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Feb 14. 2023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책이 성공한 이유

베스트셀러의 조건은 뭘까

최근에 같은 작가가 쓴 책을 내리 세 권을 연달아 읽었다.


처음에 읽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에서 중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연세대에 합격한 학생 이야기를 보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이 학생의 엄마가 꽤 유명한 육아서의 저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어떻게 딸아이를 키웠길래 저렇게 큰 무대에 나와서 야물딱지게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한 건지 참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어렵지 않게 그 학생 엄마의 블로그와 썼던 책을 알아볼 수 있었다. 왜 나는 이제까지 그 육아서를 접해보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분이 쓴 책은 과거에 굉장히 유명했던 베스트셀러였고, 큰 내용적 틀에서는 다를 게 없다고 무방한 비슷한 내용의 책을 3권이나 출간한 작가였다.


블로그의 규모도 굉장히 컸고 추종자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아 보였다.


그분의 육아방식과 노하우가 궁금해서 당장 책을 대출해서 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의 부적응을 대비해서 여러 옵션을 고려했을 때 홈스쿨링도 그중 하나였다. 정 하다 하다 안되면 그냥 내가 집에서 끼고 있으면서 애 마음이나 편하게 해 주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분의 자녀는 문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부적응 문제도 없었으며 되려 교우관계도 좋아서 학교 생활도 즐겁게 하던 중에 홈스쿨링을 결정한 거라고 해서 더 놀라웠다. 그리고 그 홈스쿨링을 성공적으로 해내서 단기간에 대학 진학 입시까지 뚫어낸 것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굉장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분의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 서두부터 나는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반말과 비속어는 기본이고 육두문자와 욕설까지 난무하는 글이었다. 예를 들면, 뇬, 남의편느무시키, 지랄 이런 단어들은 수시로 쓰여 있었다. 사실 그런 육아책은 처음이었다. 항상 육아 분야에서 대단한 학위를 지녔거나, 전문가라 칭할 만큼 육아 관련 경험과 노하우가 쌓인 저자들의 책만 읽었다. 별다른 경력은 없어도 아이를 비교적 잘 키워낸 평범한 엄마가 쓴 책도 전문가가 쓴 책만큼이나 다정하고 친절하며 정제된 말투로 쓰여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은 그저 블로그에 쓰인 글을 이모티콘까지 그대로 복붙 해놓은 느낌이었다. 내용도 말투도 그냥 쎈캐릭터 동네 언니가 육아 초짜 엄마들 불러다 놓고 일장연설하는 듯했다.


사실 책 내용까지 별로였으면 또 다른 책도 찾아보지 않았을 터였는데 생각보다 나에게 충격과 신선함을 안겨다 주는 내용이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사교육에 삥 뜯기지 말라는 것, 남편은 그저 돈 벌어다 주는 기계이자 통장으로만 생각하라는 것, 이 구역 책육아 미친뇬은 나라고 생각하라는 것, 동네 엄마들이랑 카페에서 수다 떨면서 시간 죽이지 말라는 것, 학습지는 개나 줘버리라는 것... 등등


평범한 엄마들이 평범하게 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거부하고 아무 쓸모없는 짓거리들로 간단히 치부하면서 오로지 내 아이만 바라보고, 아이 책 많이 사다 주고, 집에서 영어 노출만 많이 해주라고 연신 강조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시작된 학습지를 포함한 여러 사교육들도 예체능 중에 꼭 필요한 것 딱 한 가지만 남겨놓고 모두 다 필요 없다고 한다. 그 학원 왔다 갔다 하는 소중한 시간을 모아 모아서 아이가 놀 수 있게 하고, 놀고 남은 시간에 책을 읽히란다. 책만 많이 읽으면 아이의 사고력, 어휘력, 문해력은 다 보장받을 수 있으니 초등학교 점수 몇 점에 휘둘리지 말라고 한다.


사교육 시장에서 이 책을 굉장히 싫어할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육아를 해서 아이는 17세에 당당하게 수능으로 명문대에 합격하기까지 했으니 책육아의 산증인이 된 셈이다.


좋게 말하면 시원시원한 말투지만,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글에 불편함을 느꼈으면서도 뭔가에 이끌렸는지 나는 그분이 쓴 다른 책도 다 찾아봤다. 내용은 다 비슷비슷하다.


나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많이 학습을 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읽기 독립도 제대로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국어 독해교재를 사서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맹목적으로 풀리고 있는 건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전집을 종류별로 구비해 놓고 아이가 읽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본 적은 있는지..


