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에 기억을 담아둔 사람
몇 년 전, 유적지 위에 만들어진 홀에 울렸던 ‘태평가’를 기억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후 마음이 힘들거나 누군가가 미워질 때면, 윤숭과 윤상의 ‘태평가’를 찾아 듣곤 했습니다.
자연스레 윤숭의 노래를 찾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노래는 조용히 위로를 건넸습니다. ‘나는 왜 위로받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의 노래가 과거의 추억을 불러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일상에 가까웠던 풍경과 그곳에 머물렀던 어느 날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날 느꼈던 기운과 냄새, 풍경이 잔잔하게 되살아났습니다. 노래를 통해 다시 만난 기억은 오늘 나에게 다가와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작은 소리들이 윤숭에게는 소중한 삶의 흔적이었다고 합니다. 소리들이 남긴 희미한 흔적은 우리의 기억 위에 얇게 포개져 공명의 언어가 됩니다. 낮고 작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한 사람이 어떻게 노래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왔는지, 그리고 왜 사라져 가는 도시의 풍경과 마음속 고립 앞에서 귀를 닫지 않으려 하는지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른 봄에 살짝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 음악가들이 모이는 ‘작은물’에서 윤숭을 만났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윤숭 이야기
음악 이야기
도시와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윤숭 이야기
안녕하세요. 윤숭입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동안 제 안에 화두는 낮고 낮은 것, 바닥 같은 것이었어요. 요즘은 작은 소리를 듣는 일에 더 마음이 갑니다. 잘 들리지 않는 것들, 쉽게 지나치는 것들, 귀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들에 자꾸 시선이 머물러요. 어쩌면 저는 그런 것들을 조금 더 오래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음악을 통해 귀하지 않다고 여겨진 것들을 귀하게 만들어 주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윤숭’이라는 이름이 좋아요.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요. ‘숭~’하면서 울리는 듯한. 어떻게 지으신 걸까요?
큰 의미가 있는 이름은 아니에요. 별 의미가 없는 것을 좋아해요.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칭이에요.
윤숭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언젠가’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합니다. 어느 순간 보았을 풍경과 감각이 노래에 녹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윤숭에게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풍경을 꽤 소중하게 기억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오래 살았던 동네의 골목들, 아주 가까운 친구를 처음 만나러 가던 길, 예전 시장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요.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때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저한테는 이상하게 오래 남아요.
기억은 때론 이미지로도 남지만, 사실은 감각으로 더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어떤 장소를 떠올리면 모양보다 먼저 그때의 기운이 떠오르기도 해요. 그곳으로 향하던 마음, 그날의 냄새, 조금 흐릿한 소리, 몸이 먼저 알아보는 분위기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노래를 만들 때도 결국은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그 순간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나봐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윤숭의 노래가 제가 가진 기억 위에 포개지는 느낌도 있어요. 아마 다른 이들도 공감해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 말이 참 좋네요. 아마 기억이 소중한 사람끼리는 그런 겹침이 생기나 봐요. 완전히 같은 기억은 아닌데, 서로의 마음 위에 얇게 겹쳐지는 것 같은 감각. 저는 그런 순간이 음악의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삶은 다르지만, 어떤 떨림은 비슷하게 전해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가끔 도시가 주는 자극이 힘들 때가 있었어요. 음악 하시는 분들은 특히 소리와 주변 자극에 더 예민하실 것 같은데, 오히려 그 풍경에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예요.
네. 어떤 때는 저도 제가 도시 인간이구나 싶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사람들끼리 부딪치고 지나가고, 무심한 듯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풍경이 저한테는 아주 낯설지 않거든요. 에너지를 많이 쓰게 만드는 건 맞아요. 그런데도 그 장면이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아요. 오히려 자연스러운 도시의 모습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전에 구로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림과 음악의 형태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어요. 참여자 중 한분이 산업지대를 보고 ‘괴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 표현에 조금 놀랐어요. 무채색의 산업지대가 제게는 낯선 대상처럼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그때 ‘아, 내가 정말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도시화·산업화의 정도가 살아온 환경에 따라 극하게 다른 현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리적인 차이보다 더 큰 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윤숭께서는 어떤 곳에서 자라셨어요? 어떤 환경이 오늘의 윤숭을 만드는데 영향을 줬는지 궁금해요.
