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 극내향 아들 이야기
아주 오랜만에 예전 직장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20대 시절을 함께 보냈던 우리는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지역이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연락도 뜸해졌다. 그런 관계가 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도 왠지 마음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는 관계라고나 할까.
직장 생활 초년생이었고 워낙 철없던 아가씨 시절을 함께 보냈다. 연차 높은 선배 직장 동료들과의 갈등과 은근한 괴롭힘에 우리는 마치 한 배를 탄듯한 전우라도 되는 듯 똘똘 뭉쳤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자주 술자리를 가지며 직장 생활의 애환을 공유했고 취했다. 지금은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20대 때라 그런지 참 피곤함도 느끼지 않고 열심히 술도 마시고 험담도 해댔다.
그런 과거의 추억 탓인지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어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얼마나 컸는지 이야기하면서 근황을 확인하고, 예전 추억을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엄마"라는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지 놀리느라 바빴다.
아이가 아파서 치료받는다는 사실은 지인도 모르고 있었는데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하게 되었다. 현재 아이가 가지고 있는 증상과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고 거기에 신경 쓰느라 또 살기 바빠서 연락이 뜸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는 갑자기 아이 치료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어떤 치료를 어디서 어떻게 받는 것인지 자세히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애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ADHD 증상 때문에 언어발달도 느렸고, 그래서 자존감도 낮고 사회성 발달도 늦어져서 사회성 그룹 수업 꾸준히 받고 있어요. 약물 치료도 병행하면서."
아 그런 거였구나, 하더니 그렇다면 그런 수업을 하는 센터는 어떤 곳인지, 사회성 수업을 받게 되면 어떤 내용으로 뭘 가르쳐주는 곳인지 나에게 더 자세히 물어보는 것이었다. 일단 내가 아는 선에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한창을 센터 치료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런 치료가 왜 궁금하냐고. 내가 아는 바로는 아이들 둘 다 똑똑하고 야무져서 각종 경시대회 상도 휩쓸면서 학교 생활도 잘하는 것 같던데 뭐가 걱정이냐고. 그녀는 전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어렵사리 대답했다.
"큰 애가 너무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자기표현을 제대로 잘 못하고, 엄마인 나도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애 어렸을 적부터 나도 그냥 자기처럼 센터 같은데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나 싶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받아쳤다. 우리 애는 정말 병원에서 검사받고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치료가 당연히 필요한 거고 그 집 아이는 그냥 애가 성격이 원래 좀 내성적인 건데 무슨 치료를 받냐고 말했다. 성격은 본래 타고나는 부분인데 그걸 센터 데리고 다니면서 사회성 수업받는다고 달라지겠느냐고 말이다.
"아니야, 얘도 어렸을 때 말도 좀 늦게 터지기도 했고 행동이 굼뜬 면이 있었어. 학습면에서 워낙 잘 따라가는 편이라 내가 그런 쪽으로 생각을 안 해봐서 그렇지. 그러다 결국 중학생이 돼버렸는데, 여전히 답답해."
사정을 자세히 들어보니 아이는 본인이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두 세명 정도가 있는데 그 아이들 외에는 일절 말을 아예 섞지를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그 친구 몇 명도 다른 반이 되는 바람에 지금 반에는 친한 친구가 없으니 하루 종일 학교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나가는 일도 절대 없고 주말이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편이라고. 그 나이 때면 친구들 만나서 축구도 하고 PC방도 다니고 할 법한데 전혀 그러지를 않아서 걱정이라고. 학교나 학원 가서도 선생님께 겨우 "네.."라고 대답만 하는 정도지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를 못한다고.
그제야 나는 조금 걱정이 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MBTI 성격 유형에서 극 I 정도의 성격이라서 그런 거겠지 했는데 좀 그 수준을 넘어섰나?라는 생각도 조심스레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에 휩싸인 그녀에게 이제라도 병원이나 센터에 데리고 가서 상담받아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예민한 부분은 부모가 직접 필요성을 느끼거나 아주 친한 가족이나 선생님이나 건들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고 성격이 극내향성일 뿐 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사회성 그룹 수업을 받고 센터 치료를 받는다고 한들 내향적인 성격이 하루아침에 외향적으로 바뀌게 될까?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성이 좀 나아져서 지금보다 친구도 조금 더 쉽게 사귀고 어울리게 될까?
자꾸만 나에게 사회성 수업의 효과를 물어보는 그녀에게 뭐라고 단언해 주기는 어려웠다. 그저 안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정도의 대답만 해주었다. 그룹 치료를 받으면서 얻은 커다란 수혜는 그나마 아이에게 매번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있다는 위로를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 학원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귀기 힘든 게 친구인데, 그나마 반강제로 매주 센터 다니면서도라도 만나는 고정된 친구들이 있으니 다행인 것이다. 혹여 아이가 한 번씩 "나는 친구가 없잖아."라고 하면, "네가 왜 친구가 없어? 센터 가면 누구도 있고 누구도 있잖아!" 당당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
만약 그녀가 내 가족이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 번 병원이든 센터든 가서 객관적인 검사를 한 번 받아보고, 아이에게 혹시 어떤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해주었을 것 같다. 꼭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제는 정신과 다니면서 상담받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다. 그렇게라도 아이의 마음속에만 꼭꼭 담겨두고 있는 이야기들을 한 번씩 편하게 토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면 조금 도움이 될 것 같다.
내향성도 너무 극단적이면 사회적인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조금은 도와줘도 되지 않을까. 뭐, 내향이든 외향이든 너무 한쪽으로 치닿으면 살기 편치는 않은 세상이다. 뭐가 됐든 아이의 마음이 좀 더 편해지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게 부모로서의 역할이겠지.. 그녀의 아이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한참동안 하다가.. 문득 내 자식 걱정이나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