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는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
흔히들 '상처 받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때 말하는 '상처'는 몸의 상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의미한다.(*물론 마음이라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뇌를 의미하는 것이고 뇌는 몸의 일부이므로 마음의 상처가 곧 몸의 상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관용적인 표현 그대로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를 분리해서 바라보기로 한다.)
왜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왜 우리는 마음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상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상처는 일종의 기억이다.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하자면 마음의 상처는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이러한 기억은 스스로 떠올릴 때마다, 혹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떠올려질 때마다 괴로운 감정을 유발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세상을 느끼고 경험한다. 그 수많은 경험 중에 어떤 경험은 처음부터 무시되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잊히는 반면, 어떤 경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특히 교통사고, 주변인의 죽음, 집단 따돌림, 폭력과 모욕 등 부정적으로 강렬한 감정을 유발한 경험은 그 어떤 경험들보다도 더 쉽게 잊히지 않고 마음의 상처로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들이 기억에 오래 남게 되는 이유는 그 경험들이 작든 크든 우리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경험이라고 몸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추구하는 근원적 본능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몸은 생존을 잘 추구할 수 있도록 정교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생존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높은 각성 상태가 되고, 높은 각성 상태에서의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그러한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몸의 시스템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상처를 받고, 상처로 인해 고통받는 이유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시스템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는 현재와 미래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 과거와 같은 상황에 마주치지 않도록 최대한 피하게 만들고, 과거와 같은 상황에 마주치더라도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생존에 도움을 주기 위한 '마음의 상처 시스템'이 과하게 작동했을 때, 오히려 생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마음의 상처로 인한 고통 때문에 어떤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 오히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주 작은 단서만 마주치게 되더라도 그것을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스스로 남들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여 의식적으로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심장이 빨리 두근거린다거나 식은땀이 난다거나 하는 생리적 반응은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이 어렵다. 부정적인 경험이 유발하는 과도한 생리적 반응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사람이 가진 최우선의 본능은 생존이고, 상처는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아프다.
마음의 상처를 나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의식적으로 떠올리면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면 마음의 상처로 인한 고통을 조금은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