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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호프>

타인의 삶을 감각하는 일.

by 소소담

이 작품에 대한 글은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아마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도 아프거나 슬프지 않을 때까지.


1. 뮤지컬 <호프> 줄거리

이 작품에서는 '원고지'가 의인화되어 사람으로 등장한다. '에바 호프'는 말년의 생까지 요절한 베스트셀러 작가 '요제프'의 원고를 지킨다. 그 원고가 사람으로 등장하는 'K'이다. 그 원고는 '요제프'가 자신의 친구였던 '베르트'에게 태워달라고 준 원고였지만 '요제프'의 천부적인 재능을 동경하던 '베르트'는 차마 태우지 못하고 '에바 호프'의 엄마 '마리'에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켜달라며 맡기고 떠난다. '베르트'를 사랑했던 '마리'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원고만을 지키고 위하며 생을 영위한다. 마침내 '베르트'를 만난 '마리'는 원고를 그에게 주며 그간의 사랑을 고백하지만 '베르트'는 이미 '마리'와의 약속은 잊고 가정을 꾸린 상태였고 '마리'를 매몰차게 거부한다. 이에 충격받은 '마리'는 더욱더 원고에만 메인 삶을 살아가며 그녀의 딸인 '에바 호프'는 돌봄과 보살핌, 사랑은 전혀 받지 못한 채 그녀의 엄마를 원망하고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다 같은 유대인인 '카델'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져 '요제프'의 원고에 대해 다 이야기하고 둘은 그 원고를 훔쳐 경매에 팔고 큰돈을 얻어 같이 떠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돈의 욕망에 사로잡힌 '카델'은 '호프'를 배신하고 원고의 절반만 '호프'에게 넘겨주며 떠난다. 오직 절망과 좌절만 남은 '호프'가 집에 돌아왔을 땐 엄마는 사라진 후였고 원고의 절반만이 남아있었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했었던 '호프'는 어느새 그녀의 엄마처럼 원고만을 지키고 집착하며 살아가지만 '요제프'의 미출판 원고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이스라엘 도서관은 그 원고를 두고 '호프'와 30년간 법정 공방을 펼치며 그녀를 괴롭힌다. 그러는 와중에 'K'는 끊임없이 자신을 버리라고 '호프'를 설득하고 끝내는 '호프'가 원고를 넘김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딛고 다시 자신의 일상을 되찾으며 이 극은 막을 내린다.


2. 뮤지컬 <호프> 감상

인생은 꽤나 사소한 것으로도 지탱이 되고. 때론 가늠할 수 없는 무거운 것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

삶은 때론 조그마한 것으로도 금세 잃기도 하고. 때론 어떠한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에바 호프에게 있어 '원고지'처럼.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몰라. 전부를 잃고 남은 게 하나라면. 그 하나를 위해 나 전부를 걸어.

그게 내 유일한 세상. 그게 내 유일한 일상. 내가 쉴 곳. 내 집이니까"

-<호프>의 넘버 '호프' 중


나는 이 말을 마음 가득히 담아두지도, 그냥 흘리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온몸 가득 울었다. 마음껏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기엔 그 말이 너무나 무거웠고. 넘버의 가사 중 하나로 그냥 흘려보내기엔 그의 처절함이 결코 가볍지가 못했기에. 그래서 난 오직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애도하며 울어준다기엔 그 안에는 동정이 없었다. 감히 동정의 마음조차 품질 못했다. 동정은 아무래도 조금의 우월감, 안도감을 기반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마음 아파할 때가 많다. 그런 공연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러한 가슴 아픔에는 조금의 동정도 섞여있다. 그렇기에 공연을 다 보고 나오면 금세 나의 현실로, 나의 생각들로 다시금 채워지곤 한다. 찰나의 눈물. 그 순간에는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지만 나의 일상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 슬픔.

그러나 <호프>의 슬픔은 달랐다. 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거듭되는 아픔. 울컥함.

끝내는 '에바 호프' 또한 자신의 일상을 다시 찾아갔지만 그날이 오기까지 '에바'가 견뎌낸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에바'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신의 삶과 일상을 그랬던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인 '에바'가 자기 자신을 가뒀던 기억과 생각들의 속박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내가 그 굴레에 갇혀버린 꼴이 되었다. 지난 시간과 감각들을 후련히 보내주는 '에바'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내게 남겨진 미련과 아픔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위로의 마음을 건넬 수도, 함부로 그의 삶을 상상하거나 예측하지도 못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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