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이 통한 걸까요?
아이가 7살 가을을 보내던 시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남편과 나는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전까지는 이대로도 괜찮을 거라고, 남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잘 적응할 거라고 애써 현실을 외면한 채 지냈다. 뒤늦게라도 정신 차리고 서울의 큰 병원을 데려가보기로 결심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명 대학 병원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면 통화대기만 수십 분에다가, 한 번 통화연결되기도 힘들었고 소아정신과의 유명한 의사들은 이미 다 1년에서 2년 치 예약은 끝났다는 이야기만 듣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원장님은 2025년까지 예약이 다 차서 초진조차도 볼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언제부터 소아정신과가 이렇게 핫해졌는지 궁금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결국 이름을 들어볼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대학 병원의 젊은 교수님께 예약을 할 수 있었고 6개월 정도만 대기하면 된다기에 그분께라도 진료받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남편 주변에서 우리 아이의 상황을 대충 들은 지인들이 안타깝게 여겨주었다. 그중에 평소 인맥도 넓고 대대로 자산가 집안에 금수저라고 했던 선배형이 남편의 사정을 듣고 그 대학병원에 친한 지인이 있다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분 덕분에 진료예약날짜를 거의 3개월 이상 앞당길 수 있었다. 정말 고맙게도 초등 입학 전 늦가을에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초등학교를 어디에 보낼지도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기에 그 시기에 정확한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대학병원에서조차 도저히 일반 학교에 적응이 힘들다고 하면 어쨌든 플랜 B를 고민해 봐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받았던 아이의 각종 검사 결과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본인 병원 가는 줄은 모르고 그저 KTX 타는 것에 신난 아들을 새벽부터 챙겨서 서울로 향했다.
양가를 포함한 온 가족이 긴장하고 걱정해 주었다. 특히 친정엄마는 거의 실시간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당부했다.
처음으로 가본 그 대학 병원은 명성만큼이나 넓고 크고 깨끗했다. 공간이 넓게 탁 틔여있다는 것만으로도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답답함을 덜 느낄 수 있었고, 진료 접수 과정도 체계적이었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갔어도 기본 1시간은 대기할 수도 있다고 해서 각오했는데 오랜 기다림 없이 예약 시간에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에게 긴장하지 말고 잘 대답하면 된다고 반복해서 당부하면서 내 긴장감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집 근처 병원은 늘 나 혼자 데리고 다녔는데 거의 처음으로 병원에 동행해 준 남편도 꽤 긴장한 듯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교수님의 첫인상은 정말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의사 선생님 같았다. 이목구비가 잘 생기고 아님을 떠나서 굉장히 반듯하고 깔끔한 인상이었고, 그 무엇보다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건 또렷하고 밝게 빛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아이에게 굉장히 친절한 말투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 아닌듯한 대화를 나누었고, 유심히 아이를 관찰하는 듯했다. 그렇게 잠깐의 인터뷰가 끝나고 아이는 남편과 잠시 나가고 진료 결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아이가 지금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지적해서 말씀해 주셨고, 그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해서 해야 할 치료를 종류별로 제시해 주었다. 나중에 예후까지 묻는 나에게 퍼센트 비율을 제시하며 청소년기에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좋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하면서 나의 모든 질문에 친절하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하며 대답하셨다.
내가 상당히 긴장하고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는지 이건 양육방식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발달상의 문제이고 타고난 영역이니 그런 부분은 자책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진료를 마치고 나온 나의 발걸음은 들어갈 때보다 한결 가벼워져있었다.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고 아픈데도 없다고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희망을 느꼈다. 교수님이 제시한 방향대로 아이에게 도움을 주면 정말 차차 좋아지겠지라는 확신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집 근처 병원에서 검사 후 나온 결과와 크게 차이는 없고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왠지 모르게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 들은 말에 더 신뢰가 갔고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듯 속이 시원했다.
무엇보다 대학 병원 교수는 워낙 진료 환자도 많고 바쁘기에 친절함이나 다정함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과 설명해 주는 태도에서 뭐랄까 따뜻함이 느껴졌고, 나중에 물어보니 남편도 나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역시 대학 병원이라서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최고 엘리트인데 친절함까지 갖추다니. 이래서 크고 좋은 병원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대학 병원 예약을 알아보는 센터 엄마들에게 강력 추천까지 했다.
