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를 쓴 지 1년이 지났다.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과 기준이 생기려면 1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한 것 같다. 사계절을 다 겪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의 시간에 온전히 녹여낸다면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히 흔들리지 않고 열매를 맺어 새로운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의 시간은 나만의 삶의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주 작은 습관은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이 삶의 방향성을 좌우한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다. 감사일기를 쓰는 데에 엄청난 시간을 들인 것도 아니었고, 매 순간마다 심혈을 기울여하지도 않았다. 다만 일어나자마자 하루의 첫 행위를 감사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했고 그 시간도 5-10분 내외로 짧은 시간이었다. 어쩔 때는 감사할 것이 찾아지지 않아 몇 분이고 더 걸린 적도 있었고, 쉬어가는 날도 있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보다 며칠을 쉬어가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5분이라는 시간이 약 300일이면 15,000분이고 약 25시간이다. 25시간 동안 내내 감사할 것을 찾으라 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안다. 번외로 그렇게 해서 나는 1년에 3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감사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참 아프고 먹먹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모두가 충격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절망과 슬픔, 그리고 트라우마를 안겨준 이태원참사 사고. 그 당시 나도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생생히 기억하고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할로윈에 진심인 외국인 친구들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약속을 잡고 이태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늦게 이태원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이 바로 사고가 난 직후였다. 처음에 나는 퍼포먼스를 하는 줄 알았다. 다들 코스프레를 하고 정신없는 음악과 함께 웃음과 울음과 비명이 난무했고 난생처음 보는 굉장히 기괴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응급차가 한두 대에서 수십대로 늘어나고 도로에 점점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게 되었다. 도로통제와 이동통제로 인해 꼼짝없이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나와 같은 또래들이고 젊은 친구들이었기에 인생이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졌다.
몇 날 며칠을 놀란 마음과 충격과 슬픔과 허망함을 달래며 황당무계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은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내가 숨 쉬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온전한 몸으로 어디 성한데 없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 일 없이 눈을 뜨고 새 아침을 맞이하고, 보내고 있는 오늘 하루가 정말 소중한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감사하지 않은 일들이 없었다. 감사일기를 막연히 써봐야지 생각을 하며 미루고 있었는데 이태원 사고로 인해 바로 감사일기를 실행에 옮겼다.
감사일기에 관련된 책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서 아무것도 없는 공책보다는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책을 사면 좋을 것 같아 서점에 들러 감사일기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았다. 주로 기독교책들이 있는 곳에 감사일기가 있었고 종류도 참 다양했다. 무엇이 좋을까 하나씩 보던 중에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이 만드신 감사일기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분당 우리 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 153 감사노트‘이다. 내가 좋아하고 종종 설교를 찾아 듣던 목사님의 감사일기라 더 친숙하게 다가왔고, 왠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표지에는 ‘내 삶에 넘치는 하나님의 선물, 100일간의 감사기록’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말씀이나 감사에 대한 명언, 목사님이 직접 쓰신 감사에 대한 철학들이 쓰여 있고, 5가지 감사한 것들을 쓰도록 되어있다.
처음 쓸 때는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도 강제로 억지로라도 찾아서 5가지를 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도 매일매일 감사한 것들을 찾는 게 사실 쉽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깨지고, 억울한 일도 당하고,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힘든 일도 있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회의감과 오고 가는 실망과 상처들 사이에서 감사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나 몸이 아프고 삶의 질이 뚝뚝 떨어질 때면 더더욱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일기를 쓰기로 나와 약속했으니 감사일기를 펴놓고 내 안의 온갖 감정들과 마주하고 싸우며 힘겹게 쥐어짜듯 감사한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목사님도 감사는 훈련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감사는 의도적인 훈련과 연습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별일이 없고 무탈할 때는 감사일기가 잘 써지기도 했지만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도록 감사일기가 큰 힘이 되었다.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보니 감사일기의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루어진 것처럼 미리 감사일기를 쓰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자격증을 아직 따진 않았지만 이미 딴 것처럼 감사했다. 그리고 거의 첫 문장은 ‘오늘도 새 하루를,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시작한다.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음에 감사했고, 힘겨울 때는 힘든 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했고, 편안히 쉬고 잠들 수 있는 집에 감사했고, 온전한 몸으로 건강을 주셔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감사할 것들을 찾아보면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정말 힘겨운 상황에서도 감사함을 찾고,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어느 순간에도 먼저 좋은 점을 찾고 배울 점을 찾고 감사한 점을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되었고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진심으로 더 맞이하게 되었다. 아직도 쉽지 않은 순간들도 문득문득 있다. 그래도 상황에 대해 감사할지 불평할지는 내 마음에 달려있고 내가 감사를 선택했을 때 얼마나 삶이 아름다운지, 소중한지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사로 채워간다면 나는 참 삶의 선물이 가득한 복 받은 삶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삶에 대한 태도들이 바뀌면서 삶에 소중한 것들을 정말 많이 얻었고, 살아갈 힘을 많이 얻어서 이 좋은 것들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선물해 주기도 했다. 정말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값어치 있는 선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것들을 많이 깨닫고 충분히 만끽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제 부족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