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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msikY Mar 08. 2021

나는 오늘도 밥상으로 퇴근합니다

공허한 당신의 퇴근길을 재촉하는 행복한 한끼

시간은 이미 지났다.


대한민국이 법으로 지정하고 내가 계약서에 싸인했던 법정 근로 시간 '9시간'은 살같이 빠르게 지나가 버렸고, 나를 조금 더 회사에 붙들어 놓고자 한줄로 덧붙여 놓은 '주당 야근 시간'마저 지나 법적으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아직도 이곳에 붙잡혀 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다.


90년대생이 온다고 했던가? 엊그제 입사한 것 같은 막내는 출근한지 1달만에 퇴근 시간을 알리는 저녁 수탉이 되어 퇴근시간만 되면 '탁'하는 노트북 덮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고, 오늘도 정확한 시간에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 남기고 시원하게 뒤돌아 나선지 오래였다. 하지만, 내일 모레 '40을 바라보는 나이'와 과장과 차장의 중간에 걸쳐진 '애매한 직급'을 가지고 있는 우리네 몇몇은 가장이라는 무게에 눌려 윗분들의 눈치만 보며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의 월급을 시급으로 계산해본 적이 있냐고. 그 얘기를 듣고 궁금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진지하게 고려하든, 호기심이든, 장난이든, 웃어넘길 가벼운 토픽으로 치부하든 직장생활이 내 삶의 전부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정진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 회사에 바치는 시간만큼 회사도 나를 생각해 주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고 셈 해보고 싶었을 거다.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었다. 회사에 대한 믿음인지 아니면 비참해질 나에 대한 방어를 위함인지, 궁금해 하는 마음을 별 것 아닌 것에 굳이 신경쓸 필요 있냐고 생각하며 발 아래로 저만치 밀어내 버렸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은 잊으려 하면 할 수록 더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떠나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주위를 멤돌던 호기심은 결국 이 야심한 밤 숨막히게 한적한 사무실 한켠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들었다.

'이게 뭐지'

나는 분명히 효율적으로 일을 했다고 생각했고 주변의 나쁘지 않은 평판 덕분에 지금의 직급까지 누락없이 승진을 해왔었다. 그리고 사람은 큰 물에서 놀어야 한다 생각하여 한창 커나가는 시장의 메기인 지금 회사에 이직까지 하며 안정적이고 탄탄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시급이 이거라고?'


고향의 친구들에게 내 연봉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나 연봉 얘기가 나오면 친구들은 나보고 '곧 부자되겠네'라며 부러움과 시샘을 보냈었고, 한껏 들뜬 나 또한 정말 내가 잘 살게 될 줄 알고 겁없이 술값을 턱턱 내고 올라오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사진출처 : urbanbrush.net

중요한 것은 통장에 찍힌 숫자가 아닌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그 땐 몰랐다


지금의 시간이 더욱 그렇다. 나에게 오늘의 저녁은 하얀 사무실에 우두커니 남아 떠나지 못하는 몸과 가고 싶은 마음이 분리된 채 흘러만 가고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집과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하며 일찍 집에 도착해 아내가 해준 따끈한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따뜻하고 값진 시간일 것이다. 또, 커가는 아이들의 재롱과 투정을 보며 희노애락을 느끼겠지? 그러면서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가족을 그리워 하는 마음보다 더욱 강하게 사무실에 붙잡혀 있는 이 시간에 말이다.


기분이 우울해졌다. 나는 매월 친구들보다 얼마를 더 손에 쥐었지만, 그 얼마는 은행과 카드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팔려나가 내것이 아닌 것들이 되어 버렸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나의 사랑하는 아내는 나와 멀어진 시간만큼 기약없는 모래시계처럼 애정을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쪽은 쌓이는 부채가, 그 반대편 끝은 깎여나가는 애정을 붙들고 있는 아내가 서있는 지렛대. 그 가운데에 내 것이라고는 내 몸뚱아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내가 서 있을 뿐이었다.


