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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msikY Jun 05. 2021

딩동! 0.5파운드가 도착하였습니다

재택과 배달, 그리고 무거운 변화

"딩동! 주문하신 음식이 도착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이제 그만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고마운 분은 오늘도 여지없이 우리집 벨만 딩동 누르고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문 앞에 배달된 따끈한 음식 봉투 뿐!


하루의 절반을 차지했던 회사가 집으로 들어온 이후 사회생활은 단절되었다. 하루에 몇 시간 있는 화상회의 외에는 간접적으로라도 사람과 교류할 일이 없게 되었고, 단절된 사회 생활로 인해 타인을 만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씻기를 멈추었다. 외출을 위해 당연히 여겨지던 깨끗함이 외출을 못 함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필요는 씻지 않음으로 이어졌고, 떡진 머리에 눈꼽만 뗀체 출근을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편했고, 화상으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내 진취를 느끼지 못해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변화를 성공한 후 치장을 포기했다. 매번 동일한 옷으로 프리젠테이션 하던 스티브 잡스를 동경하듯 매일 같은 옷을 입어 본 것이다. 어제 벗어 놓은 반바지와 반팔은 오늘의 출근 룩이 되었고, 덕분에 만나는 사람과 성격에 따라 옷 색깔이나 캐릭터를 정하느라 옷장을 서성이던 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이 되었다. 단축된 시간은 아침 산책이나 명상 등 나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였다. 아침을 나에게만 집중함으로 인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치열한 업무 시간에는 오롯이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점의 쉼표 같은 시간.


바쁘게 이어지던 문장 속 쉼표처럼, 바쁘게 연속되던 직장생활 중에 얻게 된 재택은 나에게 휴식과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고, 나는 그 휴식에 빠르게 익숙해져버렸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도 익숙해지지 않은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매일 찾아오는 12시의 고민! '뭐먹지?'였다.


사진출처 rawpixel

사실 재택 근무를 시작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점심식사였다. 보통 출근을 하면 점심때마다 '뭐먹지?'라고 고민하다가 그 날에 목소리가 가장 큰 사람이 외친 메뉴를 따라 우루루 이동하면서 한끼가 해결되었다. 그래서 입맛 없던 시간도 흘러가기 나름이었는데, 정해주는 사람 없이 매일같이 같은 고민을 혼자하려니 이것도 꽤나 고역이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 있으니 집밥을 먹어보자 해서 요리를 해봤다. 간단한 김치찌개부터 미역국, 두부 조림 등을 해서 먹었는데, 건강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몇가지 할 수 없는 레시피에 같은 메뉴를 반복하다 보니 금방 입에 물렸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요리/식사/설겆이까지 하려니 밥 먹는 것마저 일이 되는 것 같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름 정도를 고생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한 끝에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딱한번, 그 새로운 맛에 빠진 이후로 그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집 배달'


사진출처 Phoebe's cafe

최근 핫한 배달앱을 열어 처음 주문한 것은 매운 짬뽕이었다. 보통의 배달처럼 적당히 식어서 올 음식을 생각했는데, '이게 왠걸?'. 기술의 발전이 내 앞에 뜨거운 짬뽕을 가져다 준게 아닌가? 홍합과 주꾸미, 그리고 새우가 뜨거운 김을 펄펄 내뱉고 있는 따끈한 국물. 그 국물 아래 수줍게 자리 하던 면을 한접시 집어 삼키는데, 따뜻하고 매콤한 그 맛이 너무 맛있었고, 그동안 밥 먹느라 고생한 내가 떠올라 목구멍 한올한올 짬뽕의 맛을 새기며 서서히 넘겼다. 그렇게 설겆이 걱정 없이 따끈하고 맛있는 한끼를 해결한 이후, 점심시간만 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움켜쥐고는 음식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빠져든 배달의 세계는 놀라웠다. 지구상의 모든 음식이 담겨 있는 듯 없는 메뉴를 찾을 수 없었고, 줄 서서 먹던 맛집이나 디저트까지도 손가락질 몇 번이면 배달이 완료 되었다. 그리고 매장에서 먹는 듯한 이 뜨끈한 퀄리티라니! 물론 배달비가 붙기는 했지만, 워낙 올라버린 물가 때문인지 직장인 한끼 가격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게 생각되지도 않았고, 주기적인 할인행사까지 더해 모든 것이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한식, 중식, 일식, 도너츠 등등 하루하루 큰 고민 없이 눌러댄 덕분에 재택 3개월 동안 배달 어플은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어플 순위에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무섭게 올라온 어플 사용량만큼 무섭게 올라오는 것 한가지가 더 있었는데,


'앞자리가 바뀌었네?'


어느 날 아침 '실수로' 체중계에 올라간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재택과 배달을 반복하며, 기본적인 움직임조차 꺼려했었기에 어느 정도 체중이 늘어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앞자리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분명 재택을 시작할 때는 00kg 초반을 가리키던 체중계가 불과 3개월 만에 앞자리를 훌렁 바꾼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티셔츠를 살짝 걷어 배를 쳐다 보았다. 둥글둥글 찹쌀떡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탄력없이 흐물대는 녀석을 보니 '내가 너무 놀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꽤 오랜기간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관리해 온 몸이었는데, 3개월을 못 버티다니! 문득, 신기루 같은 근육 ‘녀석들’이 원망스러웠다.


미국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 1일간 0.5파운드(0.2kg)씩 체중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난 3개월이니까 1.8kg가 쪄야 되는 건데 그보다 몇 배는 더 쪄버린 지금. 나약한 결심만큼 나약한 몸을 보며 남은 재택은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잠도 좀 줄여보고, 그 시간을 이용해 다시 산책과 운동을 하며 건강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 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먹는 습관도 바꿔야겠지. 재택의 기간만큼 늘어진 살들을 다시 주워 담는 것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더 늦기 전에 오늘부터 시작해야겠다.


"딩동!"


"주문하신 '샐러드'가 도착했습니다"




관련 기사 출처 : 테크니들 "코로나 1년, 미국인의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을까"

https://techneedle.com/archives/4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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