내가 받았던 참 좋은 인상과 명쾌하고 깔끔한 진료 결과까지 강조하면서 다른데 힘들면 여기로 가라고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교수님의 얼굴도 인상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흐릿한데,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빛은 아직 눈에 선하다. 엘리트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의 교수로 근무하는 아들을 둔 부모님은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하실까. 우리 아들도 저렇게 눈빛이 빛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환상도 품게 되었다. 그 빛나는 눈빛으로 그간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그 자리까지 간 거겠지. 사람의 눈빛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하긴 술과 약에 쩔어있는 사람은 신체의 다른 무엇보다 일단 눈에서 티가 나지 않는가.
평소에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으러 다니는 한 엄마도 내 말을 듣고 그 교수님께 예약을 하게 되었고 진료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받은 인상은 내가 받은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교수님은 조금 냉랭했고, 설명도 길게 해주시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친절하다거나 다정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정말이냐고, 그럴 리가 없다고 몇 번을 다시 물어보았지만 한결같이 별로였다고 자기랑은 그냥 안 맞나 보다고 했다. 나는 괜히 강력 추천해 놓고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 엄마는 어차피 같은 병원에 다른 일로 간 김에 받게 된 거라 괜찮다고 했다.
집에 와서 남편이랑 다시 그 이야기를 했는데, 남편은 당연히 그럴수밖에 없는거라고 했다.
"그날 몇 시에 예약한 환자 특별히 잘 좀 봐달라고, 친한 지인이라고 부탁을 미리 해놨잖아. 그래서 우리한테는 더 친절했을 수도 있지. 항상 그럴 리가 있겠어."
망치로 머리를 쾅 맞은 듯했다. 그럼 그 교수님은 특별히 부탁을 받은 지인이라서 우리에게 조금은 더 호의를 베푸는 태도로 진료를 봐준 걸까? 처음에는 아닐 거라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부탁을 받은 환자라 조금 더 집중해서 봐주었고 나의 질문 세례에도 하나하나 자세히 답변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진료 보는 환자만 해도 엄청날 텐데 매번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절함으로 무장하고 대하자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빽이 통했던 걸까?
빽이라는 말. 어렸을 적에는 많이 들어봤지만 최근에는 그다지 자주 사용하지도 않고,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라서 잘 쓰지 않았던 그 단어가 갑자기 내 마음에 들어왔다. 아는 지인이 부탁해 주었던 거지만 속된 말로 빽을 써서 진료 날짜도 앞당기고 좀 잘 봐달라고 당부도 할 수 있었던 거다.
갑자기 남편의 선배에게 무한 감사함의 마음이 들었다. 아무런 부탁도 미리 언질도 없이 진료받으러 갔더라면 우리도 매일 병원으로 쏟아지는 무수한 환자 중에 그저 하나로 여겨졌을게 뻔하다. 나는 그 의사에게서 친절과 호의는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그 엄마처럼 그저 그런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의사는 정확한 진단을 내려주고 치료 방향만 확실히 잡아주면 되지 말투와 태도가 왜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소아정신과를 찾는 많은 엄마들은 그것들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나보다 훨씬 공부도 잘했고 이 분야의 권위를 가진 의사가 내 자식의 미래를 두고, 조금은 낫낫한 말투로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희망이 보인다라고 이야기해 주면 신기한 마법처럼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조금 더 희생하고 헌신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그 희망을 듣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 대학병원 진료 이후로 다른 병원을 전전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저 교수님이 내려준 처방대로 치료에 집중만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확신의 마음을 보장받은 것만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빽으로라도 그 의사에게서 친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냉철한 이성과 객관적인 태도가 필수조건인 직업이라 모든 환자에게 일일이 친절함을 베풀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따뜻하고 다정함이 배어 나오는 진료는 나처럼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키우느라 마음이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져 버린 부모에게 진료비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서라도 받고 싶은 가치를 지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