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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허락이 필요한 사람

자연유산을 경험한 엄마의 이야기

by 김수다

그녀의 등장으로 진료실이 북적북적해진다. 아이들 달래줄 과자며 장난감이 들어있는 보따리 같은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보인다. 오늘 엄마는, 뱃속의 셋째 아가를 보기 위해 병원에 왔다.


첫째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눈을 떼지 못해 의자에 부딪힐 뻔했다. 엄마가 급히 아이 팔을 잡고 엄마 쪽으로 당기는 바람에 아이는 손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렸고 짜증을 냈다. 둘째는 엄마에게서 도통 떨어지질 않는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에도 엄마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하나로 질끈 묶은 푸석한 머리, 긴 검정 원피스를 입고 들어온 엄마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다. 엄마는 첫째를 안아서 의자에 앉혀주고 휴대폰 속 동영상 음량을 줄였다. 그리고 엄마도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둘째는 무릎에 앉힌 채로.


“좀 어땠어요?”

“피가 좀 나긴 했는데, 초음파 봐야 알죠?”

“그쵸. 초음파 먼저 볼게요.”


엄마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려는데 둘째가 칭얼거린다. 간호사가 아이를 안아주려고 다가갔지만 낯선 사람이 무서운지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엄마는 결국 둘째 아이를 데리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언니랑 저거 보고 있어. 비타민 사탕 하나 쥐어주고 나서야 겨우 엄마와 떨어졌다.


까맣고 동그란 아기집, 깜빡거리던 반짝임이 오늘은 없다. 그렇게 셋째 아이의 심장이 멈춘 것을 확인하자마자 엄마는 또 급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슬플 만도 한데 엄마의 표정은 어렵기만 하다.


“수술해야 하죠?”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언제 가능하세요?“

”하아, 당일도 되는 거죠? 일단 애들 어린이집을 보내야 병원에 올 수 있을 거 같은데.“

”남편이나 친정엄마가 하루 봐주시긴 어려워요? 당일도 가능은 한데 엄마도 좀 추스르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둘째가 엄마목소리를 듣더니 엄마에게 다가간다. 엄마, 안아줘. 엄마. 엄마는 둘째를 번쩍 들어 무릎에 앉히고 휴대폰 동영상에 빠져있는 첫째를 바라본다.


엄마는 아가를 잃었다. 첫째든 둘째든 셋째든, 계획한 임신이든 어쩌다 보니 얼떨결에 생긴 아기이든 뱃속에 품은 생명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맺은 결실, 가족으로 나와 타인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 엄마라는 기대와 경이로움을 선물해 주는 귀한 존재. 그런 아가를 잃었다.




유산(abortion)은 뱃속의 아가, 태아가 생존이 가능한 시기 이전에 임신이 종결되는 것을 말한다. 태아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보통 20주 이전, 혹은 태아 무게 500g 미만으로 한다.


유산은 의학적 개입 유무에 따라 자연유산(spontaneous abortion)과 인공유산(induced abortion)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오늘 진료실에서 본 엄마는 자연유산을 경험한 것이다. 자연유산은 4 커플 중 1명이 겪을 정도로 흔하며 나 역시 경험이 있어 그 슬픔을 잘 안다.

자연유산은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B-hCG)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자연유산의 80% 이상은 임신 12주 이내에 발생한다. 16주 이후에는 유산 가능성이 1% 정도로 낮아지기 때문에 보통 임신 16주 이후면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것이다.


질출혈과 복통이 흔한 증상이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유산이 되었다면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자궁을 확인한다. 수태산물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면 소파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자궁이 깨끗하다면 특별한 조치는 필요하지 않다.

유산을 경험한 많은 엄마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아마도 “왜” 일 것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염색체 이상이 절반이다. 염색체 이상이 왜 생기냐 묻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건강하게 잘 자라지 못할 아기였던 것이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가 술을 먹어서 그럴까, 내가 감기약을 먹어서 그럴까, 내가 나쁜 생각을 해서 그럴까.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고 마음속을 헝클어트리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엄마는 잘못이 없다.


물론, 엄마와 아빠의 건강 상태(갑상선 질환, 당뇨, 자가면역질환 등)나 흡연, 음주, 약물 등의 요인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신 전이나 유산 후에는 이에 대한 전문가와 상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이 과정 중에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그것이 꼭 유산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임신의 건강한 성공을 위한 준비가 중요한 것이다. 또, 자연유산이 반복된다면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자연유산 후 출혈은 수 일에서 길게는 2-3주까지도 지속될 수 있다. 보통 생리처럼 점점 양이 줄어들면서 사라지게 되는데 출혈이 많거나 복통, 발열 등 다른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


자연유산 후 4주 후에는 생리를 하게 된다. 좀 더 오래 걸리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6주 이후에도 생리를 하지 않는다면 병원에 내원하도록 한다. 자연유산 후 첫 생리는 평소보다 양이 많고 통증이 심할 수 있다. 생리 후에는 병원에 내원하여 초음파로 내막이 깨끗해졌는지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다.


자연유산 후, 혹은 소파술 후 바로 임신이 가능하며 피임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지만 정서적, 심리적인 회복을 위해 3개월 정도 간격을 둔다.




유산은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하지만 오늘 만난 엄마는 슬퍼할 겨를도 허락되지 않았다. 작은 아이 둘을 안아주어야 하기에 셋째를 보내는 슬픔도 미뤄두고, 이마저도 아이 둘의 일정에 맞춰 조정해야 했다. 엄마로 살아가는 여자들은, 때로는 슬퍼할 시간도 고민하여 결정해야 하는 서글픔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Refernce: Williams obstetrics 26e'

**진료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 정보는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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