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 되기(1)
'미니멀리스트'란 신조어가 생겼다.
'심플'에 집중한 간소하지만 소신 있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책들을 우연히 접하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늘 입버릇처럼
'나 쇼핑하는 거 질색이야'하던
나의 삶 또한 불필요한 소비와 물건들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했다.
나의 공간에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있었는지 말이다.
궁금했다.
이것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
'오늘 쇼핑 가야지'하면서 외출한 기억이 손에 꼽힐 정도다. 게다가 결혼 전부터 나에게 화장은 BB크림과 틴트가 전부였다. 이쁜 얼굴도 아니면서 참으로 용감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난 저것으로 충분했다. 옷이나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열심히 신고 뛰었던 하이힐 덕분에 발가락 모양이 흉하게 변한 후, 난 나의 불쌍한 발을 운동화를 통해 대지로 착륙시키기로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넉넉한 티셔츠, 활동성 좋은 청바지, 발을 편안하게 해주는 운동화. 대부분의 지인들은 나를 이런 이미지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스스로도 나를 이렇게 정의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가식적이고 웃긴 정의다. 게다가 타인을 굉장히 의식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말이다. 몇몇 사람들이 내게 저런 단어를 붙여줄 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어쩐지 내가 꾸미지 않고도 멋진 사람이 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더욱 의식적으로 저런 콘셉트를 만들어 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난 수수한 사람이 아닌 게으른 사람일 뿐이란 사실을. 이 사실은 집 안 현관을 열고 들어설 때면 더욱 명확해졌다. 옷장을 열면 용광로처럼 쏟아지는 옷들과, 넘치는 운동화와 단화들로 닫히지 않는 신발장 문, 그리고 책장에 정착하지 못해 여기저기 길을 잃고 흩어져있는 수많은 책들...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심플하고 수수한 사람의 집은 늘 위태롭고, 조마조마했다.
언젠가 물건들이 폭발하 듯 쏟아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난 정말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갈 때면 두통이 생기고, 띵~한 느낌을 받는다. 온라인 쇼핑도 마찬가지다. 한 번 클릭을 시작하면 모니터 사방에서 공격해오는 광고성 팝업창과 각종 마케팅으로 인해,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돼서 질색한다.
하지만!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물건을 사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쓸모없고 많은 물건을 구매하게 된다. 몇 가지 상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상황 1 집 안에 휴지, 샴푸, 세제 등이 똑~ 떨어졌다. 시작부터 짜증스러움을 안고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한다. 검색어를 입력하자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쭉~ 검색된다. 이때 최저가는 믿음이 가지 않아, 최저가보다 가격이 높고, 신뢰가 가는 인터넷 쇼핑 사이트인지 확인한다. 그렇게 클릭하자마자 각종 팝업창들이 모니터를 공격한다. 이 순간이 제일 싫다. 그래서 '다시는 보지 않기' 또는 '일주일간 보지 않기'를 꾹 클릭한 후, 구매하려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 과정까지 최소 10분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일까? 결제를 앞두고 물건을 추가로 담는다. 방금 전 사이트로 들어올 때와, 로그인 후에 달려들던 그 팝업창들과 화면 여기저기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연관 상품 목록이, 너무 노골적이라 불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원래 구매하기로 했던 물건이 2~3배로 늘어난다. '어차피 다 쓸 물건인데 뭐' 하지만 막상 도착한 어마어마한 양에 살짝 당황스럽다. 집 안 수납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물건들은 흩어져 집 안 곳곳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어떤 물건들은 내 기억에서 지워진다.
상황 2 오랜만에 친구와 약속이 있어 강남역에 갔다. 거리가 먼 탓에 서둘렀더니 또 친구보다 20~30분 먼저 도착했다. 참으로 애매하고 난감한 시간이다. 지하철에서 7번 출구로 향하면서,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한다. 서점을 가자니 멀고, 카페를 가자니 친구와 식사 후에 갈 코스인지라 돈이 아깝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중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한다. 9,900원, 19,900원. 맞다! 여긴 옷값이 저렴한 강남역 지하상가다. 오늘 아니면 이렇게 저렴한 옷을 못 살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쇼핑가기 귀찮았는데, 여기서 싼 옷들을 몇 개 후딱 사면, 시간도 돈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너 어차피 요즘 회사에 입고 다닐 옷들도 없었잖아. 이런 생각 끝에 20분 만에 3벌 정도의 옷을 구매한다. 부스럭 거리는 봉지 속에 담긴 옷들을 보며 '그래 참 알뜰하게 잘 샀다'하면 친구와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다. 막상 집에 와 봉지에서 옷을 꺼내면, 옷장에 비슷한 옷이 이미 있거나, 아니면 막상 입어보니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이 옷들은 옷장 안에 방치되고, 난 다음 강남역 외출에서 또 봉지를 들고 집으로 귀가한다.
