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사고(思考) 일지
지금까지의 글들은 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삶의 형태가 어떠할 것인가를 다루었고, 두 사람 이상의 관계로부터 파생되는 연결 상태의 모양새가 어떠할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구조를 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오해가 생기고,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고민해 볼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감정만으로 세게를 해석하는 것보다는 조금 덜 잔인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낭만적으로 만들기(romanticize) 위해서 쓰인 글도 아니다. 오히려 관계가 왜 그렇게 자주 어긋나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 의지의 무용성이라는 실망감을 극복하려는 논의를 몇 가지 제시했었다.
결국 매일매일 수많은 메시지가 오가고, 개개인의 삶들은 치열하다. 어떠한 것은 취사선택되어 사라지고, 어떤 것은 강조되며 일부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이제는 우리가 건너가야 할 거리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조금은 알고서 건너가게 될 것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이어서 개개인의 경험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표면적인(superficial) 기술에 그치게 된다. 개인의 경험이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임의의 타인 100명의 삶에 대한 경험을 그대로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의 가치를 지불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필자는 한 명당 적어도 1억씩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 까닭은 한 사람이 적어도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의 가치, 특히나 그 경험이 다양할수록 부분들의 합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면 1억이 아니라 더 적은 값을 불렀을 것이고, 100명은 다양한 삶의 형태를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다.
이러한 사고 실험을 통해서 은연중에 필자는 스스로 결정한 지금까지의 삶의 경로에 대해서, 아직 가 보지 않은 일들을 탐험하고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따라서 만약 이 시리즈의 글을 처음부터 다시 쓴다면, 아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우리 삶과 연결된 존재들의 모양새를 설명함에 있어서 개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덧붙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문구를 연상하면서도, 개인적이면서 개성적인 글을 정비하여 다음 시리즈를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