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과 생산물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자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원으로 만들어 낸 다양한 형태의 '생산물'이 있습니다.
생산물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물'과,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비필수물'로 나누어집니다.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한 형태의 필수물을 섭취해야만 합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필수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비필수물은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삶을 이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지는 것들입니다. 어떤 비필수물은 필수물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교환
한 사람이 모든 형태의 자원을 다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형태의 생산물을 다 만들어내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교환해야 합니다.
교환을 위해 사람들은 양팔 저울 위로 올라갑니다.
양팔 저울은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를 잽니다.
내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상대방의 마음이 상대방의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내 마음보다 크면, 상대방이 아래로 내려가고 내가 위로 올라갑니다.
상대방의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내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상대방의 마음보다 크면, 내가 아래로 내려가고 상대방이 위로 올라갑니다.
교환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의 무게가 같아야 합니다. 서로 같은 높이에 있어야 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든, 동정을 받든, 어떤 방법을 써서든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크기를 키워야 합니다.
"제발 제 것을 선택해 주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이렇게나 가치 있다고요!"
"내 것을 가지고 싶으면 더 노력해서 설득해 봐. 아니면 더 매력적인 것을 갖고 오든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특별하지 않아. 반드시 네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고. 내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너 말고도 많으니까. 아쉬운 네가 내 마음에 들도록 더 간절하게 노력해야지."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때로는 위로 올라가고, 때로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때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기반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은 자원과 생산물,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려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거의 모든 자원과 생산물에는 이미 주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선뜻 마음의 크기를 맞춰주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는 자라서 꼭 좋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것을 많이 나누어 받은 사람은 이후에 더 쉽게 좋은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교환이 수월해집니다.
반면 이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것을 거의 나누어 받지 못한 사람은 이후에 좋은 생산물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지고, 다른 사람과의 교환이 힘들어집니다.
설득
"이것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져야만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져야만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져야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져야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환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필수물뿐만 아니라 비필수물까지도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과장해서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높여나갑니다.
많은 설득의 시간이 지나면 어떤 비필수물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지 않고 교환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비축해 놓은 필수물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도 비필수물부터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치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저울에서 더 자주 높은 위치로 교환을 시작하고, 더 오래 높은 위치에 머무릅니다. 그렇게 그들은 '윗사람'이 되어 우월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저울에서 더 자주 낮은 위치로 교환을 시작하고, 더 오래 낮은 위치에 머무릅니다. 그렇게 그들은 '아랫사람'이 되어 절망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윗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좋은 것이고, 귀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옳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반대로 아랫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나쁜 것이고, 천한 것이고, 추한 것이고, 틀린 것이라고 여깁니다.
사람의 가치 역시 가지고 있는 것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가 곧 그 사람의 가치가 됩니다.
사람들은 윗사람은 그저 좋은 사람이고, 귀한 사람이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옳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반대로 아랫사람은 그저 나쁜 사람이고, 천한 사람이고, 추한 사람이고, 틀린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윗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랫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생산물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그런 건 현실감 없는 자기 합리화일 뿐이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 다른 사람들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라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 곧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원래부터 자신이 원해왔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평가
사람들은 저울 위에 올라가 있든 그렇지 않든, 모든 순간에 자원과 생산물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과 생산물을 전부 직접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내려진 다수의 평가가 옳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수와 다른 평가를 내리는 소수의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여겨지고, 그들이 내린 평가는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되며, 그들이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거나 좋아해 왔던 다른 것들마저 그 가치를 의심받게 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니?"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니?"
"너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너는 틀린 사람이야. 나는 네가 지금까지 좋다고 평가해 온 모든 것들의 가치 또한 믿을 수 없어.”
같은 것에 대해서 다르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평가는 옳고 다른 사람의 평가는 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서로가 서로의 평가를 평가하며, 틀린 평가를 고쳐주고 싶어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같은 것에 대해서 같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뭉쳐서 집단을 이룹니다.
