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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장강명 소설을 읽고

by 레이첼쌤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저>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학생 때는 똑똑하던 여자애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바보 되는거 많이 봤거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고 그러지 않으면 되게 사람이 게을러지고 사고의 폭이 좁아져.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게 되고. 난 그렇게 되기 싫었어.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의대가서 의사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10년 뒤, 20년 뒤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오랜만에 요즘 소설을 읽었다. 별 생각 없이 제목이 특이해서 고른 책인데, 왠걸 푹 빠져 들었다.

인서울 공과대를 나와서 증권회사에 다니고,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렵고, 강남 출신 남자친구 집안에서 무시당하고, 출퇴근 지옥철을 견디며 삶의 존엄에 대해서 고민하는 계나라는 20대 인물이 주인공이다.


회사에서 투철한 직업의식이나 목표도 없고 그저 취업이 된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생존을 벌기 위해 이 악물고 버틴다. 한국에서는 스스로가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굉장히 와닿았다. 그럼 나는 여기서 버틸만한 경쟁력이 있는 인간인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냥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살 수는 없는걸까.


계나는 모아둔 적금을 털어 남자친구도, 가족도 뒤로하고 호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한국이 싫어서다. 어려서부터 산 집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이 견디기 힘든데 계나는 추위에 너무 약한 체질이다. 나도 추운걸 극도로 싫어하고 겨울을 나기가 힘든 체질이라 그런지 상당히 공감이 갔다. 추운 겨울을 몇 달씩 지낼 때면 가끔은 일년 내내 따뜻한 하와이나 캘리포니아같은 따뜻한 곳으로 가서 평생 살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호주로 떠난 이후의 삶도 역시나 녹록지는 않다. 하지만 계나는 열심히 부딪혀서 산다. 정착 초기 영어가 안될때는 식당잡일 알바로 노동하며 돈을 벌고, 여러 남자와 연애도 하면서 결국 회계사 학위도 따고, 영어 실력도 어느 정도 쌓아서 영주권을 따게 되고 나중에는 시민권까지 딸 정도의 단계가 된다. 그 과정에서 사기도 당하고 모아둔 돈도 다 털려버리고 법정에서 재판받는 일까지 생기는 등 여러 고비와 위기가 펼쳐진다.



이미지 출처: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영화에서 참 내가 좋았던 장면 중 하나다. 이제 막 낯선 나라에 도착한 첫 날 유학원에서 우연히 만난 재이라는 아주 싸가지(?) 없는, 스스로 지잡대를 나와 할게 없어 해외에 오게되었다고 고백하는 재이와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장면. 둘 다 한국에서 비전이 없는 패배자라며 자조하듯 계단에 앉아 술을 한 잔씩 나눠먹는이 장면이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그래도 청춘이니까, 아직 젊고 할 수 있는 선택이 많으니까, 무모하지만 해외에서 뭔가 새로운걸 해볼 수 있는 나이의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였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지도 않았고 약간은 재수없어 하는 관계인데 결국 이민 생활 내내 조금씩 의지하고 응원해주면서 잘 지내게 된다.


계나가 다시 한국에 잠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기자라는 꿈을 이룬 전남친이 일에 치여 사는 모습을 보면서 계나 스스로 고민한다. 한국에서 계속 자리잡고 살 수 있는가를. 결혼을 원하는 남자친구는 안정된 직장도 있고, 성품도 훌륭한 편이라 결혼하면 나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있다. 그렇지만 계나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인가를.


경제력이 있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해주기까지 하는데도 같이 사는걸 상상했을 때 결국 본인이 행복해지지 않을거라는 예감을 한다. 결국 전업주부가 되어 살림하며 살게 될거라는 예감, 남들이 인정해주는 정규직 직장을 갖지 않는 이상, 결혼 생활과 직장을 병행할 수 없게 될게될 미래가 계나는 싫다.


