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사고(思考) 일지
지난 두 달 간 공유했던 일련의 글들의 주제는 어디를 향해 수렴하고 있는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체성이 있겠으나,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자 함이 잘 드러났기를 바라고 있다. 처음에 이 시리즈를 기획하였을 때 다루고자 했던 것은 한 사람의 과학자가 기적적으로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대개 치열한 노력을 동반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돌아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그렇기에 나 역시나 그 길을 따라가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본 것들을 글로써 흔적 남기고자 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써 온 글들에서 나는 과학자가 겪는 사유의 과정을 따라가고자 했다. 좋은 질문에서 시작해서, 합리적이고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이어져 서사를 구성하는지 설명하였다. 선구자들의 어깨 위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 하나를 쌓아가기 위한 여정을, 타인의 말을 빌리면서도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공표하는 외침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건, 과학이 단순한 데이터의 축적이나 결과의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과학은 언제나 사람의 판단, 그 사람만의 선택과 직관 위에 세워지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스스로에게 주는 지침 같은 것이기도 했다. 나는 매번 빠르고 정확한 해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문제를 오래 붙들고, 때로는 돌아가고, 가끔은 정지한 채로 머물러 있는 편에 더 가깝다. 그동안 내가 해온 연구들 중 몇 개는 오랜 시간을 들였지만 끝내 방향을 잃었고, 몇몇은 의외의 순간에 실마리를 얻기도 했다. 어떤 연구는 마무리도 되지 못한 채 멈춰 있었고, 다시 꺼내기까지는 몇 계절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분명한 감각 하나는 남았다. 누구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압박은, 나를 나아가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초조함에 휘둘릴 때, 오히려 내 질문은 흔들렸고, 내 언어는 작아졌다. 반면,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점검해보고, 내가 궁금했던 이유를 되짚어보고, 천천히 쓰는 문장을 믿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나는 연구자로서의 중심을 조금씩 잡아갔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판단이나 논리의 구조를 설명하기보다, 과학자로 살아가며 마주한 흔들림과 회복의 순간들, 연구의 현장에서 겪는 감정과 내면의 균형, 그리고 무엇이 나만의 속도라는 감각을 세우게 했는가에 대해서 나눠보고 싶다. 과학이라는 일이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들 속에서 어떻게 성립되고, 한 사람의 불완전함 위에서도 어떻게 유의미한 세계가 만들어지는지를, 이제는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의도적으로 없는 신파를 부풀려서 수많은 고난을 겪어 온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담백하게 말하자면, 주위에 함께 성장해 가다가도 어느샌가 나를 추월한 동년배들을 보며 스스로를 점검했던 기억, 각각 2년씩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여 진행했던 연구 프로젝트가 좌초되어 혼자 앓았던 기억, 마땅한 멘토를 찾지 못해 맨땅에 헤딩하며 영리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 속애서도 배운 점들이 더 많기에, 주변이랑 비교하면 마음이 급해질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것부터 천천히 잘 해보자는 생각을 다짐하게 된다.
2부의 글들애서는, 더없이 평범한 연구자 한 사람이 겪는 비교, 실패, 회복, 반복의 이야기를,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평범하고 시기 질투 많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