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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01. 2024

상위 1% 카페 가입썰

엄마들 모임에 나가는 대신

대형 포털에 유명한 교육 정보 카페가 있다.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하면, 순전히 검색 결과 때문이었다. '초1 전집 추천' '9세 엄마표영어' 뭐 이런 식으로 내가 궁금한 내용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항상 그 카페가 상위 노출되어 올라와 있었다. 물론 대형 교육 블로거 글도 많았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장점은 댓글을 통해 아주 다양한 정보를 두루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몇 년은 그 커뮤니티의 존재만 알았지 가입하고자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로 방문하는 커뮤니티는 느린 맘 카페였다. 발달장애 진단 초반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카페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고, 아이가 점점 성장하면서 방문 횟수도 자연스레 줄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1등 커뮤니티다. 약물 부작용이며 대학병원 진료 경험담 등 어디 가도 구하기 힘든 귀한 아동 발달 관련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내 검색망에 그 카페가 자꾸 들어왔다. 한 번 가입이나 해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해 보았다가 아주 학을 뗐다. 가입 조건도 복잡하고 등급신청하는 것도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해야 하고 작성해야 할 문답도 많고 굉장히 까다로웠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냥 안 하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하고 나와버렸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네 엄마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도 유치원 보낼 때 매일 만나던 놀이터 친구들과 그 엄마들도 이제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 동네 엄마들 중 일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적응함과 동시에 자기 일을 시작하기도 했고, 골프나 에어로빅 같은 운동에 열정을 쏟는 등 각자의 사유로 바빠졌다. 직장 출근하던 시절에는 비슷한 또래 아이 키우는 동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로도 없으니 차츰 답답해졌다.


센터 엄마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지만 아이 교육에 대한 궁금증과 질문이 생길 때 바로 답변을 얻거나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남편은 뭐 이야기해 봤자 항상 자신의 뛰어났던 초중등 시절 누렸던 영광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때문에 기분만 상할 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 사립대안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지인이 궁금한 게 있어서 정보를 얻고 싶어서 그 교육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리고자 싶었는데 가입절차를 보고 귀찮아서 말았다고 한다. 대신 기존에 가입회원이었던 동네 엄마에게 부탁해서 대신 질문을 올리고 궁금증을 해결했다는 말을 들었다. 대체 그 커뮤니티는 어떤 곳이기에 가입절차도 그토록 깐깐하고 악명 높다는 말인가. 궁금해진 마음에 나도 한 번 가입해 보기로 결심했다.


여태 커뮤니티에 가입하면서 이렇게까지 절차가 복잡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일단 가입이야 아무나 되지만 내가 원하는 특정 게시판을 보려면 제일 낮은 등급이라도 되어야 하는데, 그 새내기 등급이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등업신청을 할 수 있고, 주어진 질문지 형식에 맞춰서 답변을 하나씩 기입해 나가야 한다. 하나라도 오류가 있거나 형식 준수를 하지 않으면 가입이 승인되지 않고 다음번 가입 날짜까지 기다렸다가 재도전해야 한다.


'참말로 깐깐하구먼. 대체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렇게까지 규정이 복잡한 거지?'


속으로는 아니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뭐 돈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품만 좀 들이면 되는 거라 기왕 하기로 한 거 가입해 보기로 결심했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워낙 잘 까먹는 탓에 다이어리 앱에 알람까지 맞춰두고 등급신청 시간을 기다렸다.


"엄마, 상위 카페 가입 신청 해야 돼! 알람 울려!"


다이어리앱에 써놓고 막상 그 시간에는 까마귀고기 먹은 사람처럼 정신 놓고 있었는데, 내 핸드폰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달려와서 알려준다. 내가 아주 중요 알람 표시를 해둬서 그런지 아이는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듯 뛰어와서 놓칠세라 알려주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나는 아주 중차대한 일이라도 처리해야 하는 듯 급하게 노트북을 켜서 주어진 등급 신청 질문지에 차근차근 답변을 써 내려갔다.


아무렇게나 대충 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주관식 문항은 꽤나 정성 들여서 썼다. 질문지랑 답변지 화면은 따로 봐야 하기에 왔다 갔다 하면서 확인하는 일도 여간 귀찮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에 가입하려고 이 안달인지 잠시 현타가 왔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집중했다. 두 번, 세 번 오류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등급 신청을 완료했다.


신청한 이후에도 바로 승급이 되지도 않는다. 카페 스텝이 확인하고 등업 시켜줄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한다. 며칠 신경 안 쓰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알람이 표시되길래 확인해 봤더니 형식을 맞추지 않은 부분이 두 개나 있어서 다음번 등급 심사에 재도전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뭐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등급신청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따위라니. 치사해서 그냥 안 하고 만다.'


이쯤에서 그냥 포기해 버릴까 했는데, 한 두 개 글자만 정정하면 되는 거라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재도전과 며칠의 기다림 끝에 새내기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가장 낮은 등급의 회원이 이용할 수 있는 메뉴는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썩 유용했다. 정말 놀라운 건,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고 내가 몰랐던 엄청난 정보고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 카페라고 해서 무조건 사교육을 많이 시켜서 특목고에 보내는 방향만 중시되는 게 아니라, 독서나 자기주도학습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서 키우는 부모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 많은 정보량에 정신을 못 차리고 이 글 저 글 닥치는 대로 클릭해서 읽어보았다. 특목고, 영재고 합격 수기, 영재원 합격 수기, 중학교 공부 방향 등 검색만 하면 엄청난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읽다 보면 내 아이와는 좁혀질 수 없는 간격이 느껴져서 한숨 나올 때도 있지만, 나처럼 평범한 아니 조금 부족한 자녀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도 상당히 많아서 위로가 되었다.


