. 실제로 맨션을 그러놓고 저희가 호수 별로 활동하고 있어요. 부스를 찾아주신 고객들 중엔 실제로 있는 맨션인 줄 알고 문의를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처음엔 한 권씩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책들이 많아져서 부스가 부족해요. 그래서 그것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어요. 기존에 해오던 것들 위에서 상황이 달라진 만큼 변화해 나갈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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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시장 복도에 위치한 《그래서 쓸모를 찾아서》, 선반엔 여러 공장들에서 보내준 종이 및 포장재와 각 재료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2025 ⓒ작은도시이야기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 볼게요. 2025년 마무리하며, 2026년을 맞이하며 추천해주시고 싶은 책,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주현 :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인쇄사고가 나도 무지 노트와 책이 출판될 수 있었던 것처럼, 충분히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를 나누고 싶어요.


현행 : 《그러나 아름다운》. 예술가들의 이야기예요. 재즈 아티스트들 이야기인데, 그들은 재즈의 전성기를 이루었었어요. 그러나 시대가 그들을 담아내기엔 각박하고 험악했어요. 우리가 얼마만큼 아티스트 혹은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해 개방되어 있어야 할까, 우리의 삶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열려 있어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게 되어요. 요새 무척 재밌게 읽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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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추천해준 독서,《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좌), 《그러나 아름다운》(우), 2025 ⓒ작은도시이야기






누군가의 발판이 되어주는 곳


인터뷰에 앞서, 그래서 쇼룸에서는 《그래서 다 있소》라는 바자회를 방문했습니다. 누구나 와서 자신의 물건을 내어 놓을 수 있었고, 판매된 수익은 누군가에게 '그래서 모두의 통장'으로 입금되었습니다. '모두의 통장'은 읽고 싶은 책이 있거나,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은 분들이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통장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돈 없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두 분이 살아가는 방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덕분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더 다정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 하고 싶은 일 다 하시면, 사람들의 꿈이 여기저기서 피어날 것 같습니다. 두 분이 걸어가신 발자국 위에 피어날 꽃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긴 이야기 들려주셔 감사합니다.



_MG_3658.JPG 복도에서 보는 그래서 책방, 2025 ⓒ작은도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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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G_3642.png 주현과 현행의 손, 2025 ⓒ작은도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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