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열] 앞서간 타인에 대하여

우아한 사고(思考) 일지

by Molly

어느 날 문득, 같이 출발했던 사람이 눈에 띄게 멀어졌다는 걸 실감할 때가 있다. 논문이 실렸다는 소식, 이름 있는 연구실에 합류했다는 소식,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방향을 잡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소식.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그 아래 어딘가에서 들끓는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나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항상 비교의 순간에서 나온다. 내 안의 잣대가 아니라, 타인의 속도와 결과로부터 내 자리를 되짚어보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런 순간은 연구자에게만 오는 건 아닐 것이다. 학생일 때도, 직장인일 때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마주치며 자기 자신을 해석한다. 다만, 과학이라는 분야에서는 그 비교가 때로 더 날카롭고 잔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수치로 보이는 결과, 인용 수, 실적, 승인된 과제… 이 모든 것이 숫자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런 감정에서 자유로운 줄 알았다. 꾸준히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늘 한 박자 늦게 반응한다. 잘하고 있는 친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 고개를 든 생각은 기쁨이 아니라 당황함이었다.

“나는 아직 그만큼 못 갔는데, 같이 시작했는데, 왜 나는 여기에서 헤매고 있지?”

이 감정은 부끄럽고도 당연하다. 누구나 겪는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내게 찾아왔을 때는 쉽게 다루기 어렵다. 가장 힘든 건, 그 감정이 내 질문의 진정성까지 괴롭힌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게 궁금했는데, 이 질문은 충분히 중요한 걸까?’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는 연구 자체보다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감정들이 연구자의 마음에 꼭 필요한 층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오히려 나만의 속도와 중심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타인과 비교해 흔들리며 나는 내 속도를 고민했고, 그 고민 끝에야 비로소 “나는 이걸 좋아해서 시작했다”는 초심을 되짚을 수 있었다. 과학을 사랑한다는 감정이, 누군가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압박보다 훨씬 단단한 중심이 되어줬다.


내가 보고 싶은 현상은 무엇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은 어떤 것인가. 그렇게 질문의 방향을 다시 세울 때,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처럼 잘해야 한다’는 말 대신 ‘나는 이렇게 잘하고 있다’는 말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었다. 과학은 결국 자신만의 질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다른 사람의 성과에 진심으로 박수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건, 나 자신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속도는 단지 다른 궤적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성취가 결국 과학 전체를 한 발짝 나아가게 한다는 걸, 조금씩 체감하게 된다.


여전히 가끔 흔들린다. 가끔은 의심도 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조차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구자의 길이란 결국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그 리듬은 타인의 속도를 견디며 만들어진다.


나는 아직 멀었다. 하지만, 천천히, 단단하게 나아가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질 때, 그건, 당신이 잘못 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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