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는 사람들(3)

부산스러운 생존의 기술

by 김여진


집이 없는 사람들(3)


기뻐서나 슬퍼서 술을 얼큰하게 마시다가 집에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어쩐지 어린아이와 같아서 응당 화가 나야 맞을 일에도 나는 격렬한 반응을 온전히 내어놓는 대신 윤활액과 같은 짧은 한숨을 흘리며 말보다 몸을 재게 놀리곤 했다. 대학가의 밤은 낮보다 길었다. 어느 이른 아침 이미 몇 시간째 엎드려 있던 여성의 하반신으로부터 의자 다리를 타고 바닥을 적시며 퍼지던 소변을 목격한 날에도 그랬다.


그건 분노보다 차라리 웃김이나 슬픔과 더 가까울 장면이었고, 곧 도착한 순경들이 그녀를 부축함과 동시에 격렬히 닿고 싶지는 않은 기색으로 순찰차에 구겨 넣는 것까지 확인하자 오히려 웃겨 죽을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여긴 내 집이 아니고 그녀에겐 악의가 없었고 이젠 자기 집도 잘 찾아갈 테니까. 그건 악의 없는 배설이었으니까. 사람을 진짜로 피곤하게 하는 건 배설이 아니라 악의다.


카페 매니저 하는 늘 좀 불행해 보였다. 예쁜 얼굴이 항상 구겨져 있어서 그녀의 표정을 보는 이들은 불안했다. 칭찬, 격려보다 지적을 즐기는 퍼석한 목소리 톤이 껄끄러웠다. 유치하게도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꼭 수년 전 학교 교실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보다 열 살은 더 든 여자가 갖기엔 너무 위태로운 존재감이어서 그랬다. 간혹 파트 타이머가 구해지지 않으면 그녀가 바에 들어와 함께 일했다. 그럼 별일 아닐 일들도 자꾸 별일이 되곤 했다.


“저기요. 이거 바꿔주세요.”

“무슨 일이세요, 손님?”


클레임이 있었다. 바닐라 라테가 달다는 설명은 없었지 않냐고, 이게 이렇게 달 줄 알았으면 그냥 카페라테를 시켰을 거라고. 흔하진 않지만 더러 있는 일이고, 응대 재량에 따라 웃음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는 돌연 범인을 색출했다. 해당 손님의 주문을 받은 건 나였다. 하가 성큼 다가와 내 손목을 거칠게 끌고 손님 앞에 세웠다.


“사과하세요. 여기 손님한테요.”

“... 네?”

“주문받을 때, 바닐라 라테 맛에 대해 제대로 설명드리지 않아서 죄송하다고 사과하세요.”

“…네…?”


순식간에 머리에 스팀이 찼다. 눈앞의 손님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손님은 아직 사과의 시옷 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는, 분명히 화를 내고 있었다. 무언가에게. 그 자리엔 사과를 받을 사람도, 원하는 사람도, 할 사람도 없었다. 왠지 모르게 잔뜩 화가 난 하만이 내 팔을 당기며 작게 씨근거리고 있었다.


그다음 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난 어쨌건 눈앞 손님의 당황이 이젠 진짜로 분노가 돼 버리기 전에(‘뭐든 간에 아무튼 너무 죄송합니다’)사과를 전했다. 그다음 하의 손을 힘주어 떼어냈다. 그녀가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인 건 원래 알았다. 그 순간 이후로 더는 그녀와 함께 일할 수 없게 되었음도 알았다.


또 일정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안토니오의 후일담처럼 매니저 하의 소식이 전해졌다. 11살이 어린 남자 파트 타이머의 개인 연락처로 ‘오늘 밤 같이 있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가, 나 이후에도 몇 여자 파트 타이머들과 갈등을 빚다가, 본사로부터 내려오는 실적 압박과 지시 보고 체계에 버거워하다가, 어느 날 퇴사한 후로 아무도 하의 소식을 모른다고.


그날이 아니었으면 사실 나도 하를 특별히 기억하고 지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살짝 삔 발목에 침을 맞으러 어느 한의원에 들어갔을 때 수납 직원 자리에서 하를 봤다. 분명히 커피에 전문성이 있다고 했던…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미간에 주름을 잡고 할머니를 어르듯 핀잔하듯 말하는…하. 몇 년이 흘렀는데도 그때 그 표정 그대로였다. 그녀는 집이 없는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하가 돌아갈 집은커녕 마당 한 뼘조차 그 마음속엔 들일 틈 없음이 분명했다. 물론 나도 여전히 집은 없었다. 집이 실제로 있는지 보다 중요한 건 집이 있는 사람처럼 사는가 아닌가였다.


순간 알 수 있었다. 이후로도 어디에서 지내고 무슨 일을 하건 돈을 많이 벌고 집을 가지건, 아니건, 누구나 평생토록 돌아갈 곳 없는 이처럼 살 수도 있는 것임을, 또 반대로 누군가는 집이 없어도 있는 듯 살 수 있음을 알았다. 침을 다 맞고서 나는 괜히 발에 더 힘주어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픈 사람처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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