'나가자'


출근하고 여지껏 용기 없던 내 마음 속에서 처음 용기 있는 얘기가 나왔다. 최저 시급은 아니지만 애매한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계산기를 앞에 두니 나도 모를 용기가 샘솟았고, 그 길로 부리나케 회사를 뛰쳐 나왔다


사진출처 getty image

차가운 밤 공기, 여느때같으면 지하철 역으로 부리나케 가느라 맡지 못했을 차갑지만 시원하고 매큼한 밤공기가 나의 코를 간지럽혔다. 기분이 좋았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인가. 수능? 입사 후? 결혼식이 끝난 후? 언젠가는 느껴봤을 해방감이지만 너무 오랜만에 느낀 탓에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이런 좋은 기분도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저녁을 거른 나의 위가 치열하게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꼬르륵...꼬릉!


다행히도 사무실 근처는 먹을 거리가 많아서 먹고 싶은 메뉴는 뭐든지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혼자 밥을 먹긴 하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난 혼자서도 시크하고 정갈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을 담대함은 이미 내장된 상태였다. 뭘 먹을까? 늦은 시간이니까 너무 부담되지는 않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배가 덜 차면 새벽에 배가 고파서 잠을 제대로 못 이루겠지? 그러면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생기니까 안돼 안돼.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고추가루 팍 넣은 칼칼한 우동에 소주 한잔 곁들여도 좋은데 매운 걸 먹으면 위가 놀래서 고생할 수도 있으니 그것도 좀 그렇네? 대체 뭘 먹지? 스타일리스트만 있는게 아니라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있어서 이럴 때마다 나의 먹고민을 해결해 주면 정말 좋겠다 정말!


간단한 것도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나의 재주 덕분에 오도가도 못하고 한 10분은 서 있던 것 같았다. 이런 바보! 넌 정말 우유 부단의 극치야! 그 순간 나의 자책을 천사가 들었던 걸까? 갑작스러운 응답이 왔다


'여보 아직 퇴근 안했어?'


사랑하는 나의 아내다.


'응, 퇴근은 했는데 배가 출출해서 뭘 좀 먹고 갈까 생각하고 있었어'

'밤도 늦었는데 뭐하러 피곤하게 밖에서 먹으려고 그래. 어여 들어와. 집에 냉동 만두가 있는데 만두 구워줄께. 그거 알지? 일식집에 가면 밑에는 노릇하고 위에는 촉촉~한 '겉바속촉'의 만두 있잖아. 그거 무지 간단하더라고. 기름 두르고 만두 올리고 물 120ml 정도 붓고 뚜껑 덮은 다음에 중불로 10분이면 돼. 내가 그거 해줄께 어서 들어와'


아내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눈 앞에 노릇한 만두가 구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목이 칼칼해졌다.


'오 생각 없었는데 그거 맛있겠다. 맥주 하나 사서 들어갈께 같이 맥주한잔 하자!'


전화를 끊고 나니 하루의 피곤이 이미 해소된 기분이었다. 메뉴를 떠나 늦은 시간에도 나를 생각하고 무엇인가 해주려고 하는 아내의 배려가 고마웠다. 냉동 만두처럼 식은 줄만 알았던 사랑이었는데, 뜨거운 기름에서 타닥타닥 튀겨져 가는 만두 만큼 아직 뜨거운 사랑이었나 보다. 바보같은 사람. 당신 마음도 몰라주고 말이야.


아무 것도 없는 것만 같던 공허함이 사라지고 조금의 행복이 찾아왔다.


고마워 당신! 곧 갈께.

당신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나는 오늘도 힘이 난다.


나는 오늘도 '애정이 가득한' 밥상으로 퇴근한다!





늦은 저녁 출출함을 어떻게 달래시나요?

저는 배부르게 자는 것도 싫고, 무엇인가 만드는 것도 귀찮아서 만두를 주로 구워 먹어요

기름 두른 팬에 냉동만두를 올리고, 물을 120ml정도 넣은 뒤 뚜겅을 덮고 중불에 약 10분 정도면 밑은 노릇하고 위는 촉촉한 만두가 완성이 되거든요.

부담도 덜하고 번거롭지도 않은 만두와 함께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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