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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19. 2024

애를 눈물바람으로 등교시킨 엄마

실천이 어렵다고요

얼마전에 아이를 내 뜻대로 이끌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저항하고 반발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글로 적는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정말 생활속에서 지켜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던 나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 사소한 일로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전날 평일인데도 친구랑 키즈카페 가서 노느라고 피곤했는지 9시도 안되서 곯아떨어졌다. 매일 해야하는 학습지 숙제는 손도 못 대고 잤다. 다른건 안 시켜도 매일 학습지 15분 정도 푸는건 루틴이다. 보통 초3아이들의 학습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성향에 맞춘 최선의 방법이다. 적지만 매일 꾸준히 하는게 방침이다.


잠오는거 좀만 참으면 금방 풀고 잘 수 있을것 같은데 도저히 피곤해서 못 풀겠다는 애한테 그럼 내일아침에 일어나서 등교하기 전에 하고 가라고 했다. 아이는 그러노마라고 철썩같이 약속을 하고 잤다. 침대에 누운 아이는 1분도 채 되지 않아 깊이 잠들었다. 약물 복용 부작용으로 수면 장애를 겪는 녀석인데 이렇게 빨리 잠들다니, 새학기 적응이 힘들고 피곤하긴 한가보다. 곤히 자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짠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그저 사랑스럽다.


다음 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난 아이 얼굴에 대고 학습지 이야기를 바로 꺼냈다.


"너, 어제 안 푼거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풀고 가. 안 그러면 저녁에 오늘치까지 두 배로 풀어야해."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 아침밥을 먹더니 씻고 나서 억지로 자리에 앉았다.

평소 아침에는 학교 갈 준비하고 나서 만화책을 보던지 약간의 빈둥거림을 즐기는 편인데, 그 날 아침따라 학습지를 풀어야한다는게 못내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한 문제 풀면서 도저히 어려워서 못 풀겠다고 울상이다. 분명히 선생님이랑 풀 때는 웬만큼 이해하고 따라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다 못 풀겠다고 하니까 어이가 없다.



"그래? 어려워? 그럼 엄마가 도와줄게."



하기 싫다는 아이를 붙잡고 옆에서 일일이 도와주면서 연산 문제를 풀게하는데 아이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급기야 바닥에 드러 누워버린다.


"너무 어려워서 하기 싫은데."


잔뜩 게으름을 부리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부아가 치민다.


"어제 너가 피곤해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해서, 엄마가 하루 미뤄줬잖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푼다면서! 그래, 그렇게 하기 싫으면 오늘 꺼 다 풀 필요 없어 여기 딱 1페이지만 풀고가. 이거 몇 문제 되지도 않잖아. 집중하면 2분도 안 걸리겠다. 어서.."



온갖말로 아이를 설득하고 달래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저 배려해서 하루 미뤄줬는데 그저 풀기 싫다고 떼를 쓰다니. 내가 너무 애 비위에 맞춰준건가. 잡을 땐 확실히 잡아야하는데. 두장 세장도 아니고 딱 한페이지만 하라는데, 그것조차 하기 싫어하다니..'



그나마 두 세개 풀어놓은 연산 빼기 문제를 확인해보았더니, 다 틀려있다. 어이가 없다.


'누구 닮아서 수학을 이렇게 못하는거야?'



몸을 배배 꼬면서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그냥 봐주고 등교시킬까 하다가 이미 시작한 페이지만 풀고 가라고 엄포를 놨다. 그야말로 세상 끝난 표정으로 억지로 문제를 풀더니 등교시간이 좀 늦어버렸다.



급하게 가방을 챙기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이 표정이 좋지 않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눈치 못 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이 벌개져있다. 눈물이 그렁그렁 나올까말까한다.


"왜그래? 왜 슬픈거야? 엄마 때문에? 엄마가 억지로 학습지 풀게해서 그런거야?"


맞다, 아니다 대답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눈물만 닦는 녀석이다.



아침부터 공부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게 되서 그게 그렇게 억울했나보다. 하기 싫어서 온 몸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아이를 붙잡고 기싸움 한답시고 끝까지 몇 문제 풀게 만든 내가 잘못한건가 보다.



"엄마가 미안해. 너가 오늘 아침에 한다고 약속한거라서.. 분량 줄이고 줄여서 한 페이지라도 풀고 가라고 한거야. 그게 그렇게 속상했어? 울지마. 엄마가 잘못했어. "



내가 뭘, 얼마나, 왜, 잘못한건지 모르겠으나 일단 우는 아이는 달래야겠다 싶어서 사과했다.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해서 기분이 단단히 상했나보다.


아이 등교 준비를 내가 시키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짐한게 있다.

절대 아침부터 기분 상하게 하지 않을 것.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옷 입는거에서부터 징징대고 힘들게 하더라도 등교전에 좋은 기분으로 학교 가도록 하자는게 내 신조였다. 이대로 가면 최소 네다섯시간은 교실에서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고 친구들과도 어울려야하고 저도 공부하고 없는 사회성 끌어내느라 힘들텐데, 집에서만큼은 스트레스 받지 않게하자는주의다.


그런데 밀린 학습지 풀게한다고 애 기분을 잡쳐놨으니.

시간이 점점 늦어져서 대충 애를 달래고 등교 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다.

애가 좀 반항하고 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받아주라는 거. 불과 며칠전에 네가 네 손으로 쓴 글 아니더냐?


글 쓰면서 앞으로 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다짐해놓고, 막상 또 다 잊어먹고 애를 아침부터 울려서 학교에 보내고 마는 못난 엄마다. 애가 하기 싫어서 반항하는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 신호를 엄마한테 보내는건데 내 뜻을 관철하느라 무시했다.

매일 매일 좀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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