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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27. 2023

엄마표영어는 과연 돈이 안 드는가

느린 아이의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쩔 수 없이 엄마표영어를 하는 중이다. 

정말 유명한 잠수네영어 소속 회원이나 엄마표영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본다면 코웃음 칠 수준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내가 집에서 하고 있으니 허접한 수준이더라도 엄마표영어라고 불러도 될 자격은 있는 것이다. 


아이가 언어발달지연과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마치 주홍글씨처럼 이 진단명이 내 가슴에 새겨졌고, 모국어도 제대로 습득시키지 못한 주제에 외국어인 영어를 공부시켜 보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이었다. 아이의 언어습득이 느려진 게 나의 양육 방식과 가정환경 탓이 아닌 청각적 주의력이 태생적으로 약한 탓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느린 아이를 보며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되고 자꾸 내 자아가 쪼그라들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건 막기 어려웠다. 


이제 와서 해봤자 무의미한 이야기지만, 아이가 만약 정상발달이었다면 나는 유아기 건강한 아동발달에 대한 책 따위 제대로 읽지도 않았을 것이고 무조건적인 조기 학습의 노예가 되어서 영어유치원과 대형어학원이 당연한 교육의 수순이자 부모의 의무인 것처럼 여기고 보냈을 것이다. 


영어유치원에 따로 보내지 않는 엄마들도 아이가 7세 정도가 되면 학습지든 방과 후수업이든 어학원이든 어떤 형태로든 한 가지씩은 영어 학습을 맛보기 차원에서 시키는 것 같았다. 7세에도 내 아이의 언어적 상호작용능력은 또래에 비하면 답답하고 느렸기에 영어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초1, 8세가 되고 의사소통능력도 많이 좋아지고 이제야 좀 상호작용이 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피아노학원에서 이론 공부 할 때에도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가 자주 나오기 시작했고 의외로 일상에서도 외래어가 많이 들어와서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어서 아이도 그런 외래어 표현들을 궁금해했다. 이제는 영어를 조심스레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영어는 따로 하지 않던 주변 아이들도 동네 영어학원을 알아보고 파닉스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주의력이 낮은 아이를 학습 학원에 보낼 자신이 없었다. 물론 초반에는 학습 위주보다는 영어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 리스닝 연습 위주로 쉽게 하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학원 스케줄에 영어학원을 추가하면 무조건 거부할 각이었다. 하교 후에 학원이나 센터 스케줄이 두 개 이상 넘어가면 그날은 굉장히 예민해지고 짜증을 부리면서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날이 많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규칙을 지키면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교 후에는 집에서 편하게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이를 내 욕심에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봤자 교육효과도 크지 않을뿐더러 하루종일 아이와 신경전만 벌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러한 상황과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영어는 엄마표로 내가 시작하게 되었다. 

청각적 주의력이 낮아 모국어 습득도 워낙 어려웠고 힘들었던 아이에게 소리노출 따위를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 무조건 학습식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괜찮아 보이는 파닉스 교재를 사서 하루에 한 단원씩 해나갔다. 얇은 파닉스 교재 두 권을 끝내고도 여전히 파닉스를 떼지 못하는 것 같아, 앱으로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스마트파닉스 교재를 사서 했다. 


처음 몇 달은 재미있어하면서 열심히 하더니 점차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해야 할 숙제와 공부량이 늘어나니 어떤 날은 한 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해도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기존에 하고 있는 학습지에 국어 독해력 문제집과 한자 자격시험공부에 영어공부까지 더하니 내가 생각해도 아이가 힘들 것 같았다. 더욱이 책상에 앉아 학습을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독서와는 거리가 더 멀어졌다. 


우연찮게도 그 시기에 책육아 관련 책을 읽고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읽기 독립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혼자 스스로 줄글로 된 동화책을 먼저 찾아서 읽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였다. 스스로 읽는 건 오로지 만화책뿐이었다. 


파닉스 교재도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나자, 이제 영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고민이 되었다. 내년이면 3학년이라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데 아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아이 어렸을 때 사두었던 엄마표영어책을 다시 찾아 읽어 보았다. 


