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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02. 2024

남편, 자식보다 돈이 좋아?

그까짓 돈이 뭐라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해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를 밀착케어 할 수 있다는 점, 가족들 건강을 고려한 음식을 한 번이라도 더 챙겨줄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이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돈이다.


주 5일 하루 8시간가량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바치고 매달 통장에 꽂혔던 월급이 끊어지고 점점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게 되니 자존감도 같이 하락하는 기분이 든다. 그까짓 돈이 뭐라고! 세상에 돈보다 중한게 얼마나 많은데. 몇 년간의 월급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올인함으로써 얻게 된 게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하자면 모자랄 정도다.


출근할 적에는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매일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아이 치료에만 온종일 매달리고 싶었고 정말 그렇게만 한다면 아이가 금방 정상발달의 꽃길로 되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놓쳐버린 영유아 시기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커리어고 돈이고 다 포기하고 그때 일을 그만뒀더라면 아이가 정말 내 희생과 헌신에 보답이라도 하듯 곧바로 좋아졌을까? 나아지는 시기는 조금 앞당겨졌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좋아졌을지 여부는 단언할 수 없다.


한 때는 커리어 내에서 성장도 꿈꾸고, 여러 업무 분야를 통달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나한테 맡기면 뭐든지 잘 해낸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어서 모든 일을 꼼꼼하게 빈틈없이 처리하는 척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 나에게도 좁은 승진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하고 실제로 기대해보기도 했다.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도 하고, 정말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보람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뭐냐 내게 묻는다면, 오로지 돈 하나뿐이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내 월급, 내 돈. 남편이 보내주는 생활비 말고, 순수하게 내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 말이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에는 돈에 대한 집착이 크게 없었다. 그게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다. 월급통장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항상 가용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은 늘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였다. 


코로나 생활지원금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전업 동네엄마들이 지원금이 나오는 날짜에 대해서 확인하고 서로 묻고, 어디다 쓸 건지 거창한 계획들을 이야기할 때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해봐야 얼마나 되는 돈이라고 왜 저렇게 부산을 떠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험만큼 나은 공부는 없다고, 이제는 나도 알겠다. 지금이라면 어디서 갑자기 지원금 십만 원이라도 들어온다고 하면 나도 눈에 불을 켜고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으니 말이다.


한창 아이 상태가 더욱 심각해져서 대학병원 진료를 앞두고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시절, 온 가족이 나를 위로해 주기 바쁜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시댁 형님과 통화하면서 나는 초등학교 입학 문제로 울먹이고 있었고 그런 나를 좋은 말로 달래주려고 애쓰고 계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대화에서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한 뉘앙스의 말을 들었다.


"그래도 자네는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돈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되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어. 아이는 점차 괜찮아지겠지.."


".....?"



울다 말고 난데없이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애가 지금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 특수교육지원청에 도움반 신청을 해놓은 상태라서 제정신이 아닌데, 갑자기 웬 안정된 직장타령이지? 자식이 아픈 거랑 내가 직업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그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아서 한창을 멍하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시댁 형님은 그런 대화를 한 기억도 안 나는 게 당연할 텐데, 내 뇌리 속에는 이상하게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형님도 아이를 낳고 유치원 갈 때까지 키운 후에 직장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운 좋게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자리가 계약직으로 생겨서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무리 다 큰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하원을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양가 부모님께 아이 하원과 오후 두세 시간 돌봄을 부탁하게 되었는데, 결국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기도 했고 단 두 시간이라도 아직 에너지 넘치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었는지 모두를 힘들게 하지 말고 그만두라고 하루가 다르게 잔소리를 했던 것이다. 모든 조건에서 참 괜찮았던 자리였는데,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었고 그때 상당히 힘들어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형님은 힘들더라고 워킹맘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중시 여겼고, 그런 내가 부럽다는 의미에서 한 말로 이해가 된다. 그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그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닿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참했던 이력 때문에 버림 당하지 않는 것만이 살길인 줄 믿었던 지난날의 임이네는 아니었다. 남편 없어도 돈 있으면 산다는 배짱이었다. 용이보다,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돈에게만 그는 그 자신의 장래를 걸었다. 이 세상 마지막이 온다 하여도 혼자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왕성한 생명력, 불모의 바위틈을 피 흘려가며 기어오르는 생명에의 의지, 무서운 힘이었다.

박경리 <토지>



박경리 님의 <토지>에는 다양한 인물이 나오지만 그중에 눈길이 가는 건 단연코 임이네라는 사람이다. 안하무인에 입놀림도 가볍고 도덕성, 양심, 염치 따위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물이다. 농사지을 적과 달리 일제 지배가 시작되면서 장사를 시작하게 된 임이네는 돈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돈 앞에서는 남편도 자식도 다 포기해도 좋을 만큼 오로지 돈이 자신을 구원해 줄 신인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뒷돈을 빼돌리면서 일수를 돌리고 돈을 부풀려 나가는 재미에 산다. 결국 얼마간의 쌈짓돈도 대형화재로 인해 물거품처럼 다 사라지게 되지만. 돈에 대한 그의 집념과 집착은 무서우리만큼 치밀하고 대단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남편, 자식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기다니 이건 좀 아니지..라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다. 그러다 나 자신에게도 물어보았다.


