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러운 생존의 기술
집이 없는 사람들(2)
양 오빠는 훤칠했다. 전형적으로 서구권 취향에 꼭 맞는 핸섬 아시안이었다. 강인하면서도 길고 야무진 손으로 빠르게 와인 잔을 닦아냈다. 그에게 배운 와인 잔 광내는 기술이 이후의 알바들에서 두고두고 유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밀라 언니는 정말로 ‘참’한 여성이었다. 중동에서 온 여인들은 잘 교육받은 양갓집 규수와 같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기본으로 갖춘 것처럼 보인다. 힘들 때 얼굴 찌푸리지 않고 아플 때 소리 내지 않았다. 직원 식사에 들어간 돼지고기는 언제나 단정히 골라내곤 피클과 나물로 야무지게 식사했다. 고향에 동생이 여럿이라는 그녀에게서 물 흐르듯 부드럽고 깍듯한 응대법을 배웠다.
없는 부족함이나 당하는 아픔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도 언제든 내어줄 준비를 한다. 그들을 그저 ‘화교 걔’ ‘말 잘 듣는 중동 여자애’쯤으로 부르던 한국인 중간관리자의 일과는 사람 평가와 사람 흉보기 아니면 자기 자랑하기가 다였다. 그는 오로지 본인의 급여를 지급하는 이 앞에서만 비로소 입을 다물고 웃을 줄 알았다.
나는 이탈리아식으로 에스프레소 마시는 법, 응대에 필요한 영어 실력과 값비싼 식기 다루는 법, 온갖 이탈리아 단어와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거리에서 부드럽게 허리 굽히는 법 등을 훈장처럼 챙겨 다음 일터로 사뿐히 점프했다. 훗날 들었다. 레스토랑은 이사했으며 안토니오는 본인 나라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제는 그에게 집이 있길 기도했다. 이제는 그에게, 하루를 지탱하기 위해 너무 많은 카페인과 알코올을 들이붓지 않아도 되는 오늘이 있기를.
다음엔 큰 대학 정문 바로 앞의 큰 커피 체인 직영점으로 출근했다. 방대한 종류의 음료와 샌드위치를 만들다 보면 하루 반나절이 갔고 출퇴근 시 매니저 하에게도 알림이 갔다.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의 진가를 그 매장에서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주간의 손님은 카페를 카페로 쓰지만 야간의 손님은 카페를 임시 숙소로 사용한다. 새벽불이 밤새 켜져 있는 소란스러운 동네에서 마구 치이다 너절해진 몸을 이끌고 흘러들어온 임시 노숙인들이 카페 구석마다 널브러지곤 했다. 시켜두고 한 모금 채 빨기도 전 깊은 잠에 빠진 주인 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밤새 다 녹아빠져가며 테이블 위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