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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13. 2024

이불빨래를 하게 돼서 감사합니다

억지로 쓰는 감사일기는 효과가 있을까

자기 계발서적을 보다 보면 정말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금언 중 하나는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아무리 작은 일, 사소하고 너무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일조차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고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등 하면 무조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식이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성공한, 아니면 조금이라도 유명한 사람들이 쓴 자기 계발서 저자들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외칠 정도면 감사일기는 정말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도 어설프게나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다이어리에 하루에 세 개씩 감사한 것을 쓰곤 했다. 감사한 것을 생각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았다.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하고, 함께 부대껴 사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고,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시다는 것도 감사하고.. 쓰다 보면 의외로 쓸게 많았다.



주로 나의 감사일기 주제는 아이에 관한 것이 가장 많았다.


약물 치료라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함께 사회성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룹 친구들이 가까운 동네에 있어서 감사합니다.
소통 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등등



그런데 이것도 일 년 이상 쓰다 보니 더 이상 쓸게 없었다.

내 일상에서 감사한 일을 대부분 다 찾아서 쓴 거 같아서 더 이상 뭘 더 새롭게 찾아서 쓸만한 게 없었다.

좀 시시해지고 지겨워졌다고 해야 할까.


어느 순간 감사일기를 쓰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게 진심으로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일상의 의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감사하는 마음도 별로 안 들면서 감사란 그냥 내가 쓰는 글로만 존재할 뿐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다지 진실로 우러나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기에는 일상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이란 아무리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 수 있는 형편이라고 해도 본성적으로 부정적인 일에 더 집중하게 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내 성향일지도 모르겠으나, 백가지 천 가지 감사할 일이 있고 나 정도면 뭐 크게 부족함 없이 괜찮게 살고 있는 형편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자꾸 아이 때문에 힘들고 지치고 또 헤쳐나가야 할 고난들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괴로움은 무시한 채 감사일기만 쓰고 있는 건 약간 있는 그대로의 내 현실을 부정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자기 배반적인 루틴을 아무 의미 없이 쌓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계발서적을 쓸 정도면 기본적으로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이요, 대단한 업적 하나씩은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 권위만으로 무조건 나는 따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는데 어느 순간은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감사하는 마음상태가 삶에 희망을 더해주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해 주고 심지어 정신과 의사는 뇌회로를 바꿔줘서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고혈압까지 호전되는 등 신체적 건강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더 이어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들지 않아서이고 둘째는 귀찮아져서이고 셋째는 어느 순간 감사할 일을 억지로 찾고 있는 그 시간 자체가 아까워졌다. 그 시간에 잠이나 자는 게 내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 긍정적인 일보다 부정적인 일에 더 집중이 되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인간이 아니어서 늘 근심, 걱정을 달고 사고 미래에 대한 핑크빛 꿈을 품기보다 늘 안정적이고 확실한 미래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 사는데 급급했던 나는 감사일기로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감사일기를 쓰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일상은 그전과 다르지 않게 비슷하게 그럭저럭 굴러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났으며,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감사일기라는 것도 유행인지 자녀교육 유튜브에도 종교적 신념처럼 퍼지고 있어서 저녁에 잠들기 전에 아이와 함께 오늘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나누고 자면 좋다기에 나도 따라 해보았다. 처음엔 신선했지만 어느새 아이도 지겨워했고 새로운 감사거리를 발견하기보다 매일 쳇바퀴 돌듯 똑같은 말만 반복하거나 내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데에 그쳤다. 아이와 감사한 것 공유하기 루틴도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대신 일상에서 소소하게 짜증 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생겼을 때, 그 반대로 생각해 보기로 해본 적이 있는데 조금은 효과가 있었다. 지금 벌어진 일 때문에 힘들어 죽겠지만 반대로 이 정도라서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이 정도에 그쳐서 감사하기로 생각해 보기로 한 것이다.



