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맛있어도 매일 먹게 되면 질릴 수밖에 없는 케이크 와는 달리 김과 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라는 얘길 들은 기억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군만두가 아니라 김과 밥을 줬더라면 주인공이 과연 덜 힘들었을까? 하는 상상도됐지만 맞는 말 같기도 했다.
김과 김치 그리고 나물 몇 가지와 콩나물 국 그리고 밥 위에 눈부시게 자리 잡은 계란 프라이 하나만 있어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던 시절. 소박한 그 밥상은 나의 영혼의 음식(Soul food)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먹을 수 있을 것 같던 그 집밥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 예전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김 | 글씨그림
어려서부터 제일 좋아하던 김을 굽는 기억에는 가스레인지보다는 풍로가 떠오른다.
추억의 풍로 그림을 그려볼까 하고 찾아보니 옛날 숯을 이용해 썼던 풍로와 석유나 가스를 이용하던 곤로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풍로의 일본식 표현이 곤로라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생김을 사다가 들기름 발라 풍로 불에 석쇠로 어머니가 직접 앞뒤로 돌려가며 정성스럽게 구워내고 굵은소금을 훌훌 뿌려 큰 가위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상에 올리던 김은 반지르르 윤을 내며 침샘을 자극하곤 했다. 손님이 오는 날이나 명절에는 작고 넓은 접시에 가지런히 쌓아 올려져 나왔고, 평소에는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김통에 김을 담아두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밥을 뜬 수저의 등에 있는 찰기를 이용해서 김을 찍어 올려 먹었는데 입을 크게 벌려 그대로 삼키기도 하고 왼손으로 김을 구부려 밥을 감싼 후에 입에 넣기도 했다.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는데 김을 손이나 젓가락을 이용해 먹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방법이 또 있을까? 손으로 집는 것은 매번 손을 닦기도 귀찮고 위생적이지도 않을 거 같다. 젓가락질만 능숙하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젓가락 질이 서툰 아이들에겐 어려울 수 있다. 역시 수저의 등으로 붙여 먹는 방법이 노하우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가끔 찰기가 부족해서 운반 중에 김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으니 이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중학생 때 즈음이었나? 집에서 구워 먹던 크기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로 잘려 공장에서 구워진 김이 10장씩 포장된 그대로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급식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자주 봤는데 나온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가정집 식탁에도 완전히 자리를 잡았던 거 같다. 세탁기처럼 어머니 일손을 덜어주는 건 감사한 일인데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은 계속 모자랐다. 그래도 편리함에 밀려 이젠 직접 김을 구워 먹는 일이 거의 없다.
문득 불맛을 가득 품은 그 빳빳하고 두툼했던 구운 김이 그리워 돈을 더 주고라도 한 번쯤 먹고 싶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다. 가공되지 않은 생 김을 가게에서 직접 구워 비닐봉지에 넣어 파는 재래시장 김은 그나마 마트에서 파는 김보다는 식감이 나은 편이지만, 기름이 계속 덧칠해진 철판을 가열하는 기계를 쓰기 때문에 불향을 느낄 수가 없고 아무래도 다량으로 만들다 보니 기름도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붉은 고추를 햇볕에 바삭하게 말려 고춧가루를 만들고 콩을 삶아 메주를 쑤어 고추장, 된장, 간장을 어머니가 직접 집에서 만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공장 김의 등장 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 일이다. 이젠 김치 역시 사다 먹는 게 흔한 일이 됐다. 공장 김치가 시중에 팔리기 시작했던 초기에 비해 요즘은 사 먹는 김치도 먹을만한 것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집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는다.
옆에서 구경만 해도 김장의 번거로움과 고단함은 느낄 수 있다. 직접 배추를 절이고 젓갈을 준비하고 채소를 무수히 썰고, 풀죽을 쒀서 양념과 버무릴 때도 손맛을 넣기 위해 고무장갑도 사용하지 않으시는 할머니 한분이라도 계신 집이 아니고서는 감히 직접 해 먹자는 말은 못 한다. 그러나 가끔씩 집에서 담근 김치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집밥 | 글씨그림
대중화와 대량 생산으로 얻게 된 편리함 뒤에는 우리가 양보하고 적당히 무뎌져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덕분에 그때는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희생과 노동의 가치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고마움을 더욱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 맛을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다.
나 역시 평생 편리함과 경제적인 것을 추구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이미 길들여지고 익숙한 것에 대한 향수를 단지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에 둔해지면서부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제야 다른 관점에서의 가치도 볼 줄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번거롭고 귀찮고 어려운 만큼 귀한 소비를 하던 과거의 행위들이, 어쩌면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를 채워가고 점점 숨쉬기 어려워지는 현재의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