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티쳐의 완벽한 학교
교실 내 교우관계 역학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쉽게 그룹화가 가능하다. 소위 좀 잘 나가고 목소리 꽤나 낸다는 남자아이들 그룹, 외모에 관심이 많고 꾸미는 거 좋아하면서 외향적이고 활달한 여자 아이들 그룹, 조용하고 성실하게 자기 할 일 하는 남녀 아이들 그룹, 그리고 마지막은 있는 듯 없는 듯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은따 아이.
교사로서 우리 반 학급 내에서 왕따가 있는지 분별하고 빨리 알아차려서 가해 아이들을 단죄하거나 왕따 분위기 자체를 근절하는 건 당연한 의무긴 하지만, 이 은따라는 건 참 애매모호하다. 아이들이 대놓고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어울리고 싶어 하지는 않고 가끔 필요시에 한 두 마디 대화는 나누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친밀한 친구 관계가 될 만큼의 상호작용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그런 관계 속 아이.
이 은따를 자청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다. 혼자 책 읽기에 파고든다든지, 혼자만의 놀거리를 찾아 애써 군중과 떨어져서 지내는 아이들을 보다 보면 어쩌면 혼자가 편해 보인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정말 다행인 상황이라면, 반 내에서는 잘 어울리지 못하더라도 다른 학급 친구들 중 본인과 결이 맞는 아이를 찾아 쉬는 시간에라도 복도나 도서관에서 만나 노는 경우다. 이런 친구들은 그래도 걱정이 훨씬 덜하다. 그래도 잠시나마 의지하고 소통할 수 있는 또래가 있다는 건 학교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아이들과 개별 상담을 해보면 사실은 혼자 있기를 원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친구를 사귈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가 다반사다. 이 아이들은 도움반에 갈 정도로 딱히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학업 성적도 괜찮은 편일 때가 많은데 유독 관계 맺기에 서툴고 어려운 경우가 많다. 친구들이 어떤 장난말을 던지면 받아칠 줄을 모르고 그냥 상처받거나 못 들은 척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재미없어서 건들지도 않고 같이 놀지도 않는다.
사춘기 아이들의 우정이란, 특히 남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대다수가 서로를 놀리고 장난을 걸고 몸을 부둥켜안고 이건 싸움인지 애정표현인지 모를 접촉을 하면서 노는 게 거의 전부다. 그 과정에서 욕설과 비속어는 기본값이다. 그래도 서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냥 한바탕 크게 재밌으면 그만일 뿐인 거다. 사춘기 남자아이가 아예 욕도 쓰지 않고 공부만 하고 교과서에서 나올법한 바른말만 사용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알고 배려심과 봉사정신이 철철 넘친다면, 또래 관계가 좀 힘들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나마 학급 내에서 이 은따 아이들을 건들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괜찮다. 그런데 아이들이 장난말을 걸거나 비꼬는 말을 했을 때 약간의 과민 반응을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리액션이 나오면 아이들은 무자비하게 그걸 파고든다. 따분한 일상에 커다란 재미를 그런 식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이게 성인 세계에서는 참 나쁘고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춘기 철없는 아이들의 현실은 대체로 그렇다.
김티쳐는 이 은따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갑자기 마음이 아련해진다. 어쩌면 그녀의 아이도 교실 내에서 은따일지도 모른다.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고 수업 잘 듣는 모범생이지만 어쩐지 모르게 친구들이랑 잘 못 어울리고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려서 걱정이다.
그렇다고 학교를 안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조용하지만 나름대로 당당하게 '은따'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도 키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이 함부로 건들지 않는 은따 말이다.
당당한 은따의 조건은, 일단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해서 학업 성적이 뛰어난 편이어야 하고 태도가 성실하고 모범적이어서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게 좋다. 그리고 외모 관리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타고난 생김새야 못 바꾸더라도 단정한 옷차림과 깔끔한 청결함은 필수적이다. 거기에 세련됨까지 갖춘다면 더 좋을 것이고.
특히나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보이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경외심은 존재하기에 외모도 깔끔하고 공부도 잘하는 애가 분위기 못 맞추고 성격이 좀 찌질 해 보여도 놀리지는 않는다. 이런 조건을 갖추었어도 괴롭힘을 조성할만한 미묘한 분위기는 조성될 수 있다. 그때는 아이의 말과 행동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담임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선생님도 착실하고 성실한 학생이 은따일지언정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한다고 하면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또래 아이들만을 모아놓은 학급이라는 공간은 어쩔 때 보면 참 정글과도 같다. 힘의 논리로 모든 게 결정되고 동물세계와 같은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힘없고 약한 아이는 여지없이 그 힘의 논리에서 최하위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대체로 미성숙하고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점점 자라고 도덕과 윤리의식이 자리 잡게 되면 대부분은 성숙하게 변화한다. 심지어 도움반에 있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도 더 강자와 약자라는 힘의 세계가 작용한다. 그중에서 좀 더 경미한 진단을 가진 좀 더 말 잘하고 논리적인 아이가 나머지 아이들을 군림하는 것이었다.
정글의 세계에 아이를 매일 내보내려면 최대한 강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아이만의 강점이 하나라도 갖춰줘야 하고 놀림받을 '꺼리'는 최대한 줄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편하게 학교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