연신내에서 자랐어요. 저한테 애증의 동네예요. 오래 자란 곳이고, 제 성장의 대부분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결국 내가 있는 지역, 내가 지나온 동네의 풍경이 저를 많이 만든 것 같아요. 지금은 한성대 쪽으로 이사했어요. 나지막한 건물들이 언덕을 따라 있는 아름다운 동네에요.
음악 이야기
운명 같은 말로 설명하고 싶진 않은데, 한 가지는 분명했던 것 같아요. 나는 노래를 하면서 살아갈 사람이구나, 하는 감각이요. 누군가에게 들리고, 팔리고, 평가받는 것에 대해서는 늘 망설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일 자체를 의심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듣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음악을 듣는 순간이 저에게는 늘 특별했거든요. 어떤 형태로든 이것과 가까이 있게 되겠구나, 그런 직감이 있었어요.
사실 어릴 때는 미술을 더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공부를 더 하길 바랐고, 그래서 다른 길로 돌아가게 됐죠. 사회복지와 의상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돌아가는 동안에도 제 안에 있는 걸 밖으로 꺼내놓고 싶어 하는 마음은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길을 돌아, 첫 앨범을 내게 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더는 미룰 수가 없겠다는 순간이 왔어요. 노래들이 이미 안에 다 차 있었고, 계속 묵혀두면 오히려 저를 더 해칠 것 같은 거예요. 정말 이제는 열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제가 계속 노래를 부르기를, 앨범을 내기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옆에서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적처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서는 못 했을 거예요. 그 경험 이후로 더 분명해진 건, 작업은 결국 내 몫이지만 그 몫을 견디게 해주는 건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저도 그랬고, 윤숭의 노래에는 위로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위로’라는 것이 노래를 만드시면서 목적으로 삼았던 것 중 하나였을까요? 아니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궁금해요.
위로를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제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어렵게 꺼내놓은 이야기인 만큼, 누군가에게 가닿는다면 그 사람에게도 소중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한동안 저는 방 안에 있는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물리적인 방이기도 했지만, 더 크게는 마음 안의 방이었죠. 스스로를 의심하고 미워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그 방 안에 오래 머물러 있었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준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걸 뒤늦게 알았어요.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자꾸 생각하게 된 말이 ‘몫’이었어요. 사람마다 각자 태어난 몫이 있고, 어떤 때는 그 몫이 너무 무겁고 어두울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또 내가 그 몫을 지고 가는 동안,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그래서 제 노래는 어떤 때는 고립의 이야기이고, 어떤 때는 그 고립을 지나 다시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만들었던 음악들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왜인지 저는 그게 참 좋아요. 우리는 같은 떨림, 같은 진동 속에 있다는 말. 소리를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결국은 그 떨림을 느끼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사람마다 삶은 다르지만, 깊은 데서는 비슷한 진동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음악은 그걸 잠깐이라도 확인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관악산’도 함께 밤 산행을 하는 이야기 잖아요. 함께 서로에게 닿으면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요. 그 맥락 위에 윤숭의 음악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함께한다는 촉감이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활력 있는 더듬이 모임’을 진행하신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참여자들과 소리로 도시를 보고, 그것을 기록하는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활력 있는 더듬이 모임’은 제가 이 동네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가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처음에는 제안이 먼저 있었어요. 지역 기반 예술가 활동을 지원하는 기회가 생겼고, 그때 동료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됐죠. 그런데 사실 그보다 먼저 제 안에는 고민이 있었어요.
을지로에는 정말 다양한 소리가 있거든요.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 쇠가 연마되는 소리, 자재가 툭툭 내려앉는 소리, 구역마다 다른 결의 소리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풍경이 너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눈 깜빡하면 지금 내가 매일 보내는 동네가 그냥 없어질 것 같은 거예요. 그때 든 마음이, 이건 내 방식대로 기억해둬야겠다는 거였어요.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고 기록하고 싶었어요. 보이지 않았 듯 보이는 것. 소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동네를 소리로 기억하고 싶었어요. 듣고, 담고, 내 안에 남기고, 또 가능하면 나누고 싶었죠.
‘더듬이’가 이후 윤숭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지 궁금해요.
