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러운 생존의 기술
집이 없는 사람들(1)
커피 샷 내리는 법은 안토니오에게서 처음 배웠다. 안토니오는 남부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계획하지 않았겠지만 타지에 정착한 이들이 종종 그렇듯 어쩌다 그 나라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얻어 이제는 자기 고향 정통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제 화이트와인과 크레마를 두껍게 띄운 에스프레소로 한국에서의 나날을 지탱하는 듯 보였다.
안토니오에게 샷 내리는 법을 배우며 에스프레소 머신이 그렇게 크고 뜨거운지, 그리고 그렇게까지 비싼지도 전부 처음 알았다. 그때 난 친구와 방세를 반씩 나눠 내는 반지하 골방에 살고 있었다. 보증금 60에 월세 60, 그게 집이 없는 우리가 나란히 몸 누일 공간의 대가였다. 이깟 커피콩 우리는 기계가 내 집보다 6배 이상 비싸다니… 허탈하고 슬펐다. 어리고 가난한 이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그 시절 돈 없고 집 없는 내가 가장 불쌍하고 서글펐는데 사실 안토니오 역시 시 나 못지않게 슬펐던 것 같다. 작은 요새와 같은 레스토랑을 나서면 바깥 세계는 즉시 눈을 부릅뜨고 이방인인 그를 주시했을 것이다.
식당의 오너였음에도 남자는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말 통하지 않는 나라로 유학 온 십 대 소년 같은 얼굴이었다. 내부를 몇 바퀴 돌면서 다양한 국적의 파트 타이머들에게 인사하거나 참견하고 집기들을 쓱 훑고는 가장 후미지고 아늑한 구석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이탈리아 친구들을 불러 모으며 카페인과 알코올을 들이킬 때 비로소 내 집 마당에 앉은 듯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레스토랑의 이름 뜻은 ‘안토니오의 집’ 이었다.
안토니오는 한국어를 못 하고 영어를 대충 했다. 나는 이탈리아어를 못 하고 영어를 쪼금 했다. 정 많으면서도 약간 부산스러운 그의 잔소리하는 기색이 밉지 않았다. 거진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몇 명의 한국인과 그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들이 일하는 다국적 업장이었다. 동료로 화교 양 오빠와 중동계 밀라 언니도 만났다. 하나같이 집이 없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으로 돈 벌러 온 것도 아니면서 차마 약한 소리 할 수 없어 빼지 않고 일했다. 절박할 정도로 싹싹하고 부지런한 일꾼의 면모 중 상당수를 그 공간에서 배웠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