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Mar 22. 2024

K-초딩으로 살아남기 위해

연산을 추가하다!

연산이 초등 시기에 아주 중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학습지의 교과 수학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 성향상 학습량을 줄이고 줄여 최소로 유지해야만 했다. 매일 해야 하는 루틴이 부담되는 양을 넘어서버리면 아이는 저항했다.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수학 학습지 두세장 풀기도 겨우 해내고 있는 중이라서 더 추가할 욕심도 의지도 없다.


이 상황에서 수학 학원을 보낸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초3이 되고 나서 부쩍 수학 학습지를 풀 때마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어렵다고 호소하거나 틀린 문제가 많지 않았는데 한 페이지에서도 여러 개가 틀려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되는 건데, 그것조차 귀찮고 하기 싫은지 대충 푼 티가 팍팍 난다.


게다가 틀린 문제를 내가 다시 풀어보라고 정성스레 지우개로 지워주면 화산 폭발하듯 그때부터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울거나 징징댄다. 그 꼴 보기 싫어서 틀린 문제도 그냥 학습지 선생님에게 지도 주십사 하고 떠넘긴 지 오래다.


어려서부터 워낙 숫자습득에 민감했고 가베놀이도 좋아하고 도형 인지는 빠른 편이라 수학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남들처럼 사고력 수학이네 최상위 수학이네 풀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학년 학습 목표만 달성해 가는 게 목표였다. 언어발달지연을 겪은 터라 내 걱정은 항상 국어, 국어, 또 국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꾸만 수학 문제를 풀면서 자꾸 실수를 반복하는 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더하기는 곧잘 하는데 빼기가 헷갈리는지 틀린 문제가 비 오듯 속출했다.


"수학 좋아하는 애가 왜 이러지?"


비록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과목이었던 수학에서 실수가 반복되자 좀 신경 쓰였다.


ADHD 증상이 수학 실력 향상에 발목을 잡는 건가? 작업기억 용량이 부족해서? 주의력 결핍 때문에 세 자릿수 빼기가 헷갈리나?


몇 가지 찝찝한 고민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수학 공부를 추가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3학년에 추가된 사회, 과학, 영어 과목 복습만 간단히 시키는데도 시간을 꽤 잡아먹었기 때문에 이 이상 더 학습을 요구하기가 미안했다. 욕심 같아서는 다 시키고 싶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아이가 아니라서 마음을 놓은 지 오래다.



소년원에서 심리 상담지도를 하는 일본인 정신과 의사가 쓴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책을 읽고 있다. 저자가 각종 중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갇혀있는 소년원에서 주로 일하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이 아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살인, 강간, 절도, 상해폭행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아이들 중에 경계성지능이나 인지장애를 앓는 아이들이 꽤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반성을 할 수 있는 인지 수준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왜냐하면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가해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그런 상상력이 결핍되어 있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지적장애자로 분류될 만큼 지능이 심하게 낮지 않아서 초등학교에서부터 따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일반반에서 일반 학생들과 생활하다 보니 학습결핍이 누적되어서 결국 사춘기에는 손쓸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거다.


소름 돋는 부분이 있었는데, 소년원 아이들에게 100 빼기 93을 물어보면 틀린 답을 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또 동그라미 원을 그려놓고 세 명이 나눠 먹을 수 있게 나눠보라고 하면 엉터리로 그리기도 한다고.


아예 머릿속에서 연산 자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보통 이런 증상은 초2 때부터 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애가 할 수 있는데 게을러서, 공부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걸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지 수준이 발달하지 못하고 어린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도덕성도 발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간단한 연산 문제를 내는 것으로 아이의 지적 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새로운 시각이었다. 연산이야 초등학생이면 어느 누구나 학교에서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따로 연산을 배우거나 학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그런대로 학교 수업을 따라갔다. 수능 수학은 비록 잘하지 못했지만 초중등학교 때 수학이 어렵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따로 반복 연산을 시키는 게 굳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나 내 아이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학습영역을 굉장히 지겨워하고 못 견뎌하기 때문에 더더욱 꺼려졌다. 남편은 본인이 초등 때 다닌 학원 중에 암산학원이 가장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지만 듣는 척도 안 했다. 애는 지금 이미 하고 있는 것들도 겨우 소화하고 있는데 무슨 암산 아니 연산 학습을 추가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연산을 못하면 범죄자가 된다라는 공식은 물론 참이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중범죄를 저지르고 반성조차 하지 못하는 지적 수준을 가진 소년원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었다.


<초3보다 중요한 학년은 없습니다>에서도 수학 연산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집중력이 우수하고 인내심도 좋은 편이라고 나와 있었다. 집중력과 인내심은 학업에서도 필수적인 역량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인내심 없이 이룰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인내심을 기르는데 연산 공부가 유익하다니..


학습지 선생님이 오신 날, 아이가 세 자릿수 빼기를 자꾸 헷갈려하고 많이 틀린 것 같으니 따로 지도 좀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애가 특정 유형의 빼기 문제를 여러 개 틀렸다며 연산을 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전에는 그냥 학습지 홍보라고 치부했는데, 나는 주의 깊게 선생님 의견을 들어보았다.


내가 교재를 따로 사서 시킬 수도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엄마표 영어에 책 읽기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현실이라. (엄마표 수학까지 하시는 분들 진심 존경하는 바이다)


더하기 하다가 빼기가 나오면 헷갈려하고 그러다 곱셈, 나눗셈까지 나오면 혼란이 오게 되는데 그렇게 연산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앞으로 나올 분수, 약수와 배수, 최소공배수 등에서 멘붕이 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듣고 보니 정말 왜 지금까지 연산을 따로 시키지 않은 건지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다.


다음 수업에 연산 교재로 한 번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초등 연산에 대해 검색해 보니 소마셈이니 시투엠이니 다양한 정보가 나오는데 보고 있자니 또 머리가 아프다. 할게 왜 이렇게 많은 거냐..


외국에서도 이렇게 수학 공부를 초등학생 때 많이 시키나? 반복학습 싫어하는 녀석인데 또 풀다가 짜증 내고 징징대는 거 아냐? 우리나라만 이 난리인 거 아니 인가 싶다가도 초등 수학은 연산이 전부다라는 글을 보니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막차라도 타게 돼서 다행인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를 눈물바람으로 등교시킨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