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요가, 1년의 시간

—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법을 배웠다 (with 함께요가)

by 황수민

번외편. 요가, 1년의 시간

—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법을 배웠다


1) 처음, 음악에서 시작 - 플로우(인사이드)

처음 요가 매트 위에 섰을 때 이상하게도 동작보다 음악이 먼저 마음을 데려갔다. 그루브한 팝이 흐르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박자를 잡아주고, 나는 그 리듬을 따라 몸을 살짝씩 열었다. 유연성은 거의 없었고 따라가기도 벅찼지만 “이 수업, 내 취향이야” 하는 확신이 먼저 왔다. 그 직감 하나로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요가수업을 예약헸다.


2) 내 몸의 지도 그리기 - 하타(베이직), 테라피

하타 베이직에서 엉덩방아를 찍던 날, 민망함보다 먼저 든 감정은 ‘아, 내 몸이 이렇게 굳어 있었구나’였다. 왼쪽 발목은 오래전부터 약했고, 골반은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햄스트링은 유난히 짧았다. 테라피 상체에서는 이솝 오일 향을 맡으며 굳은 어깨를 천천히 풀었고, 플로우에서는 호흡을 놓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수업 사이사이 1:1 교정에서 “여긴 조금만 더 뒤로, 시선 고정” 같은 말이 몸의 길을 밝혀주었고, 미세한 1~2cm의 차이가 자세 전체를 바꾼다는 걸, 그 작은 차이가 결국 하루의 느낌까지 달라지게 한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다.


3) 태양의 경배 54배, 조용한 금요일 - 스페셜클래스

특강으로 태양의 경배 54배를 했다. 중간쯤 ‘왜 아직 반밖에…’ 싶었는데, 선생님의 호흡 큐에 맞춰 한 세트씩 지나가다 보니 어느새 완주였다. 땀은 바닥으로 쏟아졌고, 잡념은 함께 내려앉았다. 예전엔 시끌벅적한 금요일 밤이 좋았다면,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밤이 더 충만했다. 다음 이틀을 근육통으로 보냈다는 건, 덤처럼 따라온 뿌듯함이었다.


4) 거꾸로 선 마음, 시르사아사나 - 하타(집중)

머리서기는 한동안 벽과 선생님의 손이 전부였다. 정수리의 각도 1센티, 아니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로 중심이 흐트러졌고, 공포가 무릎을 굳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속에서 ‘그냥 올라가는’ 내 몸을 봤다. 다리는 아직 완전히 펴지지 않았지만 발끝이 하늘을 기억했고,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어도 공포를 통과하는 호흡을 배웠다. 선생님이 “콩나물처럼 자란다”고 장난치듯 말해줬을 때, 천천히라도 자라나는 시간들이 확실히 보였다.


5) 플라잉이 알려준 용기 - 플라잉(A)

해먹이 아프고 민망해서 멀리하던 플라잉은 어느 순간 두려움에서 자유로움으로 바뀌었다. 힘을 줄 때와 뺄 때의 미세한 타이밍을 맞추면, 몸의 무게중심이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가장 무서웠던 몽키 자세가 가장 기다려지는 자세로 바뀐 것도 그때쯤이었다. 공중에서 배우는 건 결국 땅을 딛는 법이었다. 두려움에 눌리기보다, 가볍게 지나가는 법.


6) 테라피의 정직함 - 테라피

테라피 하체는 잔인할 만큼 정직했다. 짧은 햄스트링, 타이트한 골반, 오래된 습관이 만든 긴장. 선생님의 손이 다리를 조금 더 아래로 데려갈 때마다 비명이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복부 깊숙이 들숨을 보내면 통증은 묵직한 감각으로 바뀌었고, 수업 뒤 집으로 걸어갈 때 골반 안쪽의 딱딱한 돌이 조각조각 부서진 듯 가벼워졌다. 아픈 만큼 시원하다는 말이 내 몸에서 처음으로 사실이 되었다.


7) 백 번째 수업, 느리게 자라는 나

유연성은 ‘엄청’ 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 대신 나는 중심을 얻었다. 시선을 잃지 않는 법, 호흡으로 리듬을 되찾는 법, 안 되는 자세 앞에서 좌절만 하지 않고 그 자세로 향하는 여정을 좋아하는 마음. 회사의 긴장과 일상속의 걱정이 몸에 남긴 흔적을 확인하고 풀어낼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다정한 기준을 내 안에 두게 됐다는 것. 꾸준함은 완벽에 머무는 힘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마음이라는 걸 이때 분명히 알았다.


8) 오늘도, 매트를 편다

나는 아직도 나비자세에서 다리가 화분자세처럼 들리고, 말머리자세에서 발목이 비명을 지르고, 에카 파다 갈라바사나에서는 골반이 고집을 부리고, 시르사아사나에서는 아직 벽이 필요하다. 그래도 매트로 돌아온다. 생각이 많을 땐 매트 위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를 땐 매트 위로, 마음이 복잡할 땐 매트 위로. 그러다 보면 복잡함은 숨과 함께 정리되고, 몸은 제자리를 찾고, 나는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유연함은 근육의 성질이기도 하지만 태도의 성질이기도 하다는 걸, 작은 1밀리가 쌓여 어느 날 문득 ‘그냥 된다’는 순간을 만든다는 걸, 요가 1년이 내게 가르쳐줬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기 때문에,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나는 내일도 매트를 펼 것이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함께요가의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첫 요가의 낮섦을 설렘으로 바꿔주셔서,

생애 첫 요가수련 1년의 시간동안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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