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고 성실하단 말이 더 이상 칭찬이 아님을 안다. 긍정적인 말에 뭐 그리 토를 다느냐 할 수 있지만 바름과 성실 앞에 여러 기회비용을 잃었던 사람에게 위와 같은 표현은 이따금 쓸쓸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글을 많이 쓰지 못했다. 바르지 않았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성실하진 못했나 보다. 나는 글을 쓸 때 다른 사람들의 글로 양분을 얻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발견할 땐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답답한 뇌에 물파스를 바르면 이런 기분일까? 꽉 막힌 교통체증이 뚫리는 것 같고 오래된 고민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신선한 문장을 발견한다는 것은 정말 여러 모로 삶에 도움이 된다.
왕가위 감독님의 <중경삼림>을 봤다. 어렴풋한 셈으로는 여덟 번째 인 것 같다. 처음 본 해부터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다시 본다. 보기만 해도 덥고 습기 가득한 그곳에서의 눅눅한 자유로움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행복감을 준다.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언제나 그렇듯 금성무처럼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는다. 평소엔 인지하지 못할, 약간은 적당히 외롭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딱 그 외로움만큼의 그리움이 섞여있는 맛이다. 이 외로움과 그리움 또한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테지. 고작 몇 조각의 파인애플을 맛있는 척 씹는 것뿐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도 완벽한 금성무였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그저 그런 현실이었다. 시시하지만 가볍지도 않은 것들이어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진흙밭 한가운데 침잠해 있었다. 그리고 빠져나오는 데에는 들어갔던 것보다 몇 곱절의 시간이 걸렸다. 찐득하게 굳어버린 진흙들을 부스러질 때까지 잘 말려서- 약간의 상흔은 남았지만 그래도 툭툭 털어냈다고 생각했을 때, 눈물이 터져버린 것은 비소로 그때였다. 그리고 많은 나날들을 그렇게 몇 박자 느리게 보냈다.
굳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쪽에서 짊어지겠다는 뜻이었다. 그저 몇 번 더 울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근데 참 이상하지, 난 지금까지도 그게 제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