자신이 좋다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좋은 점만 찾아내어 집단에 공유하고, 자신이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쁜 점만 찾아내어 집단에 공유합니다.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평가가 옳고, 반대되는 사람들의 평가가 틀렸다는 것에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윗사람이 되기 위해서, 옳은 선택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좋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더욱 목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평가는 쉽게 바뀌지 않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윗사람도 아랫사람을 평가하지만, 아랫사람도 윗사람을 평가합니다.
윗사람은 멀리서도 누구에게나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의 장점을 쉽게 인정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단점 역시 쉽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바뀌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이 되기도 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가치 없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가치 있다고 믿어지기 시작하고, 그동안 가치 있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가치 없다고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믿으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 되고,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믿으면 정말로 가치 없는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의 가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모든 것의 가치는 영원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믿고 있는 가치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한번 윗사람이었다가 아랫사람이 된 사람은 계속 아랫사람이었던 사람보다 더욱 큰 절망감을 느낍니다.
윗사람일 때는 그렇게 흔하던 선망하는 눈빛과 존경한다는 목소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습니다. 무시하는 눈빛과 조롱하는 목소리만이 보이고 들립니다.
"설마 너의 것은 절대로 대체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거야? 정말 안일하고 오만하구나! 너의 것은 이제 지루해. 너의 것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
생산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교환을 할 필요가 없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생산물을 만들어내야만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물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더 좋은 것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생산물을 만드는 데 노력과 시간, 자원을 집중합니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생산물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 자원의 양은 점점 늘어납니다. 그만큼을 쏟아부을 수 없는 사람은 경쟁에서 뒤처지고, 그만큼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만이 경쟁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쏟아부어도 늘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완벽한 생산물을 만들어낼 때까지,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을 계속해서 미루기도 합니다.
“난 아직 저울 위로 오를 준비가 되지 않았어.”
더 좋은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자서 노력과 시간, 자원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점차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가치 있는 생산물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만들어내는 것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 자원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생산물은 반드시 쏟아부은 것 그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기존에 가치 있다고 인정받았던 생산물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바꾸어 비슷한 생산물을 만들어냅니다. 이미 많은 생산물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존에 가치 있다고 인정받았던 생산물과 비슷한 생산물을 만들어내야 그것 역시 가치 있다고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굳이 기존의 것과 완전하게 다른 생산물을 만들어내어, 그것이 가치 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안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생산물의 수준은 점점 비슷하게 조금씩 발전하지만, 더 이상 이전에 없던 완전한 새로움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허상
어떤 사람들은 윗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계속해서 윗사람으로 남아있기 위해서, 노력과 시간, 자원을 쏟아부어 아주 큰 ‘가짜 마음’을 가진 ‘가짜 사람’을 만들고, 그것을 저울 위에 올립니다.
‘가짜 사람’을 올린 쪽의 저울은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반대쪽의 저울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가짜 사람’의 ‘가짜 마음’이 ‘진짜 사람’의 ‘진짜 마음’이라고 믿으며, 반대쪽 저울에 올라간 사람이 가진 것이 진짜로 큰 가치가 있다고 믿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은 또 다른 사람의 믿음을 만들어내고, 믿음은 점차 널리 퍼져서 다수가 믿는 가치가 곧 진짜 가치가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이 믿는 가치에 더욱더 열광하기만 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짜 마음’을 가진 ‘가짜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가짜’를 이용하는 사람과는 더 이상 교환을 하고 싶지 않아. 이런 사람과 계속 교환을 해주다가는 앞으로도 비슷한 방법으로 가치를 속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될 거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짜 마음’을 가진 ‘가짜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되고 나서도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계속해서 믿습니다.
“처음에는 ‘가짜’를 이용해 주목받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에게 ‘진짜’ 가치가 있으니까 여전히 인정받고 있는 것 아닐까? ‘가짜’를 이용한 사람과 교환을 할지 말지는 각자의 마음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야.”
사람들은 이제 ‘가짜 사람’을 이용해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진짜 사람'만으로 만들어낸 가치는 저울을 충분히 높은 곳으로 올려주지 못합니다.
