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대해서

프롤로그

by 오연서

남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혼자 끄적이는 문장들은 있었지만 시간을 들여 진득하게 생각하며 써 본 적은 없었다. 막상 쓰려고 하면 같은 생각에서 멈췄다. 남편은 누구보다 평범한 보통사람이고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도 없다. 지극히도 평범한 50대 가장.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누구나 자기만의 삶이 있고, 그 삶을 기록해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생각했다. 나의 사랑인 당신만을 위한 기록. 남편이라는 이유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가장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을 하나씩 천천히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남편 관찰!
이 말이 조금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진지하다. 나는 남편을 어느 만큼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항상 옆에 있어서 소중함을 모른다는 노래 가사가 있다. 내 인생 대부분에 그가 있다. 남편과 나는 여덟 살 차이, 함께한 시간은 어느덧 스무 해를 훌쩍 넘겼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기에 형제나 부모보다 더 애틋하다. 어쩌면 지독한 인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전생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연일까? 악연일까? 어떻게 한 번도 쉽게 가는 법이 없다.


남편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 참 얄궂다. pc통신을 허락해 준 엄마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
영화 <접속> 전도연과 한석규처럼 낭만적인 설정은 아니었지만 우리 역시 컴퓨터 속 대화 상대, 게임 파트너로 처음 인연이 시작되었다. 화면 너머의 사람을 실제로 만난다는 건 그 시절 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고, 조금 더 솔직해지면 당시 기댈 곳이 필요했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나는 또래보다 연상의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었다. 만약 다정한 부모와 완전히 화목한 집안에서 자랐다면 우리는 아마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삶은 언제나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택과 포기가 동시에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또래보다 조금 빨리 알았다. 그렇게 어른인 척하던 스무 살의 나와, 어른이지만 순수한 남편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안이었고, 나는 또래보다 빨리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둘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장난처럼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진지해졌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결혼이란 걸 한다면 저 애랑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넘기는 데 더 급급했다. 돌아보면 많이 어린 스무 살이었다.


결혼 18년 차. 울다가 웃다가 이게 행복이구나 싶다가도 다시 흔들리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비가 온 뒤 무지개가 뜨고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쌓였다. 아직도 콩깍지가 씌어 매번 설렌다고 말하는 남편, 볼록 나온 배를 보며 다이어트가 시급하다고 말하는 아내. 변한 몸처럼 마음도 변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마음만큼은 여전히 사랑을 시작하던 그때와 같다.


우리가 이렇게 깊고 진하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보면서 무엇을 했나 싶다. 내가 이렇게 한 사람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스럽다. 학창 시절 연애라고 말하기도 어설픈 감정들이 지나고, 처음 만난 남자와 결혼해 고3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남편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우리 가정을 위해 묵묵히 고군분투하는 사람, 너무 익숙해서 다 안다고 생각한 얼굴, 반복되는 하루 속에 숨어 있는 마음들. 이 글은 그 간 남편에 대해 쓰고 싶던 나의 첫 문장이다. 지금부터는 남편을 조금 더 자세히, 조금 더 깊이 바라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지만 나의 기록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