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러운 생존의 기술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일수록 기억에서 더 빨리 사라진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흐릿해진 지 오래인 경우가 많다. 사람은 그렇게 자꾸만 바람과는 반대로 기능하는 것 같다. 그러길 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태어난 이 중 특정 확률을 거쳐 어른이 된 존재 중에서 또 특정 비율의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보리라 마음먹는다. 대단한 신념을 가진 이도 있을 것이고 오로지 그것만이 모나지 않은 선택지라 믿어 그쪽으로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 세대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도드라졌었다고 들었다. 부모님의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삶의 미덕은 폭력적일 만큼 단순했다. 굶지 않고, 벌이할 줄 알고, 내 몫의 새끼 두엇 두면 그만한 행복은 더 없는 거였다. 그렇게 부모가 된 자신을 미처 깊이 헤아리거나 멀리 상상해 볼 틈 없이 많은 성인이 가족을 꾸린다.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 사이, 유독 많은 아기가 태어났다.
똑똑하지만 애처로운 어린 아가씨였던 나의 엄마는 얼떨결에 엄마가 되어 어찌할 바 몰랐다고 했다. 너무나 외로운 아가씨였던 탓에 갓 태어난 첫째 아들이 그만 미래의 대들보처럼 느껴지고 갓 말을 튼 둘째 딸은 벌써 당신을 위해 태어난 동무처럼 느꼈다고 한다. 많은 비극이 이 비슷한 광경에서 시작한다. 특별할 것 하나 없도록 흔한 과오가 그만큼 촘촘히 집집마다 심어져 있기 가능한 시절이었다. 때로 우린 그것을 낭만이라고도 부른다.
아이가 3살까지 온 생애의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다. 자아가 채 만들어지기 전의 어린 존재가 얼마나 폭발적으로 빛나며 사랑스러운지 단박에 전하는 말이다. 한번 태어난 아기는 멈추지 않고 자라므로 두 번 보아도 아쉬운 시절일수록 두 배는 빨리 지나가게 되어 있다. 엄마가 슬픔 또는 분노에 푹 잠기지 않고 지낸 시기도 분명 있었다고 한다. 듣기로는 그때쯤이 마지막이었다. 둘째 딸, 내가 존재만으로 찬란히 빛나던 시기. 아직 내가 나이기만 해도 충분하던 나날. 그리고 세상에 엄마와 나 외에도 수많은 이와 장소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내가 실은 엄마의 딸뿐 아니라 나 자체만 일 수도 있는가 의심하게 되면서, 내 효도 역시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의 존재로 유예되던 허약해빠진 부부의 연이 끊어졌을 때 나는 아직 뾰족한 10대였다. 그리고 시간에 비해 곱절로 압착된 시절을 건너온 20대 초중반의 나와 다시 마주 앉은 그녀는 마치 이 여자가 누구지, 의아한 생경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성년을 맞은 아이였다. 엄마는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찬란한 내 아기 얼굴을 평생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감히 잊을 수 없다는 느낌으로. 그리고 그 외 모든 시절은 남 일처럼 잊었다. 못내 버겁기만 한 마음이므로. 다만 그녀의 기억력이 닿지 않는 모든 부분을 내가 기억한다. 눈물겹도록 서로 겹치지 않게, 칼로 자른 듯 정확히 떨어지는 슬픈 협동이다.
똑똑한 여인이었다. 당신의 바람처럼 정방향으로 기능하며 노인이 되어가는 애처로운 중년이다. 더 이상 기민하게 반짝이지 않으나 무디어진 만큼 부드럽게 웃을 줄도 아는 것 같다. 그 살아온 생에서 맞닥뜨린 일 중 간곡히 원하고 치밀히 계획했던 일은 손에 꼽겠지만 원하는 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기에 더더욱 힘을 빼고 웃을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