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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한 철공소 골목을 걷다 보면 간혹 마주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시멘트를 뚫고 자란 풀의 지지대를 만들어주는 모습입니다. 어떤 풀은 철 기둥에 묶여 있기도 하고, 어떤 풀은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풀은 붉은 노끈에 묶여 있기도 합니다. 각기 다른 형식으로 묶여 있지만 그것엔 공통적으로 풀이 자칫 치우쳐 발에 차이거나 무거운 짐을 실은 바퀴에 밟히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날 정성스럽게 풀의 줄기를 묶어주시는 사장님 한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왜 그 풀을 묶는지를 여쭈니 "힘든 곳에서 자라는데 잘 살았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의 투박하지만 섬세한 손에서 타지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곳에서 시작해 오늘 만나게 된 그 사장님의 지난날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그는 어떤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계실까요.
그렇게 누런 빛의 테이프는 한 아름다운 생명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함께 해줬습니다.
색상명 : 비너스 상아색 / VENUS IVORY
재료 : 민들레, 박스 테프
위치 : 서울시 중구 산림동 43-1
날짜 : 2022.06.25
작가 :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