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러운 생존의 기술
일과 후 아저씨(3)
사회와 약속한 시간 동안 오빠, 삼촌, 아빠, 남편, 직업인, 어른을 기껏 잘 살아내던 오저씨들은 한 번씩 꼭 답지 않게 야물잖은 손길로 영업 마감을 대강 쳐내고선 가게 한켠의 개러지로 성급히 모여들어 수군수군수군댔다. 해당 차고로 말할 것 같으면 퀴퀴하고 퀘퀘하고 침침하고 비좁았으나 빽빽히 놓이고 걸린 모든 공구와, 기계부품과, 짐승의 뜯어진 심장처럼 대충 아무 데나 널브러진 온갖 엔진 덩어리에서까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광이 번쩍번쩍 나는 수상한 공간이었다.
거긴 아마도 일종의 남자들의 아지트였던 모양이다. 하기야 어떤 연인, 아내, 가족이 주거공간에 그러한 공간 마련하기에 찬성하겠는가. 그때 깨달았다. 아, ‘가게 하는 김에 남는 공간에 만든 작업실’이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다. ‘이런 걸 하고 싶어서 공간을 마련했는데 이제 겸사로 가게도 하’는 것이었다… 웃기는 아저씨, 아니 오저씨 넷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가게 일을 거의 다 익혀가던 어느 날 사장님은 가게 주차장에 폐차 직전처럼 세워져 있는 티코 곁으로 나를 데려가 기대에 찬 어깨를 부풀리며 거들먹댔다. 그때까지 진짜로 그 티코가 고철이 아닌 무엇이라고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어느새 다가온 쌤까지 맞은편 또 다른 티코(이런 차가 두 대나 있다니!)로 다가가 꼭 애인처럼 어루만졌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따 가게 문 닫고 우린 모두 이 녀석들의 시승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물론 내 의사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로 내 퇴근이 저지당했다. 곧 출발(어디로요?) 할 거니까 잠깐 이거 먹으면서 기다리라며 구 오빠가 내 손에 샌드위치를 쥐여 줬다. 와 진짜 끝내주지 않냐(뭐가요?)면서 디디 오빠가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얘를 탈 건지 쟤를 탈 건지(둘 다 별로 안 타고 싶어요…) 미리 정해두라며 사장님과 쌤이 아우성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저 빵이나 우물거리며 심드렁히 앉아있었다. 어느 쪽 티코를 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 차리니 차 안이었다. 눈치채기도 전에 내장이 쏟아질 기세로 차체가 튀어나갔다. 와, 미쳤다.
엔진이 굉음을 냈다. 낡디낡은 티코 차체가 다 바스러져 스러질까 무서웠다. 오저씨들이 실성한 것처럼 웃어댔다. 살면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드라이브는 처음이었다. 말도 안 되게 낡은 몸에 심하게 정비된 엔진을 끼운 두 대의 티코가 미친 말처럼 심야의 서울을 관통했다. 말 그대로 미치도록 재미있었다. 어떤 슈퍼카를 타고 달려도 그것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자주 우리는 심야 티코 드라이브로 지독한 술장사 냄새를 휘발시키곤 했다. 낡았지만 아직 짱짱하다는 점에서 몹시 닮은 티코와 아저씨들과 앳된 여자애가 새벽 3시에 파주 장단콩 정식을 먹겠다며 가게로 밀고 들어오는 걸 본 점주의 표정은 몇 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웃기다.
날 희롱한 아저씨와 날 아끼던 오저씨들은 아마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다만 속절없이 두들겨 맞다 녹슬어버렸는가, 끈질기게 조이고 기름칠해 왔는가의 차이 정도겠다. 그렇게 누군가는 고철이, 누군가는 클래식 빈티지가 된다. 말장난 같지만 품격 있는 퇴물 되기는 끝장나는 최신식이기보다 어렵다.
고요한 밤 나지막이 돌아가는 통돌이 세탁기 모터 소리에서 문득 그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모두 잠든 시각 환한 전구를 켜고 출항하는 어선의 모터 소리로 예전 그 티코의 엔진음을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일종의 향수일지 모른다. 온 힘 다해 세대를 견인한 한물 간 모터 소리에 대한. 그와 닮은 아저씨들의 묵묵히 툴툴대는 목소리를 향한. 세대는 변해도 역시 통돌이 모델이 빨래는 제일 깨끗하죠, 자식 자랑하듯 말하던 중고 가전 업소 아저씨의 주름살에도 묻어 있는. 그 속에 숨 가쁜 밥벌이의 굴레와 반복이 모두 들어있다.
대체로 아저씨들은 아줌마들보다 유약하고 안쓰러운 면이 있으므로 왠지 그들을 미워하기란 어렵다. 필요를 증명하며 삶의 이유를 찾는 그들의 원초적 존재성은 눈물겹게 웃긴 데가 있다. 사실, 사랑하지 않을 방법을 모르겠다. 쟁반 가득 나르던 칵테일의 종류는 대부분 잊었지만 오저씨들이 내게 보여주고 가르쳐 준 낡은 기계의 멋짐과 낭만적 삶의 태도만은 가능한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오저씨 1,2,3,4호가 가게 구석구석 심어둔 믿음직한 일상의 루틴들과 금방이라도 증기를 뿜어낼 것처럼 씩씩거리던 가게의 커다란 환기구, 쇠고기 패티 냄새와 진한 기름 냄새까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