많은 영향을 줬어요. 음악 작업으로도 이어졌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집했던 소리와 풍경들이 이후 작업으로 흘러갔고, 다음 앨범의 재료가 되었어요. 〈이곳에〉나 〈평화〉 같은 곡들도 그 시간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곡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소리로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더 또렷해졌고, 어떤 작업은 그 현장을 몸으로 다시 걷고 듣는 방식으로 이어졌어요.
저에게는 그때의 순간을 기록해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요. 이미 사라진 장면이 많고, 부서지는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 기록이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기쁘고요.
또, ‘활력 있는 더듬이 모임’과 같은 프로젝트를 해볼 생각이 있으실까요?
네. 한 번 더 그런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시간이 꽤 흘렀고, 공간도 관계도 변하고 있잖아요. 선거도 있고, 작은물 임대차 계약 등 많은 변화가 예정된 시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꼭 ‘더듬이’와 같은 형식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한 번 기록은 필요하다고 느껴요. 사라지는 것을 붙잡겠다는 마음이라기보다, 지나가는 시간을 제대로 남겨두고 싶다는 쪽에 더 가까워요.
다시 한번 소리로 기록되고, 기억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작은 소리들이 윤숭의 노래로 탄생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요.
‘작은 소리’와 ‘노이즈’는 윤숭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예전에 어떤 음악가가 ‘내 안의 노이즈를 듣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우리가 흔히 노이즈라고 부르는 것은 배제해야 할 소리처럼 여겨지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 안에도 이야기가 있거든요.
도시의 소음도 그렇고, 사람 마음 안의 균열도 그래요. 어떤 건 분명 소음인데, 동시에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기도 해요. 아주 작은 소리일 수도 있고요. 저는 점점 더 그 작은 것들에 귀를 열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고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게 삶의 핵심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소리의 결을 더 가까이 듣고 남기는 사람으로도 조금씩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필드 레코딩 같은 방식도 그 연장선에 있고요. 현장의 소리를 그 현장답게 담는 일,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는 일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앞으로 윤숭은 노래 뿐만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될까? 싶은 상상을 하게 되는 답이에요. 시대와 세상의 작은 소리들이 함께하는 음악들을 앞으로도 들을 수 있겠다는 사실에 벌써 기대되기도 하고요.
‘이달의 음성 메모’는 월초 구독자를 모집해 그달의 주제로 4명의 음악가가 각자 노래를 보내는 방식이에요. 음악을 전달하는 형식에 편지도 함께 보내요.
코로나 한복판에서 시작했어요. 공연이 다 멈추고, 노래를 만들어도 들려줄 곳이 없던 시기였죠. 동료들과 함께 한 달에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각자 곡을 만들어 보내는 방식이었어요. 그렇게 오래 이어질 줄 몰랐는데,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매달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정말 컸어요. 작업을 하는 사람은 고립되기 쉽거든요. 내가 하는 이야기가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이 사람을 많이 가라앉혀요. 그런데 듣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큰 돌파구가 되어줬어요.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기도 했고요.
‘이달의 음성 메모’ 참 낭만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매달 음악가들이 했을 고민과 고통도 만만치 않았겠다 싶고요. 그동안 만들었던 음악들과 썼던 편지들이 긴 벽을 따라 나열되어 있는 모습을 그려보게 되요. 한걸음씩 가면서 음악을 듣고, 편지를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맞아요. 쉽지는 않아요. 에너지도 많이 들고, 때로는 부끄럽기도 해요. 현장에는 훨씬 오래 싸워온 분들이 계시니까요. 그래도 제가 가는 기준은 분명한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동하는 자리일 것. 그리고 지금 내 목소리가 거기에 필요하다고 느껴질 것.
그럴 때는 너무 확장하지도, 너무 축소하지도 말자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래 부르는 몫으로 가는 거죠. 노래가 어떤 순간에는 실제로 쓰임을 갖기도 하니까요.
여러 층위로 윤숭의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도시 속 작은 소리에서 부터 음악으로, 음악에서 다시 타인에게 닿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순환의 장면 같기도 해요. 음악이 된 작은 소리로 우리를 안내해주는 길라잡이 같이.
도시 이야기
을지로는 정말 소리가 많은 동네였어요. 구역마다 다양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제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동네예요.
제게는 동료가 정말 중요해요. 오래 함께한 사람들, 음악뿐 아니라 바라보는 방향과 지향이 맞는 사람들. 그런 존재들이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큰 힘이에요.
