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집은 매주 가족회의를 했었다.
회사에서 일을 잘해서 승진한 엄마는 회사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수직적인 회의를 하고 싶어 했다.
엄마의 요구로 하게 된 것이지만, 엄마는 늘 우리 가족이 모두 원해서 하는 회의라고 했다. 회의는 "이번 주 가족회의를 진행하자!"라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소집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가족회의를 시작한 이후 몇 주간은 가족들이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미리 거실에 나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 달이 넘어갈 무렵엔 남편과 두 딸 모두 소리를 질러야 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족 간의 회의 라기보다는, '나르 엄마 혼자만의 불안 토하기', '남편과 딸들에게 비난 섞인 잔소리하기', '너의생각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엄마의 이름으로 명령하기' 정도의 것이었다.
엄마는 한주 동안 가족들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보는 것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나와 언니가 웅얼거리며 일상에 대해 말하면 엄마는
"당신은 이런 것도 몰랐지?" 라며 남편에게 핀잔을 주다가, 결국 소리를 지르며 당신이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는 게 도대체 뭐냐고 짜증을 냈다.
아빠가 엄마의 지랄을 잘 참는 경우, 불편한 분위기로 가족회의가 끝났고 그렇지 못할 경우 대체로 가족회의는 아빠를 제외한 가족들끼리 마무리 지었었다.
아빠가 있던 없던, 가족회의는 엄마 혼자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늘 이 회의라는 빌어먹을 것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실에 둥글게 둘러앉아 회의를 하던 어느 날, 아빠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
조용해진 틈을 타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시도했지만, 엄마가 소리를 지르는 탓에 타이밍을 놓쳤다.
자신의 말을 끊은 것이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아빠를 째려보며 엄마는 말했다.
"이걸 왜 하냐니?? 이거가 뭘 말하는 건데? 회의? 얘기? 아니면 애들 학원 얘기 하지 말라는 거야?"
일그러진 표정으로 급발진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빠가 말했다.
"정말 의논할 게 있을 때 모여서 얘기하지, 왜 매주 앉아서 회의를 해야 하냐고. 어차피 당신 말고는 다들 할 말도 없어."
어이없다는 듯이 엄마는 아빠를 향해 '당신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대화가 부족한 거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거‘라고 말했다.
"모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야지! 의논하자는 거잖아!"
"맨날 지 맘대로 할 거면서 뭔 회의고 의논이야. 에이씨. 나 이제 이 짓거리 안 하련다! 할 거면 애들 데리고 너 혼자 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왜 매번 이런 식이야! 왜 맨날 당신 기분대로 해!"
정적 속에 몇 분을 앉아 있다가, 엄마가 말했다.
"너희 아빠는 자기감정이랑 기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야. 정말 뭘 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다 너희를 위해서 엄마가 이렇게 가족회의도 하자는 건데."
"엄마, 근데 나 화장실 다녀올게요."
참다못한 나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가족회의에서 한번 말을 시작하면 도통 끝내는 법이 없었고, 자신의 말을 끊을 경우 매우 불쾌해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건,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분노했다) 기회가 생겼을 때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미리미리 회의 시작 전에 다녀왔어야지! 너 학교에서도 수업 중에 나가고 그러니? 응? 너 그러는 거 다 엄마 아빠 욕먹이는 거야! 화장실 같은 건 중요한 일 앞두고 먼저 다녀오고 그래야 해!"
내 뒤통수를 때리는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손을 씻으며 생각한다. '엄마는 마치 파리대왕에 나오는 소라를 든 아이 같아."
소설 <파리대왕> 초반에 아이들은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소라를 들고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운다.
소라를 들고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우리 집 소라는 엄마만 들고 있지.
실제로 경청은 하지 않고 듣는 척만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엄마 때문에 우리 집 가족회의는 1년도 안되어서 없어졌다.
남편, 그리고 두 딸들에게 있어서 가족회의는 '엄마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샌드백이 되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가족회의가 있었을 때가 나았다.
가족회의가 없어진 이후로 엄마는 자신이 원할 때마다 자신의 불안과 떠오르는 생각, 말들을 가족들에게 마구 토해냈다.
이런 엄마를 반복해서 겪자, 나는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가 앉아보라고 하거나 차를 마시자는 말만 해도 온몸이 경직되곤 했다. 듣기 힘든 그녀의 일방적인 말들과 날 선 대화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엄마에게서 보이지 않는 소라를 빼앗으면서 외치고 싶었다.
"엄마말만 하지 마! 듣는 척만 하지 말고 입 닫고 다른 사람 말 좀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