엄마표영어의 기본은 다음과 같다. 충분한 소리 노출- 그림책 읽어주기 - 집중 듣기 매일 연습 - 리더스북 - 챕터북 - 소설책과 같은 절차다. DVD 애니메이션을 매일 꾸준히 보여주면서 영어 소리에 충분히 노출시키고 그러면서 쉬운 그림책을 사서 보게 하고 적당한 때가 되면 집중 듣기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그림책은 최소한 500권을 읽게 하고, 리더스북, 챕터북도 500권씩은 읽어야 읽기 실력이 향상된다고 했다. 

엄마표영어의 핵심은 아이가 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받을 필요도 없고 학원 스케줄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집에서 편하게 보고 듣고 읽으면서 영어를 습득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책 500권이 말이 쉽지 어떤 책을 어디서 얼마큼 사야 하는지부터가 감이 오질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영어전공이지만 유아용 쉬운 그림책에 대해 따로 알아본 적도 없고 구매처가 어디인지도 잘 모른다. 책에 몇 개 사이트가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긴 하지만 그런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방대한 영어책과 레벨별 추천 도서와 베스트셀러 목록들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전공자인 나도 이러할진대 학교 졸업 후 따로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은 엄마들이 엄마표영어를 한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할까. 정말 그런 엄마들은 장한 어머니상을 받아 마땅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포기할지언정 한 번 시도는 해보자 싶어서 아이 수준에 맞는 애니메이션 DVD도 사고 DVD 플레이어도 구매했다. 이것만 해도 20만 원 이상이 들었다. 이미 초등학생들이 보는 현란한 화면과 폭력성이 적당히 가미된 만화에 노출된 아이라 잔잔하고 교육적인 분위기의 dvd를 보여주면 과연 보려고 할지 걱정이 되었다. dvd 플레이어를 TV에 연결하는 것도 기계치인 나는 한참 헤맸다. 이렇게 애썼는데 아이가 싫어하고 거부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나의 노력에 부흥했는지 아이는 유아기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아주 좋아했고 매일 보고 싶어 했다. 짧고 쉬운 단어들은 기억했다가 따라 말하기도 하고, 중간에 나오는 노래들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소리 노출일 뿐이고, 중요한 건 그림책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표영어책에서도 리더스북, 챕터북보다 훨씬 중요한 게 그림책이라고 했다. 리더스북은 언어 능력 레벨별로 구분되어서 나오는 책이라 각 세트마다 나오는 문법과 어휘 수준이 한정적이고 그렇기에 재미와 감동도 덜할 수밖에 없다. 


영어 그림책이 좋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재미, 반복, 자연스러운 습득

2. 어휘력이 향상된다.

3. 문법, 말하기, 쓰기까지 모두 키울 수 있다. 

4. 생활과 문화를 익힐 수 있다. 

5. 그림을 보며 감성, 창의력,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그림책은 문학작품이고, 작가가 자유롭게 쓴 글이다 보니 제한된 단어로 쓰인 리더스북에 비해 어휘와 문장 수준이 높다. 그림책에 나오는 낯선 어휘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어휘력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고 하니 그림책을 안 보여주면 엄마표 영어를 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열심히 영어 그림책을 검색해 보았다. 그림책은 우리나라 유아동 책처럼 5,60권씩 전집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고 세트라고 해봐야 대여섯 권 묶여있는 식이라 정말 한 권씩 검색해 보고 사야만 했다. 연령별 추천 도서 목록을 사이트에서 하나씩 일일이 검색하고 아이의 취향에 맞을지 고민해 보면서 조심스럽게 장바구니에 담았다. 영어책 중고사이트도 있지만 검새해 보면 없는 책이 더 많았다. 그리고 영어그림책은 종이가 얇은 편이라서 중고티가 많이 날 것 같았다.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 아깝지 않겠지 싶어서 그냥 새 책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7,8권 담으니 금방 십만 원이 넘어갔다. 영어그림책 몇 권이 개똥이네에서 사는 우리말 전집보다 훨씬 비싼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건 영어학원비 생각하면 훨씬 싼 거라고 자위했고 남편에게도 잘 설명했다. 나름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책에서 골랐는데 아이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8권 중에서 그나마 좋아하는 건 한 두권뿐이었다. 나머지 책들이 너무 아까웠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서 한 번 봐보라고 하고 아주 재미있는 책인 척 연기하면서 읽어줘 봐도 마음에 안 든 책은 끝까지 안보는 아이였다. 