최근에 아이는 대소변 퇴행기를 맞이하고 있다. 팬티에 자꾸 똥을 지리거나 안 하던 소변 실수를 밤에 자다가 해서 때아닌 이불빨래를 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이의 심리 상태가 그만큼 불안정하고 그 치료를 위해 약물 복용을 하고 있지만 약은 주증상을 완화하는 효과를 주는 대신에 부작용을 동반한다. 그 부작용 덕분에 심리적 불안정은 아이가 안고 가야만 하는 숙제가 되어버렸는데 그게 팬티에 변지리 기나 소변실수로 신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처음엔 언제까지 내가 너 대소변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하는지 화가 불쑥 났다. 그러다 나중에는 차라리 이불빨래를 하게 된 이 상황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깨끗한 척 부지런한 척 하지만 이불 빨래는 세상 귀찮은 일이라 살림 깔끔하게 잘하는 주부구단들처럼 일주일에 한 번, 열흘에 한 번 이불빨래를 부지런히 하는 주부가 못된다. 최대한 모르 척하거나 외면할 때까지 외면하다가 두세 달에 한 번씩, 도저히 내가 견디지 못할 시기가 되었을 때에라야 겨우 이불을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놀라운 점은 예전 시대처럼 세탁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건조기까지 이불 건조 메뉴가 있어서 이불빨래가 그리 힘들지 않은 시대에 살면서도 하기가 싫다. 전자제품 없는 시대에 살았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 최첨단 전자제품의 혜택을 누리며 사는 시대에 태어나 감사하긴 하지만 나 혼자 누리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누리는 세상이라 뭐 그 감사함도 일시적일 뿐 오래가지는 않는다.



이불빨래가 귀찮은 것은 겉이불 안에 들어있는 구스솜이불을 떼어내려면 하나하나 분리시키는 작업이 동반되어서인데, 정말 너무나 하기가 싫다. 빨고 나서 다시 부착하는 과정은 더 싫다. 살림을 하다 보면 스스로 부지런을 떨지 않는 이상 게을러지자고 마음먹자면 남편이나 아이가 지적하지 않는 이상 최대한 모른 척하게 되는 영역이 생기는데 그게 나에게는 구스솜이불빨래다.



밤에 자다가 연이틀 오줌을 싸대는 아이 녀석 덕분에 며칠 째 이불빨래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 그래도 참았다. 심리 문제로 인해서 대소변 퇴행기를 맞이한 아이에게 왜 오줌을 자다가 싸지르냐고 혼내면 더 위축시키게 될 것이므로 아이의 심리정서를 위해서 참는다. 예전 내 엄마 같으면 내가 이런 실수를 했으면 아주 단단히 혼이 났을 것 같은데, 내 아들이지만 부럽다. 넌 좋겠다. 오은영박사님 시대에 태어나서 그래도 두 번 혼날 거 한 번 혼나지 않니.



하기 싫은 이불 빨래지만 하고 나니 어찌나 흐뭇한지 모른다. 막 건조기에서 나온 이불의 포근함과 아직 섬유유연제의 기분 좋은 향이 덜 가신 따뜻한 느낌이 내 기분을 업시키는 것 같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아이가 이불에 오줌을 싸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불 빨래를 억지로라도 하게 돼서 감사합니다.. 천성이 게을러서 이불 세탁을 안 하는데 빨래 좀 하라고 아이가 일부러 그랬나 봅니다..



이전에 다이어리에 수백 번 써댔던 그 감사일기에서보다 무슨 일인지 이번에 하게 된 감사함은 정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내 뇌리에 오랫동안 자리 잡아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게 진짜 감사한 마음 아닐까?



따지고 보면 애가 아픈 것 덕분에, 아이 심리 문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게 진짜 이유지만 그건 감사할 일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그로 인해 생겨난 부차적인 문제를 나는 감사함이라는 고차원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란, 이렇게 불현듯 찾아올 때 조금 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잡아두는 게 진짜가 아닐까 싶다. 억지로 매일 아침 일어나서 별 감사할 일도 안 드는데 억지로 이 잡듯 찾아내기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슬쩍 찾아온 이 마음을 혹은 그 기분을, 그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좀 더 오래 음미하고 잡아두는 것.


그게 더 의미가 있고, 힘든 인생을 견뎌내게 만들어주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자주 이런 마음 상태가 찾아온다면 좋으련만.

나는 아직 그럴 경지에까지 이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상 속 사건들에 매몰되어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신경 쓰고 헤매느라 정신없는 게 내 삶이다.



그래도 감사하는 일이 조금 더 자주 있기를.

아니 슬프고 화나고 절망적인 사건에서도,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감사함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내 안에서 자라나기를 바라본다. 이불빨래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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