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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21. 2023

스마트폰 안 사주면 극성엄마인가요

요즘 시대 극성스러운 엄마 되는법 

초등교육전문가이자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신 이은경 선생님 유튜브를 자주 보는 편이다. 초등 저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에게 친한 언니처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많이 해주고 영상 길이도 짧은 편이라 보기 좋다. 여러 영상 중에서 내 눈에 끌리는 썸네일이 있었으니 바로 "제대로 극성스러운 초등 엄마 되는 법"이라는 제목이었다. 이은경 선생님이 극성스러운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니, 무슨 내용일까 굉장히 궁금해졌다.


보통 극성 엄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자식 교육에 대한 대단한 욕심과 학구열로 무장하고 대치동과 같은 학군지에 거주하면서 그룹을 짜서 각종 사교육을 시키고, 남편 및 부모의 재력을 등에 업고 학교에 가서는 치맛바람을 가감 없이 과시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드라마 인물로 치자면 스카이캐슬의 곽미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설마 이은경 선생님이 이런 극성 엄마가 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싶었다. 궁금함에 바로 영상을 보았는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의 극성 엄마가 되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초등 극성 엄마가 돼 보자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다.


이은경 선생님이 말하는 극성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네 가지란 스마트폰, 거짓말 습관 잡기, 식단과 수면, 함께하는 시간 늘리기였다. 이게 무슨 극성 엄마의 조건인가 싶어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굉장히 공감이 갔다.


스마트폰 사용에 관해서 선생님은 아이 명의의 스마트폰을 사주는 건 가능하다면 최대한 늦게 사주는 것이 가장 좋고, 이미 사줬다고 한다면 부모가 철저히 관리해줘야 한다고 했다. 어떤 앱을 새로 깔았는지도 확인하고, 받고 싶은 앱이 있으면 부모의 허락을 미리 받아야 하고, 잠금 비밀번호도 공유하고 있는 편이 좋다고 한다. 엄마 아빠 몰래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부모가 시시때때로 체크하면서 관리하지 않으면 어린 나이에 접하지 말아야 할 위험한 것들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이 핸드폰의 잠금 비밀번호까지 공유하는건 아이의 프라이버시도 있는데 조금 과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은경 선생님은 이 부분에서는 조금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공유해서 알고 있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최대한 늦게 사주려고 한다. 안 그래도 뇌발달이 느려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약 복용까지 하고 있는데 이런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두렵다. 보통 아이들보다 더 중독에 취약하고 자기 조절력이 떨어지는 아이다. 유아기 때 멋 모르고 유튜브에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상들을 보여줬다가 아이가 심각하게 그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영상들도 한번 꽂히고 나니 도저히 절제가 되지 않았고, 아이는 그 영상을 보고 있을 때면 아무 생각이 없는 멍한 상태로 화면만 바라보는 좀비가 된 것 같았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차단시키긴 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에게서 스마트기기를 차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스마트기기를 아예 차단시키지는 못하고 집에서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는 시간을 정해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두는 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만큼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서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아주 늦게 천천히 해주고 싶다. 전두엽 발달이 느려서 adhd약을 먹고 부작용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전두엽 발달을 저해하는 효과가 있는 스마트폰을 안겨주는 일은 아이의 뇌를 내 손으로 망가뜨리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가 가족끼리 집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학교도, 학원도 다니다 보니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점점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는 초1이라 그나마 한 반에 절반정도였다고 하면 올해에는 훨씬 더 늘어난 것 같다.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동네 엄마도 학원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영어학원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사주게 되었다고 했다. 이 엄마도 아이가 집에서 패드로 게임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스마트폰은 웬만하면 늦게 사주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아이의 성화에 못 이긴 듯하다.


놀이터에서도 이전에는 잡기 놀이나 얼음땡 같은 놀이를 하면서 놀았는데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서 카톡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뭔가 고개를 푹 숙이고 집중하고 있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도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니 아이는 더 소외감을 느끼는지 자기는 언제 사줄 거냐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누구랑 누구는 아직 없잖아. 핸드폰 있는 친구들은 엄마가 일하셔서 바빠서 연락하려고 그런 거야."라고 해서 설득이 가능했다. 반은 있고 반은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 중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는 센터 친구들 빼고는 단 한 명뿐이다. 더 코너로 몰리는 기분이 든다. 아이에게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까. 어떤 말로 잘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야 할까. 아직 너는 스마트폰을 쓰면 안 된다고. 조절할 수 없는 나이라고 말이다.


물론 부모가 앱 사용을 막을 수 있고 게임 앱도 못 받게 할 수 있는 기능들이 다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두렵고 무섭다.


아이들이 아무 문제없고 건강했다면 나도 별생각 없이 아이에게 폰을 사주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는 초등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극성스러운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주변 대다수가 하고 있는 걸 혼자 꾸역꾸역 하지 않고 버텨보고 있으려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가 아이와 이렇게 싸워가면서 매번 어르고 달래며 설득하다가 지쳐가면서, 돈 없어서 못 사주는 것도 아닌 스마트폰을 내 아이로부터 지켜보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답답할 때가 있다.


시부모님은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하니 3학년때는 사주라고 하시는데, 사실 나는 3학년도 이르다고 생각해서 사주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adhd 증상이 눈에 띄게 완화되어서 주의력이 좋아지고 시지각 예민함이 많이 줄어들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사회성이 좋아진다면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사주고 싶은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일환으로 집에 유선전화기를 놔주었다. 개인용 휴대폰이 대중적이지 않았던 나 어릴 때 집에 하나쯤 있었던 전화기를 사서 아이에게 전용 전화기로 쓰라고 했다. 스마트폰만큼의 위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신기한지 전화기로 할머니, 할아버지, 핸드폰 있는 친구들에게 심심할 때마다 전화를 거는 아이다. 지금 당장은 꿩대신 닭이라고 이걸로 만족하는 듯한데 언제 또 스마트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지 모르겠다.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잘 가르치는 것도 버거운데 스마트기기로부터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사명감까지 더해지니 부모노릇하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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