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사고(思考) 일지 [프롤로그]

논문보다 한 편의 시를 쓰고 싶던 날

by Molly

어느 날 밤, 연구실의 불은 이미 꺼졌고, 내 앞에는 워드 문서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모니터 속 커서는 침묵처럼 깜빡였다. 논문의 서론을 다듬다 말고, 나는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가 벽 위로 춤추듯 스쳤다.


조심스럽게 노트북의 다른 탭을 열었다. 워드 파일 대신 메모장. 그리고 커서 대신 깜빡이지 않는 빈 줄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정제된 언어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언어로 호흡하는 기쁨“. 정확한 단어 하나, 세심한 형식 하나 없이도, 그 순간의 해방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이 시리즈의 연재를 시작할 결심을 그때 비로소 했던 것이다.


“이 문장은 충분히 논리적인가?”


나는 논문을 쓸 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지만, 답은 늘 모호했다. 실험 데이터와 그래프, 꼼꼼히 채운 참고문헌 목록…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완벽한 퍼즐’ 같았지만, 그것을 타인으로 하여금 믿을 만한 방식으로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항상 엄밀하고 정합된 논리로 무장해야만 할 것 같은 논문에서도, 때론 적절한 은유가 허용된다. 게다가 아주 오래 고민하여 알맞게 고안된 비유는 복잡한 개념을 독자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테면 이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발적으로 보고한 결과들을 통합된 원리 하에 재구성하는 아주 훌륭한 연구를 본 적이 있다. 저자는 그 발견을 주기율표에 비유하여, 자신이 기술한 원리에 따라 주기율표의 빈 원소를 예측하듯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실험 결과를 예견할 수 있음을 아름다운 구조로 보여주었다.


우아한 과학자들, 흔히 대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글은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쉰다. 그런 글들은 읽고 있자면 나로 하여금 낡은 시집 한 권을 생각하게 한다. 정형화된 학술어의 나열처럼 보이나 단어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은 구절들. 그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학문의 언어는 잠시 내려놓고 시를 꿈꾸게 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을 통해 연구와 일상 사이, 논리와 감성 사이에서 느끼는 이중적 갈망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큰 기쁨일 것이다. 논문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언어로 호흡하는, 평범한 사람의 과학 하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