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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Apr 16. 2024

자녀에게 가스라이팅 하는 부모

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는지 이제는 안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이 안 와서 유튜브 영상 편집을 하기 위해 앉았지만, 역시나 또 찾아온 엄마와의 기억 때문에 나는 글을 쓴다.


다이어트를 시작해 배고파서 잠이 안 온다. 나는 내 인생 역대급 몸무게를 찍은 후 지금 조금씩 감량 중이다.


나는 늘 마른 아이였다.

키가 172 이기 때문에 대학교 시절 일 년 간 쇼핑모델 피팅 모델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랐던 내가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 매우 많이 살이 쪘다.


지금 내가 보유 중인 몸의 살들은 지금의 남편을 처음 사귄 이후부터 서서히 쪘다. 결혼식 때도 나는 이전 몸무게까지 감량하지 못하고 살이 쪘었다. 나는 내가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내가 입맛이 없어서 뭘 많이 먹지 않았었던 거라는 것을 남편을 만나고 알았다.


예전에는 너무 말랐다고 늘 다른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였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말랐지? 생각해 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도 급식조차 전부 다 먹지 않았다. 밥은 절반 이상을 남기는 게 기본이었고, 점심을 넘긴 적도 많다. 대학교 때부터 남편을 만날 때까지 나는 그냥 너무 배가 고프거나, 친구들이랑 밥을 먹어야 할 때만 밥을 먹었기 때문에 나에게 식사 시간이란 것은 딱히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급격하게 살이 빠지기 시작했었다. 교복이 너무 커져서 수선집에 가서 줄일 때마다 친구들은 치마 길이를 줄였지만, 나는 허리와 등을 줄여야 했다.


그때는 나르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을 때였다.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이 되자, 두 딸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이혼을 두 딸이 그래도 나이가 좀 먹었다는 이유로 드디어 해야겠다고 했다. 내가 제발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만 고려해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우리를 위한 이혼이라고 했다.


이혼을 나중에 해달라니까 날 위한 거라고?


"너희 아빠랑 같이 살면 넌 벌써 거지같이 살고 있을 거야."

아빠를 따라가지 않고 엄마와 살게 된 지 1달 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너희가 아빠에게 갔으면 너희는 매일 아빠 푸념이나 들으면서 교육 지원도 하나도 못 받고 살았을 거야. 둘째 너는 분명 아빠가 너 대학도 안 보냈을 거다."


그녀는 우리가 맞다고 맞장구를 칠 때까지 아빠를 따라갔을 경우 생겼을 우리 인생의 불행에 대해 떠들었다.


자신의 불안과 짜증을 받아주던 배우자가 사라지고 나니, 이혼녀가 되었다는 사실과 혼자 두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부담감을 풀 상대가 필요했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그 상대로 나를 선택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짜증과 불안과 망상은 이전보다 두 배는 커졌는데, 이런 지랄을 받아 줄 사람은 이제 두 명 밖에 없었다. 그중 한 명인 첫째 딸은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늘 집에 늦게 들어오곤 했다.

나르 엄마의 폭언과 폭력적인 물건 던지기를 감당해야 하는 비중은 당연히 나에게 많이 집중되었다. 야자를 시작하고 나서는 나에게 짜증 내는 빈도가 매우 적었지만, 나르 엄마는 자고 있다가 내가 야자가 끝나고 10시에 귀가를 하면, 일어나서 나에게 앉아보라고 하고는 새벽까지 막말과 폭언, 그리고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들을 늘어놨다.


나는 나르 엄마의 폭언과 폭행을 겪은 날마다, 울면서 잠에 들어서 울면서 깼다. 거의 일주일의 절반 정도는 나르 엄마가 늘 나를 건드렸다고 보면 된다. 3년 내내 이렇게 지냈다.  


천장을 보고 제발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면서 잔 날들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또 눈을 떴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우울증이었다.


밝은 아침이 나에게는 제일 무서웠다. 또 이 집에서 저 여자와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나르 엄마가 나에게 물건을 던지고 폭언을 한 이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상냥하게 잘 잤냐고 물어볼 때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냉랭하게 돌아서는 나에게 너는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대도 싹수없게 대꾸도 안 하면서 엄마를 무시했다며 소리 지르는 나르 엄마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내가 연을 끊은 바로 그날까지 나르 엄마는 나에게 "너는 엄마를 언젠가는 버리고 떠날 나쁜 년이야." "너는 사실 엄마를 싫어하지 않니?" "너 엄마를 정말 좋아하니?"라고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 때부터이다.  


나르 엄마 본인도 알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한 폭언과 폭행 때문에 딸이 자신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사과는 하고 싶지 않고, 때릴만해서 때렸다고 진정 믿고 있는 나르시시스트 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게 딸에게 모질게 해 놓고는, 너는 엄마를 미워하면 나쁜 년이라고 또 가스라이팅 했다.


매일 같이 눈이 부어서 등교하는 나를 담임 선생님 들은 불러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요즘 매일 눈이 부어있네. 집에 혹시 무슨 일 있니?"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성적 때문에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의아해하며 얘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교내 상담 센터를 이용해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왜 교내 상담 센터도 이용하지 않았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감고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저녁에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폭언을 듣고 손찌검을 당하고 침대에 눕고 나면, '이대로 숨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렇게 힘들 바에는, 그냥 죽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숨을 참아 본 적도 있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세뇌 때문이었다.

그녀는 늘 말했다.

"어디 가서 우리 가족 욕을 해서는 절대 안 돼." "엄마가 너희를 매로 훈육한다는 사실을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 집을 무시하고, 엄마를 무시하게 될 거야. 너희도 무시할 거야." "어디 가서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고 말하고 다니면 안 돼."


"절대 엄마에 대해서 나쁜 점이나 불만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돼."


그렇게 말하는 건 너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밖에 안 돼.

사랑받고 자란 아이 같지 않아서 아마 그런 사실을 좋아할 친구들이 전혀 없을 거야. 이성은 말할 것도 없지.


내가 만약 고등학교 때 엄마가 하는 폭언과 폭행 때문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은 눈으로 눈을 감고 눈을 뜨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학교 선생님에게 말했다면, 친척 어른들 중 그 누구에게라도 말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나는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이런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내가 사랑 받고 부족함 없이 부모에게 지원받고 유복하게 산 아이라고 알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고등학교 때 친구 한명에게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둔 자녀들은 지옥에 산다.

자녀를 낳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낳아서 고통을 준다.


 나르 엄마와 손절 후 나는 입맛이 좋아져서 이전보다 포동포동 해졌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손절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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