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사고(思考) 일지
과학을 한다는 것은 사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진정 사실이 어떠하였는가’를 밝힌다는 사명감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두고 더 오래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용이야 실험을 통해 어찌어찌 얻을 수 있다지만, 그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형식의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이 과학자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검토해 보곤 한다. 내가 다루는 것은 사실(fact)이지만, 내가 전달하는 것은 사실의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놀랍게도 내용만큼 강력하다.
처음 논문 초안을 썼을 때였다. 실험은 깔끔했고, 데이터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러나 지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맞지만,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틀린 거야.” 처음에는 억울했다. ‘틀리지 않았는데 왜 틀렸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하지만 수정을 거듭하며 점점 알게 되었다.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은, 그 형식이 적절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형식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용이 머무는 그릇이다. 그릇이 지나치게 작으면 내용은 넘쳐 흐르고, 지나치게 크면 중심을 잃고 희미해진다. 적당한 형식을 찾는 일은, 보기 좋게 만드는 심미적 디자인이 아니라, 내용이 살아서 독자에게 닿게끔 하는 인체 공학이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처음에는 현학적인 표현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험실 안에서도, 논문 한 줄 한 줄을 구성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날카로운 진실인지를 체감한다. 형식이 사실을 ‘변형’하지는 않지만, 사실을 ‘구성’한다. 실험에서 얻는 수치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수치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순서로 배열하고 어떤 단어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도달하는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차이는 결국 논문이 ‘읽히는가’, 혹은 ‘무시되는가’를 가른다.
어떤 날은 이런 생각도 든다.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데이터를 다듬고, 문장을 다듬고, figure의 순서를 바꾸고, 캡션을 고치는 이유는, 진실이 그저 ‘있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해되기 위해서는 형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형식이야말로 우리가 진실을 믿게 만드는 힘이다.
과학적 글쓰기는 단순한 데이터의 나열이 아니라, 생각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과학도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일이고, 언어는 형식 속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같은 구조 속에 있다. “괜찮아”라는 말은 말투와 표정, 타이밍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상냥한 말투로 건네는 “괜찮아”는 위로지만, 싸늘한 톤으로 던지는 “괜찮아”는 분명한 거절이다. 말은 내용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형식을 타고 흐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형식을 고민한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떤 순서로 보여줄 것인가, 어떤 단어를 선택할 것인가. 내용은 주어진다. 하지만 형식은 만들어야 한다. 그 차이는 곧 내가 만든 세계가 ‘읽히는 세계’인지, 아니면 그저 데이터 더미에 불과한지를 결정짓는다.
우리가 전하려는 진심, 우리가 발견한 진실이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세상과 만나기 위해 필요한 건, 어쩌면 아주 사소해 보이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어떤 형식으로 세상을 말하고 있는가? 세상을 향해 어떠한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주고 있는가? 당신의 진가를 타인이 하여금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과학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그 대답을 오늘도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