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없어도 너무 없다

by 오연서

봄맞이 대청소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주방과 연결된 세탁실 베란다만 물청소를 하는데 그것도 올해는 아직 하지 않았다. 겨우 내 닫아 두다 보니 까뭇까뭇 곰팡이가 올라왔다. 결로, 온도차가 심하다 보니 외벽인 우리 집은 베란다 1곳만 매해 곰팡이와 숨바꼭질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곧 해야겠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옷을 따로 정리할 일이 없어 몇 년을 그냥 지나쳤더니 이번에는 정리가 필요하겠다 싶어 옷장을 열었다. 다시 가벼운 옷장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아이들 방은 꾸준하게 비웠는데 나랑 남편의 옷장은 순위가 밀리고 아이들의 작아진 옷들이 브랜드라 아깝다는 미명아래 우리 옷장으로 옮겨져 총체적 난국이다.


사실 오늘 옷정리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모두 각자 자리를 찾아 간 빈집에서 강의안을 작성하고 원고를 써야지 했다. 잠옷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으면서 ‘그냥 오늘 하자’로 생각이 스쳤다. 이런 성격 탓에 수거업체 예약은 못하고 재활용 분리함에 부지런히 날랐다. 엘리베이터에 잠시 감사했다. 계단으로 움직였다면 제대로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번 오르내리고 힘들다로 상황을 종료시킬 수도 있다.


아이들 방에 개인 옷장이 있고 우리 부부방에 옷장 1개와 작은 드레스룸이 있다. 드레스룸이 없는 것보다 낫지만 너무 작다. 구색만 갖춘 것 같다.


다른 글에서 얘기했듯이 남편은 미니멀하다. 모든 짐이 트렁크 2개에 다 들어갈 정도다. 그의 낚시용품이 따로 있지만.. 남편은 패션에 관심이 별로 없다. 사주는 대로 입는 편인데 주로 검은색을 선호하고 착용감에 의미를 둔다. 그래도 연애 때는 꾸미지 않았지만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았다. 같은 디자인 같은 색의 티셔츠, 색만 다른 바지. 단출한 남편의 옷장에는 바지 12, 후드집업 2, 코트 1, 패딩 1, 반팔 8, 긴팔 5, 정장 2.


남편의 옷이 너무 없다. 추리고 보니 더 적다. 우리는 계절이 바뀌면 옷을 권하면서 본인은 그저 단출했다. 매일 같은 곳으로 출근이 아니라 괜찮다는 말에 내가 무신경했다 싶다. 밖에 잘 보일 사람 없다고 말하는데, 생각해 보면 본인이 브랜드고, 상품이고, 사업장인데.. 나한테만 잘 보이고 싶다는 우리 남편 어찌해야 할까? 아직 콩깎지가 씌었나 보다.


남편이 봄에 입을 바지와 티셔츠를 사야겠다. 참 나는 이미 오늘 봄점퍼와 바지를 샀다. 비웠으니 또 채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은 나를 더 신경을 써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개같이 벌어 올 테니 우리는 정승같이 쓰라는데 가장의 무게감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백화점에서 가격도 안 보고 본인 마음에 드는 옷을 사던 청년은 이제 아울렛에서도 본인 거보다 아이 물건을 찾는 모습에 이렇게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가는 건가 싶다.


자기도 좀 챙겨!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나는 더하다. 남편을 챙기기보다 내가 낳은 아이들에게 먼저 눈이 간다.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네 식구 모두를 꾸미기에는 현실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생긴다.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뒤로 밀린 사람’이 되었을까.


남편 옷장에 옷이 너무 없어서 슬펐다. 달리 보면 자기만의 기준이 확실한 미니멀리스트 같기도 하고.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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