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의 미학 - 남아있는 것들
번거로운 할머니
세상에 없던 게 새로 생기고, 많아지고, 높아지고, 번성해 나가는 흐름의 긍정성을 강조해 배울 때마다 왠지 반대편을 돌아보게 된다. 자꾸만 미지를 향해 칼날을 겨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 속상한 기색으로 잔류 지점을 살피고 있다. 생선의 가운데 도막만 발라먹는 손주 뒤를 쫓아대고, 여기도 살이 있는데, 여기도, 여기도, 이 부위는 일부러 먹을래도 먹기 힘든 건데, 하며 꼬릿살을 바르는 할머니처럼. 머리뼈를 추리는 요리사처럼.
이 마음은 취향이래도 어색하다. 성격이래도 의아하다. 다만 원래 그랬던 일이다. 주류가 아닌 물살의 간지러움을 좋아한다. 많은 가운데 도막이 가운데가 뭔지도 잘 모른 채 가운데에 있듯 변두리의 조각들도 똑같이 그렇다. 존재는 다만 발생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랬을 뿐이다. 높이 떠서 멀리 가는 일의 찬란을 알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뒤돌아보기와 내려다보기를 잊고 싶진 않았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시선 끝에는 반드시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타고난 존재를 소화하면서. 최선을 다해 스스로이기로 한 채.
작디작은 한국 땅이지만 어느 변두리를 가더라도 구석마다 삶이 있어 놀랍다. 단위가 다를 뿐 주어진 24시간은 어디에서나 똑같이 구르고 있다. 비행기, 기차, 버스, 자가용을 타면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찰나 속이다. 선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다. 나는 오래전 전남 해안선을 따라 걷는 아주 느린 여행을 했다.
걸으며 만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이 노인이었다. 관광지도 번성하지도 않은 터전이 내어주는 풍경에는 그저 삶 밖에는 안 들어있다. 많은 존재의 기원이었을 땅은 휑하니 비고 배 위에서 바닷것들을 힘주어 끌어올릴 젊은이가 모두 쓸려나간 마을이 휑하니 비고 소리 높여 말할 기운도 이제 대부분 기화해 쪼그라든 할머니의 몸도 비었다. 이 모든 사실에서 어떤 유감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해 보이는 할머니가 다만 찾아온 마을회장 청년(이지만 70대로 보인다)에게 말했다.
‘아, 안 해. 나는 곱손 많은 건 안 하고 자와….’
문헌화되지 않은 말, 할머니가 돌아가면 꼭 함께 사라질 것만 같은 소리. 크기는 작지만 의지와 심술은 묻은 소리. 듣기 좋았다. 할머니는 모를 거다. 그녀의 말을 하나하나 받아 적고 보존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그는 그저 그냥 눈앞의 번거로운 일을 안 하고 싶을 뿐이다. 타지 나간 자식들 얼굴 한 번 더 보면 좋겠을 뿐이다. 나고 태어난 고장의 정취는 모르겠고, 내 말씨가 귀중한지 별 관심 없을 거고, 그냥 스스로인 채 앞뜰과 앞바다와 난쟁이 같은 집을 돌아다닐 뿐이다.
난 그녀가 덜 서운했으면 좋겠다. 내가 대신 서운해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도 기우일뿐이다. 그녀는 이미 차고 넘치도록 안 서운해 보인다.
사라지는 세상에서 나는 자꾸 남아 있는 것들을 본다.
오래된 말씨, 식은 밥 냄새, 손끝에 남은 감정의 온도.
그것들이야말로 삶의 증거이자, 가장 오래 버티는 마음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