얼마 후에 또 큰 마음먹고 인기 있는 그림책에 아이의 평소 기호와 취향을 고려해서 심사숙고한 끝에 10권 정도를 구매했다. 이번에도 십만 원 정도를 결제했다. 저번에 구매한 게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니 한 달 내에 영어그림책에만 20만 원을 쓴 셈이다. 게다가 이번에 온 책 중에서도 아이는 한 권에만 꽂혀서 그것만 매일 보려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언제 500권을 채운담? 


엄마표영어 책에서는 일주일에 4권이면 일 년에 200권이고, 이런 식으로 하면 500권은 너끈히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아이는 일주일에 한 권도 겨우 보는 것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빌릴 수도 있지만 그건 기한 내에 보고 다시 가져다줘야 하기에 반복적으로 볼 수가 없다. 그림책 노출이란 집에 책을 구비해 놓고 아이가 언제든지 다시 꺼내보고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서 내용을 유추하고 익혀나가는 의미가 있는 건데 빌려보는 건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림책만 500권을 보면 안 되고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리더스북도 그림책 못지않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책들을 다 사자면 차라리 영어학원에 가는 게 더 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권에 만원이 채 되지 않는 책도 있긴 하지만 영어그림책 한 권에 만원이라 치면 500권이면 5백만 원이다. 그리고 내가 산 책을 모두 다 마음에 들어 하고 읽는다는 보장도 없다. 정말 500권을 채우려면 넉넉하게 7,800권은 사서 구비해 놔야 그중에 절반 정도 읽어주면 어찌어찌 채울 수 있게 된다. 이건 영어 그림책만 계산한 거니까 리더스북에 챕터북까지 추가하면 더 많이 든다. 물론 리더스북이 세트 개념이라서 중고로 구매하려면 할 수도 있다. 


집에 이렇게 충분히 영어책을 구비해 두려면 한 달에 최소 20만 원씩은 투자해서 꾸준히 사둬야 한다. 게다가 dvd도 한 가지만 볼 수 없으니 때가 되면 추가 구매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엄마표영어를 꾸준히 하려면 엄마가 많이 신경을 써야만 한다. 매번 cd만 들려주면서 책을 읽어줄 수도 없고 전공자가 아니라면 미리 단어라도 찾아보면서 영어책을 공부해야만 한다. 전공자인 나도 관용적 표현이나 낯선 단어들이 나올까 봐 읽기 전에 미리 체크하고 보는 편이다. 


동네 엄마 아이가 평판이 괜찮은 어학원에 소수 정예로 운영하는 파닉스반에 들어갔는데 학원비가 한 달에 20만 원도 안된다고 한다. 게다가 원어민 선생님이 매번 30분씩 수업도 해준다고. 물론 비학군지이고 유명 체인 어학원은 아니라서 특이하게 저렴한 편이긴 하고 단계가 올라갈수록 원비도 같이 상승하긴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굉장히 솔깃했다. 내가 집에서 어설프게 엄마표로 하느니 학원 가서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레벨별로 잘 만들어진 교재로 공부하면서 따박따박 실력 늘려가는 게 훨씬 더 가성비 좋지 않을까?

남편까지도 이렇게 애니메이션이나 보고 그림책 한 두 권씩 본다고 애 영어가 늘겠냐며 차라리 학원을 알아보라고 한다. 제아무리 전공자라고 해도 제 자식 가르치는 게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다. 


이미 구매해 둔 그림책은 또 질려하기 시작해서 또 새로운 그림책 구매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기왕 시작한 거 얼마간은 더 하긴 해야 하는데 확신이 서질 않는다. 엄마표영어 관련 책을 더 사서 읽어야 확신이 생길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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