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고통이 마음의 상처로 전해지는 폐경기비뇨생식증후군
“안 해주니까 바람을 피우더라고.”
바닥으로 향했던 시선이 한숨과 함께 나로 향한다.
“내가 선생님한테 별 얘기를 다 하네. 근데 내가 누구한테 얘기하겠어요.”
50대 이상의 환자가 피가 난다고 내원하면 겁부터 덜컥 난다. 폐경 여성의 질출혈은 항상 ‘암’을 염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단이 어렵다기보다는, 이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가끔은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말 한마디에도 눈물부터 쏟아내는 환자들도 여럿 보았기에 겁부터 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한 건 암 같은 무서운 일보다는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피가 난다 하시니 밑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충분히 환자의 컨디션과 출혈의 양, 동반 증상, 양상의 변화 등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꼭 빠뜨리지 않고 물어보는 건 이 질문이다.
“최근에 부부관계 하셨어요?”
얼마 전 진료실을 찾은 65세 환자분도 그랬다. 어느 곳 하나 튀지 않고 평범한 모습,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 엄마 같기도, 내 친구의 엄마 같기도, 우리 옆집 아줌마 같기도, 또 나의 20년 뒤 모습이기도 한 보통의 아줌마.
“최근에 부부관계 하셨어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단 목소리를 낮추고 조금 가까이 자세를 고쳐 앉은 후에 “자주는 안 하는데... “로 대답을 시작한다. 이 환자분도 그랬다.
폐경 후 여성호르몬의 감소로 위축된, 말라버린 건조한 질은 상처 나기가 쉽다. 상처는 혈관을 노출시키고 흘러나온 피는 속옷에 조금씩 묻어나다가 상처가 아물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도 하고 며칠이 지나도록 휴지를 적실 정도의 출혈이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상처는 성관계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질내세정을 손으로 꼼꼼히 하거나 용변 후 뒤처리를 세게 하는 경우에도 생길 수 있다.
십수 년간 남편과 부부관계없이도 잘만 살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남편은 자연스레 2순위가 되었다. 그래도 나보다 먼저 챙겨주려 애쓰긴 했다. 하지만 어쨌든 살아내야 하니 일도 해야 하고 집안살림도 모두 내 몫이다 보니 매일 저녁 내 몸, 내 맘 한 번 돌아볼 틈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지쳐 잠들기 일쑤였다. 새벽마다 깨어 엄마를 찾아대는 아이 때문에 아이 옆에서 자다 보니 남편의 옆 자리가 언젠가부터 익숙하지 않고 편하지 않다. 아이 반찬은 걱정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건 배만 부르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에 대충 물 말아 때우는 끼니, 매일 부족한 잠에 늘어나는 건 뱃속에 들이붓는 커피잔 개수인데 성욕이 있을 리가 없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부부관계는 특별한 날에 의무감처럼 하게 되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도 꽤 컸고, 젊었을 때 안 입고 안 먹고 모아둔 덕분에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겨 거울도 보게 되었다. 그 사이 많이 늙었다. 숨겨지지 않는 기미와 검버섯, 그리고 주름, 흰머리가 나이 듦을 저릿하게 느끼게 한다. 한 움큼 잡히는 뱃살과 그리고 끊어진 생리. 그간 자세히 바라보지 못했던 남편의 얼굴을 이제야 쳐다본다. 이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고생 참 많이 했다. 아이들이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게 되자, 오랜만에 내 자리를 찾아 누워본다. 남편의 옆자리. 살며시 다가오는 그의 손길에 긴장감이 돈다. 빨라지는 맥박이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분간이 안된다. 맞닿은 살이 따뜻하다. 몸이 뒤섞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밀쳐내 버렸다. 아팠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 순간 분위기는 냉랭해지고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보통의 날처럼 그렇게 밤을 보냈다. 그날 이후,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이전보다 더 몸과 마음이 멀어져 버렸다.
