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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26. 2024

인싸가 되고 싶어?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일

올해 들어 아이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해준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열번 물어보면 한 번 겨우 대답이 나올 정도로 답답했다. 주의력이 워낙 떨어지고 주변 상황이나 분위기에 관심이 없으니 기억이 날리가 만무하다.


이제는 본인이 관찰한 바를 기억해두었다가 기억 저장고에서 꺼내서 이야기해주는 일이 아주 조금은 수월해진듯 하다. 친구들 이야기라고 하면, 같이 무언가를 하고 놀았다거나하는 소통에 기준을 둔게 아닌 혼자서 아이들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한 것 위주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장난을 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웃기는지, 주로 뭘 하면서 노는지 궁금해하고 주의깊게 관찰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일지 모른다. 유치원 시절만 해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하루 종일 자기 자신과 놀다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아이가 최근에 자주 언급하는 반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매우 활발하고 사교성이 뛰어나고 유머감각도 겸비해서 교우 관계도 좋고, 영어유치원 출신에 공부도 잘하고 수업 태도도 좋아서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나는 친구다. 아이 엄마도 밝은 성격에 예쁘고 스타일이 좋은데 결정적으로 나보다 어리다. 이러고보니 뭐 없는게 없는 다 가진 사람 같은데 아무튼 아이도 엄마도 남부러울게 없어 보여서 조금 부러운게 사실이다.


아이는 그 친구를 인싸라고 명명했다.


"엄마, 차은우(가명) 완전 인싸야! 반장 소견 발표 할 때도 엄청 웃긴 포즈 지어가지고 반 애들이 다 웃었어. 표도 제일 많이 나왔고, 나도 은우를 뽑았어. 근데 공부도 열심히하고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아. 쉬는 시간마다 남자친구들이 다 은우 옆에서 놀아."


"흠.. 그래?!"


남의 아이는 다들 왜 이렇게 잘난건지, 부러움에 배가 아프지만 애써 참았다.

인싸 친구를 잔뜩 부러워하며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뭐라고 대답해줘야할지 몰라서 할 말이 찾아 헤매고 있었다.



"너도 은우처럼 인싸 되고 싶어?"


"아니.. 그런건 아닌데 걔랑 친해지고 싶어. 근데 걔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아."



인기많은 친구랑 친해지고 싶은데, 다가가는 방법도 모르고 어찌할 바를 몰라 주변을 돌며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아.. 그렇구나. 걔네들이랑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지 아니면 같은 학원에 다녀서 이미 친한가 보다. 이제 조금씩 친해지면 되지. 그리고 너도 인싸될 수 있어. 조용한 인싸라는 말이 있는데, 티는 많이 안나도 은근히 마음 속으로 너랑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이 많은거야. 친구가 많지는 않아도 한 두명의 친구가 너를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어하면 조용한 인싸야.."


말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맞는지 확신이 가지 않았지만 대강 생각나는대로 떠들었다.

운전중이라 아이 표정을 보지는 못했는데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남편은 허구헌날 아이를 붙잡고 "세상 살면서 친구가 다가 아니다, 그렇게 중요한거 아니니까 친구 없다고 속상해할 필요 없다, 아빠도 초등학교 때 친구랑 연락하고 지내지도 않는다, 너는 엄마 아빠가 있다, 아빠도 어른 되니까 친구보다 가족이 젤 소중하더라, 친한 친구 딱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아이는 그다지 집중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고 중년의 나이가 되니 세상 살이에 바빠 친구라는 존재가 삶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게 되는 남편의 입장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를 다니며 매일 교실에서 또래와 함께 어울려 지내야하는 아이 입장과는 상당히 결이 맞지 않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초등 때는 덜할지 몰라도 중,고등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점점 더 또래관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가족보다는 또래집단에게서 인정받는걸 중시하는 시기가 온다.


스스로를 인기없는 아이라고 인지하게 된 것 같아서 애잔한 마음이 드는걸 막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생긴것 같아서 신기하다. 자신은 반친구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는 타입은 아니라는걸 알게 된 것 같고, 학업면에서는 선생님 말을 잘 따르려고 하니 모범생축에 낀다고 믿고 있다.


엄마가 나서서 아이를 인싸로 만들어줄 수는 없다. 초등학교까지는 행여 그게 가능할런지 모르겠고, 가능하게 만드는 엄마들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 말로는 조용한 인싸니 하면서 아이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려고 했지만 사실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열살 정도 되니 집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존감을 높여주는데에는 한계가 느껴진다. 스스로가 하루 중 짧지않은 시간을 보내야하는 집단 생활에서 느끼는 바가 있기에, 가정에서 아무리 네가 최고다 멋지다 칭찬해줘봤자 소용이 없다.


자존감은 꼭 높을 필요가 있나. 자존감쯤 좀 낮아도 견디며 사는 사람들은 많다. 대신 자기 자신이 자존감이 낮다는걸 알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는게 더 중요하다. 그다지 인기 없는 사람인데 자기는 친구가 많고 다들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속에 산다거나하면서 지나치게 자신감만 넘치면 되려 그게 더 이상하고 위험할 수 있다.


나는 인기있는 인싸 타입은 아니지만, 반에 자주 노는 친구 한 명은 있다라든지 나는 운동은 잘 못하지만 피아노를 좋아하고 잘 친다라든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 그게 멘탈이 강한거다.

가끔은 어른도 이렇게 스스로를 그대로 인정하기 힘들다.


아이가 억지로 인싸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 광대 노릇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남과의 접점을 찾아 차차 확장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타고난 핸디캡으로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늦어버렸지만 천천히 믿고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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