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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드>

예술과 삶.

by 소소담

1. 연극 <레드>의 줄거리

사실 이 공연은 다른 공연들처럼 어떤 스토리라인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마크 로스코’와 가상 인물인 그의 조수 ‘켄’의 대화가 100분간 이어지는 것이 다이다. 그러나 이 100분간의 대화에서 둘은 끊임없는 의견 충돌에 처하게 되는데 이는 대부분 구세대와 신세대의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그리고 세대 차이 또한 일상적인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과 철학에 대한 사상들이다. 그래서 이 극은 꽤나 어렵다. 100분간 이어지는 건 대화뿐인데 그 대화가 상당히 까다롭다.


2. <레드>의 질문들


"예술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는 예술을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둘러싼 것, 자신이 원래 알고 있던 것에 의문을 품고 생각을 던져볼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그런데 과연 그것만이 예술일까? 그렇게 말했던 나도 사실은 생각을 막아버리는 것들을 좋아한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드라마, 유쾌하고 볼거리가 충만한 공연들 등등. 소위 시간을 죽인다는 뜻의 ‘킬링 타임용’ 콘텐츠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속에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나? 그런 것들까지도 결국 예술이라면, 어디까지가 예술인가?

사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 지 꽤 됐음에도 나는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내가 예술을 계속 접하고 소비하는 생을 사는 한 끊임없이 고민하고 돌아볼 질문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레드>에서 켄이 말한 대사에 기초하여 나의 예술에 대한 정의도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 생각해 보려 한다. 우린 아무 생각 없이 황홀한 아름다움을 뒤집어쓴 것들을 볼 때도 ‘예술이네’라고 표현하기에.


"삶이 진행되는 원리"

이 극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 삶을 살아간다는 것, 세상이 흘러간다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순환된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옛 것이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리고 그 사이마다 찾아오는 미련과 그리움이 둘 사이를 연결해 주는 것. 그것이 다이지 않을까.


"예술가의 처절한 발버둥"

켄의 대사.

‘마티스는 다 죽어가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붓을 들 힘이 없어 종이들을 오려가며 콜라주를 완성했는데 그에 반해 로스코의 표현, 블랙은 죽음과 마지막을 암시한다는 것은 너무 진부하고 고전적이다’

아마 켄의 눈에는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에도 안간힘을 다해 처절하게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티스에 비해 그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작업실에 앉아 그림을 한참 동안 응시만 하며 죽음을 뜻하는 블랙과 그 속에서 살아남고자 활개 치는 레드만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로스코의 행위는 고상하게 보였던 것 같다. 로스코가 궁극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삶은 전혀 고상하지 않고 낭만적이지 않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초반부의 로스코의 말이 생각났다. ‘왕을 저울에 달았으나 충분하지 않더라. 나에게는 블랙이 그렇다. 너에게는 무엇이 그렇지?’라는 대사. 그에게는 아무리 생각하고 사유하고 탐구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그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은 것이 블랙이다. 의미로는 단순히 죽음과 마지막을 나타낼 수는 있어도 그 블랙을 생각하고 보면서 감각하는 무언가 들은 결코 단순한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가 블랙을 사용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그 또한 그 시간 속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보이는 모습은 그저 하얀 캔버스에 블랙을 한 줄 긋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나는 켄의 대사에 동의할 수가 없다. 작품을 고안하고 생각하면서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내는 한 예술가의 처절한 발버둥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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