결국 다시 호주행을 택하는 계나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왜냐면 나는 하지 못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도 결혼 전에 비슷한 고민을 했다. 당시 많지 않지만 모아둔 돈도 조금 있었고, 일에 지친 상태라 유학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해외경험이라고는 단기 연수들 몇 번 뿐이라 좀 더 장기로 있으면서 학위를 따든 제대로 해외살이를 해보면서 싶었다. 영어전공자로서 해보고 싶은 경험이기도 했고, 좀 색다른 삶의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나는 몇 년간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고, 결혼 적령기였으며, 주변 친구나 지인들은 다 결혼을 하는 분위기였다. 결혼이 늦어지는건 괜찮지만 아이를 노산에 임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왕 아이를 낳을거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고 싶었다. 서른을 앞둔 나는, 뭐가 그리 급하다고 한시라도 빨리 결혼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압박에 스스로를 옮아매며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유학을 가버린다면 영영 결혼은 멀어질 것이고 적정 나이에 자녀 출산은 안드로메다로 가게 될 것인데, 그 때의 나는 그게 두려웠나보다. 내가 원하는걸 인생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던걸 도전하는 것보다 주어진 삶의 숙제를 해내는게 더 급선무였던것 같다. 그래서 결혼을 택했다. 그 선택의 책임의 무게를 감지하지 못한 어리석은 내가 있었다. 한 가정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특히 결혼한 여자가 짊어져야할 의무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나는 가정과 살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인가, 살면서 수도 없이 고민했다. 전문직이나 박사가 될만큼 학업에 엄청난 뜻이 있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모양처가 되어 청소나 요리를 야무지게 잘해낼 수 있는 재능도 의지도 나에게는 없었다. 지금도 요리는 정말 하기 귀찮고 누가 돈 준다해도 하기 싫은 영역이다. 억지로 의무감에 한다. 내가 직접 만든 건강한 음식이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걸 보고 행복감을 느껴야한다고? 나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데도 나름 계속 노력은 한다. 먹는건 중요하니까. 그래서 힘들다.


계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은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못 견디고 떠나게 된거다. 아마 나는 그보다 덜 힘들었기에, 그래도 참으면서 살만했기에 남아있는걸 택한것 같다. '다 참고 그러고 살아, 누구는 안 힘드냐, 좀만 더 참고 희망을 갖고 살면 좋은 날 와.'라고 말하는 계나 엄마의 말은 설득력이 없다. 참고 살았음에도 여전히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딸에게 아파트 입주금까지 손 벌려야하는 상황에 처한 부모가 해주는 말에는 그다지 힘이 실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주고, 인서울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수도권, 인서울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입밖으로 꺼내기 힘든 상식. 그것은 물려받을 재력을 지닌 부모가 있거나, 명문대를 나와 학력을 갖췄거나, 빼어난 외모라도 타고 났든가 해야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외에는 범접할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을 지녔다든가, 운이 좋다든가 해야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모든걸 버리고, 호주행을 택한 계나는 처절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생을 살아간다. 책이 너무 재밌어서 고아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도 찾아 봤다. 영화도 단숨에 봤다. 재미있었다. 책의 내용과는 다른 부분도 많이 있었지만, 실망스럽지 않았다. 책에서 인상깊었던 그 구절들이 구체적 그림으로 구현되어 나오는 화면을 보는 건 더 설렜다. 뭍 청춘들이 한국을 견디지 못해 회피성, 도피성 유학을 떠난다는 말을 쉽게들 한다. 하지만 그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것이다. 각자의 이유로, 견디기 힘들어서, 더 나은 삶을 향해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한 선택일 뿐이다.


영화에서는 두 개의 죽음이 나온다. 이민 가서 사는 한 가족과 취준생이던 계나의 친구. 두 케이스 모두 자살인듯하다. 한 쪽은 해외가서 적응해서 잘 사는것 같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거고, 한 쪽은 한국에서 시험공부하면서 취업 준비만 몇 년째 하며 궁핍하게 살다가 가버린 계나의 친구다. 그 친구의 연기가 참 돋보였다. 순수한 눈빛을 가진 그 취준생은 이번 시험 떨어지면 진짜 다 포기할거라고 하면서 어딘가 탁 트인곳에 가서 멍하니 바라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햄버거를 참 맛있게도 먹는다. 얼마후에 자살하고 만다. 그 장면이 가슴이 아팠다.


아마 내가 해외유학을 택하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더 행복했을까. 알 수 없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다.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었겠다. 아마 더 좋은 점이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인간은 후회하곤 하니까. 내가 한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게 낫다. 현재에 만족하려고 노력한다. 만족이라기보다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조그마한 행복을 자주 느끼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


어찌되었든 계나의 친구나 지인 가족처럼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에서든 호주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있다는게 중요하다. 지금 여기 내가 살아서 행복도 느끼고 불행도 느끼면서 웃고 화내고 즐거워하고 상처받으면서 그렇게 존재한다는것 말고 의미있는 건 없다. 그렇게 살아내야한다.


내 선택에 책임지는게 당연하고 응당 그래야하는게 의무지만, 계나가 부러운건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용기내지 못했으니까.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며 수동적으로 한 선택이 더 많았기에 조금 아쉽다. 앞으로는 용기를 내보고싶다. 나이가 더 먹고 딸린 가족까지 생겨 더 어렵지만 용기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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