요즘 엄마들은 정말 그 어느 시대보다 똑똑하다는 점도 느꼈다. 영어, 수학 문제풀이 게시판도 있는데 영어야 요즘에 전공자도 넘쳐나고 전공 아니더라도 유학, 교환학생 경험 등으로 전공자 못지않게 잘하는 사람들도 많기에 그렇다 치지만 수학 문제풀이에 댓글 달린 거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중등 수학은 고사하고 초등 심화 경시문제만 봐도 머리가 아파오는 나인데, 문제 풀이 요청에 척척 답변이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 분들은 다 수학 전공을 한 걸까? 아니면 원래 공부 잘하는 엄마라서 심화 수학 문제도 척척 푸는 것일까? 세상 참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아니 엄마들 정말 많고나.


남들처럼 어디 영재원 합격 수기, 대형 어학원 레벨테스트 후기 같이 멋진 글을 올려보지 못했고, 나름의 고민글을 써서 올려보았다.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연산 실수가 잦아지기도 하고, 쉬운 단원평가도 생각보다 너무 못 봐왔길래 속상했다. 사회성 부족한 건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약점이라지만 학교 공부 수준 정도만큼은 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학업 능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싶어서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이런 얘기는 동네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하기도 어렵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엄마들도 없거니와 단원평가는 워낙 예민한 주제인지 대놓고 서로 아이들의 점수를 공개하면서 이야기하는 건 꺼려지는 분위기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중학생 큰 아이와 내 아이 또래의 둘째 아이를 딱 부러지게 교육시키는 동네 엄마에게 엄마표 영어와 글쓰기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 대놓고 물어봤는데 대답은 미적지근했다. 두리뭉실하고 뜬구름 잡는 느낌의 답변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거구나. 물어본 내가 바보지.' 요즘은 어디 학원이 대세이고, 학교 담임 선생님 중에 누가 깐깐한가 정도의 이야기나 해야지 진짜로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질문은 되도록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소소하게 느끼는 아이 교육과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해 토로하고 싶은 욕구는 시시때때로 올라왔다. 자녀 나이 학년을 제외하고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그 교육 커뮤니티가 나의 욕구를 채워주는 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시글과 댓글 수 일정량을 채우면 더 높은 등급 신청이 가능하다기에 그 기준을 만족하고자 며칠간 열심히 드나들며 활동했다. 드디어 등급 신청 기간이 또 찾아왔고 규정에 맞춰서 답변지를 작성하고 꼼꼼하게 두 번 세 번 검수한 후에 신청 완료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 또 통과 못하면 어떡하지 살짝 걱정했는데, 의외로 한 번만에 통과되었다. 오예! 이제 거의 모든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거다.


학습지를 계속해야 하는지, 연산은 얼마큼 언제까지 시키는 게 좋은지, 같은 학년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도서는 무엇인지, 애가 사달라는 이상한 이름의 만화책이 있는데 건전한 건지, 사소한 궁금증이 떠오를 때마다 이제는 습관처럼 그 커뮤니티를 찾게 된다. 정말 놀라울 만큼 키워드만 검색하면 다량의 검색결과가 뜬다.


글 원문보다 댓글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다. 의견이 분분한 내용에 대해서는 각자의 자녀 교육 역량과 노하우 그리고 철학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진다. 짧다면 짧은 댓글이지만 내공이 만만치 않은 분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네 엄마 모임도 없고, 또래 아이 키우는 친구나 지인들도 자주 만나기 힘든 요즘이다. 그런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언니 군단이 생긴 기분이다. 이미 나보다 먼저 초등 시기를 경험한 중고생 엄마들도 있고,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열정적인 엄마들, 아직 햇병아리처럼 어린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들도 있어서 다양한 나이대에 각자의 교육 목표와 각기 다른 현실 속 일상적인 고민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등업신청할 때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었지만 하고 나니 후회는 없다. 아니, 아주 잘한 선택 같다. 내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애가 상위 1프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뜻은 진작 접은 지 오래지만 느린 아이라고 해서 교육을 등한시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느린 아이이기에 학교 공부와 매일 학습 루틴 그리고 더욱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교육 로드맵이 요구된다. 하교 후에는 사교육 뺑뺑이 돌리면서 맘 편히 키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보니, 내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엄마표로 해줘야 하는 틈이 생긴다.


발달장애 딱지를 남모르게 가진 아이라, 애가 남달리 특이한 애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보통 아이들도 이럴 수 있는 건지 하루에도 수십 번 궁금증이 생기는데 그런 의문을 채우기에도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꼭 발달 문제가 없는 보통의 아이들도 부모 속을 썩이고 걱정되는 부분은 있게 마련이라 그런 고민들이 가감 없이 공유되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아는 것이라고는 자녀 학년과 별명뿐인 교육 커뮤니티지만 아는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그것보다 훨씬 더 양질의, 그리고 진솔한 경험과 견해를 얻을 수 있어서 동네 엄마 모임보다 백배는 더 나은 것 같다. 다만 경계해야 하는 건 너무 잘난 특목고니 영재원 같은 그사세 이야기에 주눅 들지 않고 너무 부러워만 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앞으로도 참으로 득이 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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