무조건 학원에 보내고, 센터에 보내면 아이가 더 똑똑해지고, 더 발달이 올라올 거라는 기대만 하면서 아이의 교육을 자꾸만 외주에 맡기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고 학습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기에 예체능 위주의 학원을 다니고 내 주관적 기준으로는 학습량도 대치동의 학군지에 사는 또래 아이들에 비하면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양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말투는 친절하지도 않고 거의 욕쟁이 할머니에 가까운듯한 느낌이었지만, 육아에 있어서 내가 놓치고 있던 본질을 돌아보게끔 했다. 자연스럽게 책에 많이 노출시키고, 사교육에 애를 맡기지 말고, 스마트폰 사주지 말고, 힘들고 귀찮더라도 집밥을 해 먹이라는 것. 방학이라고 스케줄 짜서 여기저기 아이를 센터며 학원으로 내 몰지 말고 그저 방학만이라도 늦잠 자고 하루종일 놀면서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을 주라는 것도.


누가 나에게 이런 육아 조언을 한 적이 있었나 자문해 보면, 없었다.

내 주변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면서 학원을 안 보내고 책육아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무 많이 보낸다 싶은 사람은 있어도 한 두 군데만 보내는 사람도 없다. 일하는 직장맘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지인들도 많지만 전업주부라고 해서 애를 학원을 안 보내지는 않는다.

더 좋은 학원에 더 보내고 싶으면 싶어 했지, 사교육을 줄이고 줄여서 집에서 책 좀 읽혀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뒤늦게라도 나도 책육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접하고, 아이가 가기 싫어하는 학원 한 개는 정리하고 앞으로도 절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정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저자가 말한 대로 최대한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를 많이 줘보려고 한다.


내가 몰라서, 알지 못해서 외면해 왔던 그 본질을 다시 되찾아보고 되새겨보려 한다.


비록 전달하는 방식은 우아하고 정갈하지 않았지만, 그분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던지는 파격적인 메시지에는 진심과 진정성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분의 추종자들의 간증글도 살펴보면 그 육아법을 따라한 결과 아이가 잘 성장했다는 사례도 많다.


그러고 보면 책을 출간하고 성공하는 데에는, 글을 잘 쓰는 글쓰기 능력이나 솜씨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저자의 유명세, 스타성, SNS에서의 인지도, 영향력 같은 게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다. 유명 블로거가 블로그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갖다 붙여도 육아서 분야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니 말이다.


좋은 책,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언젠가 내 능력과 기회가 허락한다면 출간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많이 써보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 글솜씨를 향상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좀 틀린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과장되고 화려한 수사문구 하나 없이 너무나 솔직하고 진솔한 말투로 쓴 책도 이렇게 유명세를 타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니 말이다. 하긴 평범한 대중에게는 읽기 쉽게 친숙한 말투로 쓰인 그 책이 편하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육아서로 꽤나 매력적이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유명세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인지 그분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 댓글에 생각보다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내용이 많아서 또 한 번 놀라긴 했다. 나름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판도 있어서 나는 다시 한번 고심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 비판적인 시각 없이 그 저자의 책에서 주장하는 육아 방식에 거름망 없이 푹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지. 각자 아이마다 저마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 다르고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마스터키 같은 건 육아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그 방식을 내 아이에게 적용하며 맞추는 건 무리인가 싶기도 했다. 


아니면 그 비판의 댓글들은 질투와 부러움의 시샘에서 나온 것들일까? 직장일이 바쁜 워킹맘에 한부모가정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남들은 정규교육과정을 다 거쳐도 이루어내기 힘든 명문대 입시를 이삼 년 앞당겨서 홈스쿨링으로 해내었으니, 보통 사람의 눈에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저 그 아이가 처음부터 태어나기를 그렇게 타고나서 결과도 좋았다고 말해버리면, 내 아이와는 맞지 않다고 주장해 버리면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책육아 독서로 그렇게 대단히 훌륭하게 키웠으면 아이비리그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댓글도 있었다. 댓글을 보다 보니 또 그 논리에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저자의 고상하지 못한 말투와 무조건 내 말이 맞다고 강하게 어필하는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지고 거부감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할 수 있다. 


이래서 나만의 관점과 철학이 있어야 하나 보다. 남이 책에 쓴 글들을 그 책이 아무리 유명하고 베스트셀러였다고 할지라도 무비판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건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이다. 극적으로 말하면 가스라이팅 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저자에 대해서 남들이 쓴 부정적인 댓글에 휩쓸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 저자가 주창하는 육아 방식에 있어서 내가 백 프로 수긍이 가고 받아들여도 될 부분은 가감 없이 배워서 실천하되, 나와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 부분들은 가지치기하면서 나의 스타일에 맞게 조정해 나가면 될 일이다. 무작정 달려들어서 따라 했다가 나만 피해 보면 모르지만 내 아이의 성장 문제까지 달린 일이므로. 


그래도 육아서는 읽다 보면 거기서 거기이고, 다 비슷한 내용에 재미도 없고 더 이상 배울 것도 없다고 느껴졌던 요즘, 나에게 한 줄기 커다란 파장을 일으켜준 책과 그 저자를 만난 것 같아서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