질건조증으로 대표되는 질과 외음부, 요도와 방광을 포함한 비뇨생식기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감소로 인한 위축성 변화를 폐경기비뇨생식기증후군이라고 한다. 폐경여성의 50% 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절망적인 사실은 점점 진행되고 자연호전이 어렵다는 것. 치료를 중단하면 증상이 재발하기 때문에 장기간 치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여성호르몬의 부족이 원인이다. 여성호르몬의 부족은 폐경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폐경 전 여성에게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수술적으로 난소를 제거했거나 조기폐경이 온 경우, 분만 후, 수유 중인 경우나 유즙분비호르몬이 높은 경우, 자가면역질환, 치료를 위해 성호르몬과 관련된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경우(자궁근종, 자궁내막증, 유방암 등의 치료), 암환자의 항암방사선치료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질이 건조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성관계 시 통증(질입구의 삽입 시 느껴지는 통증)도 흔하다. 달라붙는 바지를 입을 때나 속옷(특히 체형 보정 속옷처럼 꽉 끼는 경우)이 닿을 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증상은 주관적이라 따끔거린다, 타는 것 같다, 찢어지는 것 같다, 가렵다 등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된다.
비슷한 위치에 위치한 방광과 요도에도 위축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잦은 방광염과 빈뇨를 일으킨다.
치료는 크게 두 가지인데 보습과 윤활, 그리고 호르몬의 보충이다.
보습과 윤활은 많은 제품들이 있기 때문에 기호에 맞추어 선택하면 된다. 성관계 시에만 사용할 수 있는 윤활제, 외음부에 도포 가능한 로션이나 크림 등이 병원과 약국, 심지어 온라인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이런 제품들은 성교통을 줄여주고 질분비물을 유지해 주기 때문에 성교통에 효과적이고 의약품이 아니기에 약에 대한 부담이 적다.
하지만 이런 제품은 근본적으로 위축된 질내 환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여성호르몬의 감소로 유발된 증상이므로 여성호르몬을 보충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갱년기증상이 있다면 경구 호르몬치료(먹는 호르몬제)를 고려해 볼 수 있고 전신영향을 고려하여 호르몬제 투약이 어려운 경우에는 경질(질내에 사용하는) 호르몬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 질정, 질크림 등 다양한 제형이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담하여 선택할 수 있다.
“자주는 안 하는데.. 안 해주니까 바람을 피우더라고.”
나는 질정을 처방하고 보습제를 권해드렸다. 남편분도 괜찮으시다면 윤활제 사용하시는 것도 추천했다.
“질 위축이 심해서 많이 건조하신 분들은 질정을 넣기도 힘들고, 질정을 넣어도 잘 안 녹더라고요. 약이 녹아야 효과가 있는데.
질정이 녹아서 흡수되고 남은 찌꺼기가 나오면 분비물처럼 느껴질 수 있고, 외음부도 건조해서 아마 일시적으로 따갑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우리도 겨울에 손이 건조해서 트면 가렵고 심하면 피도 나고 그렇잖아요. 로션 바르면 따갑고 아프고요.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세요.
일단 일주일 사용해 보시고 다음 주에 오셔서 어떠셨는지 알려주세요.“
너무 아팠던 게 잘못이었을까. 아파서 피하는 건 본능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외도였다. 진료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고백이다. 안 해주니까 바람을 피웠다, 안 해주면 바람을 피울까 봐 참는다. 이 말을 이렇게 자주 듣게 될 줄 몰랐다. 남편의 외도가 두려워서 아픔을 참고 몸을 내어주는 여자가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다.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남편을 용서하는 것도, 그 사실을 잊은 척 살아내는 것도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고통을 또 겪지 않기 위해 아픔을 참고 내 몸을 내어주는 것은 어떤 고통인 것일까.
내 뜻 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이 어려운 세상, 그나마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 몸뚱이 하나인데, 이마저도 내 의지가 아닌 어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 줘 버리는 그런 몸뚱이로 사용하는 여자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슬펐다.
**진료실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 정보는 각색하였습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