상황 3 살이 쪘다. 몸이 전보다 무거워진 느낌을 받은 후에도 '먹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금방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랐다. 맙소사. 8킬로나 늘었다. 이 작은 키에 60킬로 직전이 웬 말이냐! 이때부터 폭풍 인터넷 검색이 시작된다. 이때는 팝업창까지 유심히 살핀다. 그렇게 우선 닭가슴살을 2kg과, 연관 쇼핑 목록에 있는 고구마도 2kg을 주문한다. 결제를 하고 나니 '배송까지는 2~3일이 걸린다'는 메시지가 뜬다. 마음이 급하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일단 무작정 마트로 간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제품이 많다. 요구르트, 칼로리 적은 라면과 과자 그리고 과일을 무리하게 사들고 집에 온다. 집까지 오는데 15분이 걸렸다.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느라 어느 정도의 칼로리 소모가 된 것 같다. 오늘은 다이어트를 준비하는 날이니, 이것들은 내일부터 먹기로 한다. 그리고는 폭식까지는 아니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충분히 먹고 잠자리에 누워서 앞으로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다가 새벽에 잠이 든다.
지난밤, 다이어트 계획을 세운다며 인터넷 검색을 오래한 탓에 늦잠을 잤다. 빈 속으로 부랴부랴 출근을 한다. 아침을 먹지 않은 탓인지 속이 허~하다. 그리고 찾아온 12시. 점심은 정상적인 식단을 먹는 게 좋다고 했던 파워블로거의 글이 생각나, 회사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평소에는 백반집을 가는데, 오늘 따라 팀장님이 해장을 해야겠다며 '중국집'을 가자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그 칼로리가 높다는 '짬뽕'과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막 개업한 집이라 그런지 밥 한 공기씩 서비스로 나눠준다. 고추기름이 둥둥 떠있는 짬뽕을 바라보며, 오늘 저녁에는 간단하게 과일을 먹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이다.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또 팀장님이 한 소리한다. '오늘 회식합시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비싼 소고기 집에 간다. 어쩔 수 없이 또 내일로 다이어트를 미루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다음 날, 기다리던 닭가슴살과 고구마가 경비실에 맡겨졌다는 문자를 받는다. 기쁜 마음으로 퇴근을 준비하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온다. 요즘 너무 힘들다며, 오늘 시간 있으면 저녁을 먹자고 한다. 이 나약한 마음, 어쩔 수 없이 OK를 외친다. 힘들다던 그녀는 만나자마자 나를 끌고 레스토랑에 간다.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달달한 게 필요하다며 디저트 가게까지 간다. 그렇게 느끼하고 달콤하면서, 어마어마한 칼로리가 느껴지는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택배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피곤함을 느끼며 닭가슴살을 냉동실로, 고구마는 베란다로 옮겨둔다. 두 공간 모두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다음 날부터 난 갑자기 바빠진다. 그리고 살이 더 찐 후에 실내에서 탈 수 있는 자전거를 구매하지만, 한 편으로는 저 자전거가 빨래건조대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사실 이 글은 1월에 작성했었다. '상황 3'까지 쓰고는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뒀다. 바빠서 글을 쓰지 못했지만,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20벌 정도 되는 옷들을 지인에게 나눠주고, 10벌이 넘는 옷을 버렸다. 또한 책장에 자리가 없어 흩어져 있던 책 중에서 더는 보지 않을 50권을 중고서점에 팔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황 3에 등장한 자전거 역시 지난주에 중고 사이트에 올려 정리했고, 음식들도 다 버린 후 필요할 때만 소량 구매 중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물건과 함께 인간관계도 심플하게 정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내게 가져온 즐거움이나 행복이 참 많았다. 그래서 다시 서랍에 있는 이 글을 꺼내서 글을 완성하고, 이런 나의 이야기를 계속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심플한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