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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던 Jun 13. 2022

마치 투쟁의 삶을 살 듯

나를 잃지 않고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정말로 묻고 싶습니다. 
나를 잃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어제만 해도 말입니다, 꼭 투쟁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회사 대빵에게 앞 뒤 없는 개소리를 들은 것에 대해 꼭 사과를 받아야지 하고 말이죠. 대략 일주일이 지난 일인데도 부정의 감정이 남아 계속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으니 물러서지 말아야지 그랬는데, 저는 보란 듯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말리는 것도 아닌데 저 혼자 신나게 백스텝을 밟았어요. 아니, 사실 말리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사과를 받기 위한 정식 절차에 대한 안내를 받았을 뿐인데 저는 왜 뒷걸음질을 쳤을까요?


상처 난 마음을 메꾸기 위해 필요한 건 진심 어린 사과였어요. 그거면 되겠다. 회사 대빵을 엿 먹일 생각도 뭘 더 어떻게 해 볼 마음도 없었어요. 허드레 같은 이런 일이 아니어도 저는 너무 바쁘니까요. 그런데 그 사과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청과 시장에 가서 홍옥을 사다 달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저 상황을 듣고 '미안하다, 사과한다.' 글 한 줄 써달라는데 거쳐야 하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지나가는 한 마디가 될 구두 사과는 싫었어요. 스치듯 미안, 이것도 싫고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이 오만하게 사과받는 사람을 방으로 불러 인심 쓰듯 내뱉을 그 사과도 싫을게 뻔해서 서면 사과를 요청한 것뿐인데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하고, 그러면 담당 부서가 외부 조직과 공식 조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대빵과 관련 인물을 모두 인터뷰하고 '이것이 진짜 잘못이다.'라고 해야 서면 사과가 게재될 수 있대요. 마음이 다친 건 저인데 왜 그걸 타인이 판가름해야 하는 걸까요?


못난 저는 한 걸음 물러섰어요. 공식적인 사과 외엔 뭐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담당 팀장이 상황을 대빵에게 인지시키고 사과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 정도더라고요. 그 와중에 저의 익명은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고요.


두렵냐고요? 아뇨. 네, 어쩌면. 


누군지 특정되는 상황은 조금 두려울지도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이 두려움보다 나름 꽤 오래 근속한 이 회사가, 회사에 기여함이 분명한 직원을 위해 '익명'이라는 보호 장치 마저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절 눈물 나게 했어요. 이렇게 또 무력해지는구나. 그 무력함에 눈물샘이 열려서 누가 앞에 있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흑흑 울어버렸어요. 엉엉 울지 않은 게 그나마 위안거리겠죠. 아, 정말 많이 상처받았구나.라는 말에 저는 제 양손을 서로 꽉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 순간 저는 제가 혼자 이 상황을 감당해야 함을 깨달았거든요. 의지할 사람도 나, 공감할 사람도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도 '혹시나' 했던 제 기대가 무너지고 그 자리엔 의미 없는 무력감만이 그득 채워졌어요.


개인적인 사과는 필요 없다고 했어요. 진심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사과, 어떤 태도와 어떤 마음으로 툭 던져놓을지 뻔히 보이는 사람의 구두 사과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요. 그러니 나의 팀장인 당신도 애쓰지 말라고. 참 어렵네요. 사과 하나 받는 게. 저도 사람이라 마음이 상한 것에 대해 사과받고 싶을 뿐인데 저는 직원이고 대빵은 대표라서, 그래서 참 어렵고 힘드네요. 그러더니 또 눈물이 났어요. 저는 이렇게 불편한데 옆 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대빵이 생각나서요. 눈물을 줄줄 흘리다 보니 조용히 넘어갈 순 없겠더라고요.


말해주세요. 상황을 꼭 인지시켜주세요. 저한테 사과 안 해도 되고 그런 사과 필요 없어요. 그냥 잘못을 한 거라고 말해주세요. 그러다가 제 익명을 지키지 못하시면 그것도 괜찮아요. 없는 일처럼 넘어가지는 못하겠어요.


제가 오늘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걸까요? 아직도 속이 울렁울렁하는 걸 보면 저는 저를 지키지 못한 것 같죠?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제 자신을 지키는 일이 왜 이리 특별한 투쟁 같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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