공간도 그래요. 어떤 공간은 사건이 많아서 특별한 게 아니라, 시간이 쌓여서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연결되고, 그 시간들이 천천히 퇴적되는 거죠. 그런 걸 지켜보는 일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해요.
‘돌고돈 포크 페스타’를 인상깊게 봤어요. 지역의 공간들, 동료들과 함께 진행하신 것 같았어요. 어떤 행사였는지 설명 부탁드려요.
‘삼매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작됐어요. 그전부터 그 공간과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고, 같이 할 수 있을 때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사라지기 전에 한번 같이 해보자, 작은 포크 페스타를 열어보자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같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아직 있을 때, 그리고 서로 마음이 모였을 때 해야 한다는 감각이 더 컸어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게 굉장히 큰 동력이었어요. 어떤 일을 벌일 때는 명분이 필요하잖아요. 돌고돈 포크페스타는 저한테 완전히 그런 명분이었던 것 같아요.
큰 일을 쉽게 벌이는 편은 아니에요. 에너지도 많이 들고, 준비하는 동안 계속 긴장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왜 이걸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야 해요. 그때는 그 이유가 너무 분명했어요. 사라지기 전에 함께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어요.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저도 마음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페스티벌을 통해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겠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공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유지되지 않잖아요. 결국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얼마나 아끼고, 거기에 얼마나 마음을 보태느냐에 따라 버텨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돌고돈 포크페스타를 떠올리면, 뭔가 사라져가는 걸 억지로 붙잡는 장면이라기보다, 약하고 작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것들에 사람들이 자기 손을 조금씩 더 보태는 장면처럼 느껴져요. 누군가 ‘내가 조금 더 보탤게’ 하고 마음을 얹는 순간들이 모여서, 우리가 그 자리를 조금 더 오래 보고 누릴 수 있게 되는 거죠.
‘돌고돈’이라는 이름은 갈매기살 맛집으로 제게 익숙해요. 그 이름을 쓰신 것이 맞을까요?
그 이름 자체가 너무 멋있었어요. ‘돌고돈’이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말의 리듬이 좋았어요. 그 어감 안에 이상하게 계속 놀고, 돌고, 다시 모이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저한테는 단순한 상호를 넘어서 하나의 분위기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걸 페스티벌 이름으로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단 이름을 정해놓고, 사장님께 찾아가 작은 축제를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말씀드렸어요.
아름답네요. 모래를 잡으려 하면 손가락으로 빠져나가잖아요. 그런데 빠져나가는 모래를 귀하게 여기는 손이 하나 둘이 더 모여서 보태주는 것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요.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약하고, 작아서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내가 조금 보탤게, 우리 조금 더 보태보자 하면서 순간을 함께 보고 누릴 수 있도록 해준 것 같아요.
내일 이야기
잘 모르겠어요. 다만 굵직한 변화들이 여러 군데서 일어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는 방식도, 지금 있는 자리도, 작업의 모양도 조금씩은 달라져 있겠죠. 변화는 늘 두렵지만, 또 변하는 것으로 계속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가 나와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껴요. 음반일 수도 있고, 기록물일 수도 있고, 필드 레코딩을 더 확장한 어떤 형태일 수도 있겠죠. 아직 다 보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어쩌면 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가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작은 소리에 기억을 담아둔 사람
윤숭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여러 번, 귀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어떤 사람을 만나 전혀 다른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노이즈였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흔적이 되고, 부서지는 동네의 소음이 한 사람에게는 기억의 방식이 됩니다. 그렇게 작고 낮고 희미한 것들이 윤숭을 통과하며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의 노래가 위로가 되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자기 안의 방과 어둠, 그리고 각자 짊어진 몫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람만이 타인의 작은 떨림도 조심히 만질 수 있도록. 도시의 소리를 듣는 일과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일이 결국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끝내 귀를 닫지 않는 사람. 그리고 작은 소리 속에서도 삶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사람. 윤숭의 다음 작업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그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됩니다. 긴 시간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물
윤숭 더 보기
・YOUTUBE : @cyoonseung
・instagram : @cyoonseung
이달의 음성메모 더 보기
・YOUTUBE : @idalum.mp3
・instagram : @idalum.mp3
・구독 신청하기 : @google forms
도시 속 작은 도시의 예술이야기를 전하는〈작은도시이야기〉 뉴스레터 ►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