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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an 22. 2021

9년째 금연 중

이미지 출처: 영화 <소공녀>




 “언니, 볼펜을 왜 그렇게 쥐고 있어?”     


  지나와 카페에서 책을 읽기로 한 지 겨우 삼십 분이 지났을 뿐인데, 아뿔싸.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볼펜의 허리춤을 누르고 입술 사이로 볼펜 정수리를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또 이러고 자빠져있다니. 나는 예를 다해 테이블 구석에 볼펜을 눕혔다. 괜한 고문을 당한 녀석을 볼 낯이 없었다. 한데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초조하게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래?”

  “안 되겠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나는 반쯤 풀린 동공으로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저깄다. 편의점이 보인다. 지나에게 후딱 다녀오겠다며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쿰쿰한 향이 코끝을 덮쳤다. 내 옆을 지나가던 남자가 흩뿌리고 간 냄새였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스물여덜. 담배를 끊기로 마음먹은 지 일주일이 됐을 때 일이었다.     


     



  대개 흡연자는 술도 좋아할 거란 오해를 받곤 하는데, 나는 담배만 태우는 쪽이었다.


  몇 번의 음주 경험을 통해 술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대학시절 이후로 소주를 한 잔도 마셔본 적이 없다. 가물에 콩 나듯 입에 대는 맥주 한 캔과 과실주 한두 잔. 이게 나의 주량이자 음주 패턴이다. 친구들과 잦은 술자리를 갖던 20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내게는 담배뿐이었다. 뭐랄까. 흡연은 내가 하는 유일한 일탈이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내가 금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사소했다. 어느 날부턴가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유쾌하지 않단 걸 눈치채고 난 후였다.     


  사실 흡연자에게도 담배 찌든 향은 유쾌하지 않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도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곤 했다.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면 양치하고, 손 씻고, 옷에 향수 뿌리고, 손에 핸드크림을 발랐다. 이런 수고에도 겨울에는 쉽게 냄새를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겨울 외투를 입을 때가 그랬다. 여름에야 한 번 입고 옷을 세탁하는 편이라 괜찮았다. 그런데 겨울 점퍼와 코트는 다르다. 소재도 그렇고 부피도 그렇고 활용도 면에서도 세탁이 쉽지 않다.     

      



  누군가는 담배는 끊는 게 아니고 참는 거라던데, 내 경우는 참는 단계도 지난 것 같다. 아무리 멘탈이 빠개지는 막장에 놓여도 뿌연 연기가 더는 고프지 않다. 어떤 날은 남편과 대판 싸우고 야밤에 홀로 집 밖에 나간 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24시 국밥집에 들어가 맥주 한 병과 국밥 한 그릇을 시켰는데, 국밥만 먹어치우고 맥주는 한 잔도 다 비우지 못했다. 이날 집으로 돌아오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억장이 무너지는데도 담배가 안 당긴다고? 거참, 대견하군.      


  가끔 오래된 지인들이 묻는다. 대체 담배를 어떻게 끊은 거냐고. 너 이렇게 독한 사람이었냐고 말이다.      


  내게도 니코틴이 뇌로 전달해주는 도파민은 짜릿했다. 힘들 때 친구보다 담배가 먼저 생각나는 흡연자였단 말이다. 어떤 날은 외출하려고 나가던 길에, 주머니에서 똑 떨어진 담뱃갑 때문에 처음으로 아빠의 두툼한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적이 있다.      


  또 어떤 날은 여성 흡연자란 이유로 이상한 선입견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는 여자의 연애는 가볍고 넓게 이뤄질 거라 믿던 마초 성향의 소개팅 상대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아직 날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첫 만남부터 거만한 말투로 사귀자던 그에게, 말보로 멘솔을 입에 물고 폭탄주 다섯 잔을 연달아 말아줬었다. 이거 다 마시면 고려해 보겠다면서 말이다. 예상대로 그는 추잡하게 취했고, 나는 그가 빙판길에 쓰러져 허우적거리는 걸 보며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와 버렸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이 되는 담배를 끊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런 내가 보조제 하나 없이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작심삼일과 후회의 반복’이었다.     


  담배를 완전히 끊기까지 꼬박 일 년이 걸렸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금연이다! 이렇게 외치고 돌아선 지 반나절 만에 정신을 차려보면 담배가 손에 들려 있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패팅 솜까지 촘촘히 스며든 재떨이 향에 후회막심. 다시 가지고 있던 담배를 모두 쓰레기통에 던지고 금연을 외친다. 하지만 며칠 후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계획은 무너진다. 또 실패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찜찜한 기분으로 담배를 태우다가 다시 끊겠노라 외쳐댔다.

     

  금연을 위해 이런 작심삼일과 후회를 반복하는 과정을 지치지 않고 반복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멀쩡한 담배 몇 갑을 그냥 버렸는지. 매끈했던 펜이 몇 자루나 내 치아에 망가졌는지. 다 셀 수가 없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후회와 실패를 반복하는 멍청한 행동은, 포기와 유지를 하고야 마는 편안한 선택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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