'너는? 너에게는 남편, 자식보다 돈이 더 중요하진 않니?'


돈으로 모든 걸 다 살 수는 없지만, 돈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상당히 많은 세상이다. 아이의 진료도 치료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지 돈이 없으면 아예 시도조차 해 볼 수도 없는 노력들이다. 돈이 있어야만, 경제적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이 있어야만 아픈 자식을 위해 이런저런 치료뿐만 아니라 발달에 좋다는 것들은 해줄 수가 있다. 


아마 그때 그 순간 시댁 형님께서 나를 위로하신 것은, 그런 의미에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형님은 가지고 싶었고,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워킹맘으로서의 삶,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를 어찌 됐든 그때까지는 아득바득 지켜내고 있었던 나를 위한 따뜻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직접 그 상황에서 경험을 해봐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나 보다. 백번 말로 해도 못 알아들었을 그 말을 이제야 삼켜내는 나르 를 보면. 


 




유퀴즈에 출연하신 원로배우 김영옥 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짧은 영상 속에서 김영옥 님이 한 말들은 주옥같은 명언들이었다. 삶의 관록이 묻어나는 한 마디 그것은. 


"다 돈이 되니까 보람을 느끼는 거지"

"나는 돈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돈 안 받는 일도 해봤는데.. 정말 열의가 안 나더라고"

"돈이 원동력이 된다는 거는 고백합니다"



앞뒤 맥락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면서 돈 때문에 여태껏 열심히 일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재밌어서 몇 번이나 돌려봤다. 돈 안 받고 봉사 차원에서 촬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열의가 안 나서 혼났다는 둥, 오늘 촬영에 하고 나오신 반지와 시계가 블링블링하다는 칭찬에 내가 이런 것도 못하니? 하며 받아치는 장면에서 돈 밝히는 속물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이대 때문에 주연은 아니지만 빛나는 조연역할로 열연하면서 그만큼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걸 알기에 돈이 좋다는 말을 대놓고 해도 비호감이라기보다 오히려 솔직해서 더 호감 가는 느낌으로 다가온 듯하다.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고 어쩌면 숭고한 일이다. 다른 어떤 목적도 아닌 순수하게 자식을 위해서 하는 거라 당당하고 떳떳하다. 그런데 이게 장기간으로 길어지다 보니 왠지 가끔씩 통장잔고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먹고살기 팍팍한 살림은 아니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일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번 돈이 아니라는 의식은 내 자존감을 좀먹는 기분이다. 전업주부는 다 좋은데 하는 일에 비해 경제적으로 내 가치를 환산받을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임신해서 한창 입덧으로 힘들던 시절 일할 때 50대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애들이 한두 살 아주 어렸을 때는 뭘 모르니까 엄마가 출근해도 좀 울다 말았는데 대여섯 살 됐을 때 엄마 출근하지 말라면서 울고 불고 매달릴 때는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매일 들었다고. 그렇게 시댁 눈치 보면서 양가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키운 자식들이 엄마 이제 나이 먹고 체력도 떨어지고 일하기 힘들다고 푸념하면 "엄마,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둬. 그래도 정년 채워야지." 한다는 것이다. 이놈들이 어릴 때는 곁에 있어달라더니 20대 되니 그래도 경제력 있는 엄마가 좋은지 속 보이는 소리를 해서 어이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이는 나를 붙잡고 자기랑 계속 같이 있어달라고 다시는 출근하지 말아달라 한다. 나도 최대한 아이 곁에 오래 머물러주고 싶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엄마~" 부르면서 현관문으로 달려들어오는 아이를 맡을 때마다 마음이 충만해진다. 내가 이거 하려고 집에 있는 거지.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있는 집을 제공해주고 싶어서.


그런데 막상 몇 년 지나면 이 녀석도 대뜸 과거는 싹 잊어버리고 '언제 내가 나랑 있어달라고 했냐고 엄마는 엄마 인생 살아라'라고 하면 어쩌지 벌써 걱정된다. 사춘기만 와도 엄마는 밥 해주는 역할밖에 할 게 없다는데. 


승진이고, 자아실현이고, 커리어 개척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내가 만약 직장으로 돌아간다면 오로지 돈 때문이다. 억대 연봉의 화려한 그들에 비하면 박봉에 푼돈이나마, 늘어나는 통장잔고와 자존감은 꽤나 비례관계라는 걸 몸소 알게 되는 요즘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에서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을 물었더니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족'을 1위로 뽑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1위가 물질적 안녕, 경제적인 풍요로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임을 확인한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지. 풉. 



<이미지출처: 유퀴즈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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