'진짜 사람'과 '가짜 사람', '진짜 마음'과 '가짜 마음'이 섞이면서 서로를 구분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관계
매번 ‘진짜’ 가치 있는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내어 교환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만드는 생산물은 정말 가치 있는 것일까?”
“저 사람은 정말 믿고 교환을 할 만한 사람일까?”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찾아내려다가 잘못된 판단으로 손해만 보는 교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로 기존에 알고 있던 믿을 만한 사람과 교환을 합니다.
자주 교환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믿기 때문에 서로가 소개해주는 다른 사람과도 믿고 교환을 할 수 있습니다. 자주 교환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무리를 형성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은 그들과 교환을 하기 위해 저울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조차 얻기 힘듭니다.
무리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히 무리 안에서도 윗사람으로 분류되는 사람에게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합니다. 윗사람에게 나쁜 평가를 받게 되면 무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영영 교환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넌 나한테 잘 보여야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는 너랑 절대 교환해주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내 무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절대 너와 교환해주지 말라고 할 거니까. 그 사람들이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과도 앞으로 교환해주지 않겠다고 할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이미 무리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윗사람에게 나쁜 평가를 받게 될까 봐, 그래서 무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더 이상 교환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해하며 그저 윗사람의 말을 따를 뿐입니다.
무질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저울 위에 올라가 그 사람과 교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정해진 규칙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힘으로 빼앗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규칙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규칙을 어기면 더 이상 누구도 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앞으로 절대 그 사람과 교환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힘으로 모든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결국 누군가와는 최소한의 교환을 해야만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규칙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절대 규칙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랫사람에게 마음껏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넌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넌 어차피 나한테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빌 거잖아. 내 것을 갖지 못해서 아쉬운 건 너니까.”
하지만 미래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사람은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과 교환할 수 있는 무엇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미래의 삶보다는 당장의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힘으로 빼앗기도 합니다.
“앞으로 나와 교환을 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지금도 가진 것이 없어서 교환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난 원래부터 잃을 것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게 없어.”
다른 사람의 것을 힘으로 빼앗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빼앗기는 사람은 대부분 윗사람이 아닙니다. 윗사람은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저울 위로 올라가 높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불안에 떠는 것은 항상 아랫사람의 몫입니다.
무욕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이 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저울 위로 올라가는 횟수를 점점 줄여 나갑니다.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물을 얻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저울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어차피 노력해 봤자 나는 윗사람이 될 수 없어.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억지로 빼앗을 힘도 없고, 그렇게 피곤한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아.
더 이상 무리해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무리해서 윗사람이 되려고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저울 위에 올라가서 윗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쓰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저울 위에 올라가서 스스로 아랫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어떤 사람들은 저울 위에 오르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걱정합니다.
“그래도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교환은 해야지. 괜한 자존심 부리지 말고 어서 저울 위로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빌어 봐. 그러면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가치 없는 것들뿐이더라도, 동정을 받아서라도 무언가 조금은 얻어낼 수 있을 테니까. 네가 아예 저울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너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작은 가능성마저 완전히 잃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그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래, 최소한의 교환도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살아갈 수 없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죽음이 두려운 마음보다 더 이상 아랫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상관없어. 다른 사람과 교환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아랫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윗사람도 더 이상 윗사람으로 남아있기가 어려워집니다.
누군가를 윗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랫사람의 마음입니다.
아랫사람이 더 이상 아랫사람이 아니게 되면 윗사람도 더 이상 윗사람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균형
저울 위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 윗사람이었던 사람이 가진 것의 가치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낮게 평가받게 되고, 윗사람이었던 사람이 더 교환을 하고 싶어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다시 저울 위에 올라가 교환을 통해 그것을 얻어냅니다. 예전이라면 얻어내기 어려웠던 것도, 윗사람이었던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면서 쉽게 얻어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저울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결국 다른 누군가가 저울 위에 올라가 균형을 맞춥니다.
나중에라도 ‘진짜’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이 믿을만한 것에 대해서는, 결국 누군가가 찾아내어 그것을 얻기 위해 저울 위에 올라갑니다.
그것이 윗사람이었던 사람의 것이든, 아니면 아랫사람이었던 사람의 것이든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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