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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20. 2023

집에 구구단 곱셈표말고 시를 붙여봅시다

기품이 넘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을 읽었는데, 나에게 굉장한 영감을 주는 책이었다. 왜 이제야 이 책을 만나게 된 건지 자책하게 될 정도다. 아니,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되어서 도리어 감사해야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은 육아서이긴 한데 일방적인 충고와 조언이 난무하는 흔한 육아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꼭 기억해두고 싶은 페이지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는데, 그중에 저자가 냉장고나 책상에 출력해서 붙여두고 아이가 반복해서 볼 수 있게 하면 좋다고 소개한 시가 있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배우지만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를 통해 꾸준히 돈과 마음을 기부했다. UN의 주도하에 그녀의 선행을 기리기 위한 오드리헵번상을 제정할 정도였다.


오드리 헵번의 어머니는 그녀가 어릴 때부터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하며 몇 가지 조언을 남겼다.


첫째, 친절하라.
친절은 가장 좋은 매너다. 언제나 다른 이에게 친절해야 한다.      

둘째, 시간을 철저히 지켜라.
늘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먼저 생각하라.      

셋째, 경청하라.
남들에게 네 이야기를 많이 하지 마라.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넷째, 바른 자세를 유지하라.
똑바로 서고, 몸을 곧게 세워 앉아라. 그리고 술과 사탕을 절제하라. 자제력을 잃는 것은 좋지 않다.

다섯째,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라.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라.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데 집착하지 마라.




다음은 오드리 헵번이 유언으로 남기 시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다면
친절하게 말하고,

아름다운 눈을 갖고 싶다면
사람들의 장점을 보라.    

아름다운 몸으로 살고 싶다면  
배고픈 사람과 너의 음식을 나누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다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고,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다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기억하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며,  
병과 무지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그리고 기억하라.
네가 나이가 들면
너는 네가 왜 두 손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는 너를 위한 손이고,
나머지 하나는 남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손이다.

- 세월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 샘 레벤슨     



나는 전부터 항상 인성이 훌륭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목표를 다이어리에 쓰곤 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하면 아이의 인성이 훌륭해질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며 사회적 관심을 일으키고 있고, 과거에 학폭 가해자였던 공인들이 속속들이 드러나서 뒤늦게 대중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무리 자기 분야에서 대단한 공을 세우고 멋지고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과거 어렸을 때 실수였든 고의였든 추악한 인성을 보여주는 행동을 한 사람을 사람들은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그만큼 인성이 중요한 시대다.


그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히고, 길 가다가 어른들 만나면 정중히 인사를 시키고, 부모가 모범을 보이면 되는 걸까? 부모가 훌륭한 인성을 매 순간 모범을 보이며 실천하기란 참 어렵다. 나만해도 평상시에는 잘 모르겠는데 유독 운전할 때 누가 갑자기 끼어들거나, 위험하게 운전하는 주변 차들을 보면 비속어가 튀어나온다. 아이 앞이라 최대한 조심하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아이에게 최대한 본이 되고 싶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다.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저자는 기품이 넘치고, 긍정적이고, 밝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자기 삶을 귀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좋은 글을 필사하면서 곱씹어보거나 위에 소개한 아름다운 의미를 내포한 시를 냉장고에 붙여두고 아이가 수시로 볼 수 있게 하면 좋다고 한다.


시를 출력해서 냉장고에 붙이기만 하면 인성이 훌륭해진다고?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


나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왜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름다운 글귀나 시를 집안에 어디라도 써서 붙여볼 생각을 못했을까? 부끄럽게도 우리 집 아이 방과 거실 한쪽 벽에는 곱셈 구구단, 우리나라 지도, 영어 알파벳, 한자, 한국사연대표로 꽉 차 있었다. 온통 지식 전달 도구 포스터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이런 걸 붙여두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도 든다.


반신반의로 위에 시를 출력해서 붙여두고 하교한 후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한 번 읽어보라고 했더니 싫어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큰 목소리로 읽어준다. 다 읽고 나서 아이가 하는 말.


"이렇게 살면 된다는 거죠? 그렇게 해볼게요."


말이라도 이렇게 해주니 정말 놀라웠고 감사했다.

내가 그동안 안 해줘서 아이가 몰랐고 배우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철학이 담긴 글을 벽에 붙여둘 생각을 왜 이제까지 하지 못한 건지.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책에 나오는 훌륭한 학자나 현인들처럼 매 순간 모범을 보여줄 자신은 없지만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글을 접하게 해 주는 건 좀 더 쉽지 않은가.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바꿔가면서 좋은 시를 출력해서 붙여두어야겠다. 갑자기 변하지는 않겠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슬며시 아이의 마음속에 좋은 기운들이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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