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후 아저씨(2)

부산스러운 생존의 기술

by 김여진


일과 후 아저씨(2)


누가 봐도 아저씨라는 걸 본인들만 절대로 인정 못 하는 이 험상궂은 남자들을 오빠라 부르려니(그들이 간절히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너무 웃겼다. 매일 숨가쁘게 돌아가는 전쟁 통을 뛰어다니며 술을 팔면서 편의상 한 글자라도 짧은 ‘오빠’ 호칭을 이용하긴 했지만 마음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난 그들을 대충 ‘오저씨’로 명명했다. 가게엔 총 4명의 오저씨가 있었다.



오저씨 1 - 대빵. 사장님. 신장이 다소 작지만 그걸 차치하고 남을 정도로 체격이 단단. 영어를 잘 하고 포옹을 좋아한다. 맨날 자기가 포옹하자고 하면서 내가 덥석 크게 안기면 “난 포옹할 때 이렇게 푹 안기는 애는 진짜 첨 봐”라고 수십 번 말함. 엄청나게 많은 칵테일 레시피를 외우고 있다.


오저씨 2 - ‘구 오빠’. 키랑 덩치랑 발(그의 신발에서는 거의 햄스터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이 놀라우리만치 큰데 얼굴은 이정재를 닮았고 눈물과 문신이 많다. 매일 내 체형을 분석하며 내게 끊임없이 킥복싱을 권함(“너는 인파이터야! 인파이터!!”). 거대한 손으로 내려치며 고기 패티를 만든다.


오저씨 3 - ‘쌤’. 샤프하고, 베레모를 좋아하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종종 내가 살이 약간 찌면 귀신같이 먼저 알아채 놀림. 재미있는 효과음이나 탄식 소리를 자주 내서 관찰하는 맛이 있었다. 공구를 잘 다뤄 매일 가게 이곳저곳을 타고 올라 뭔가를 깡깡 두드려 고친다.


오저씨 4- ‘디디 오빠’. 그나마 가장 실제 오빠에 가까운 오빠. 댄서인데 머리 스타일을 집착적으로 만져대는 통에 내가 다 민머리인 사장님 눈치를 보게 만든다. 다리가 길어 서빙에 큰 효율을 보이는 믿음직한 동료이나 대화 시 몇 시간이고 본인 얘기만 끊임없이 할 수 있기 때문에 1:1 대화는 시작도 않는 편이 좋다.



나는 오래전 오저씨 3의 제자였던 인연이 있어 그를 따라 가게 일을 순조로이 배웠다. 나를 키운 친오빠와 수많은 야생 원숭이 같은 오빠들에 길들여진 넉살로 나머지 오저씨들과도 순식간에 친해질 수 있었다. 남자들의 단순 명쾌함에서 사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은 배부르고, 일이 잘 돌아가고, 복슬한 강아지나 여자만 근거리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하는 소박한 부류다. 또한 난 아마 그 가게에서 일했던 애들 중 가장 어린 여자애였던 것 같다. 오저씨들은 새 동료를 맞아들인 야생 개 무리처럼 다정했다. ‘구 오빠’는 본인이 먹는 크기의 햄버거 양에 버거워하는 최초의 홀 직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지만 이내 이후의 식사부터는 꼭 내 몫으로 와퍼주니어만 한 미니 버거를 내어주었다.


빡센 회식 문화로 악명 높은 오래된 회사들 곁 가게인지라 주 손님 층은 화이트칼라 양복 아저씨들이었고(야, 쟤 예쁘다. 누구? 이리 불러봐. 뭐 시켜봐. 왔다! 예쁜데? 에이…아닌데?), 간혹 개중 일부는 아가씨 없는 술집에 아쉬운 대로 나라도 희롱하고자 했는데(아가씨, 몇 살이야? 아이구 피부가 보들보들하네~) 그런 경우 오저씨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유용했다. 그들이 젠틀하면서도 험악해 보이려 노력하는 동안 난 매끄럽게 자리를 벗어나면 되었다.


나 역시 비록 아직 솜털이 보송하지만 알맹이는 살짝 돌아 있었기 때문에, 희롱당했다는 사실에 별 개의치 않으며 사장님이 따라주는 테킬라 샷을 털어 넣고 다시 홀로 튀어 나가곤 했다. 그때만큼은 사장님도 내 음주를 부스터 샷쯤으로 퉁 쳐 주었으며, 짐짓 상쾌한 얼굴로 다시 희롱 테이블로 돌아가 응대를 재개한 내 얼굴을 보고 더 부끄러워하는 건 언제나 희롱 아저씨들이었다. 우리 가게엔 미움 대신 유머가 있었다. 그 안의 모두가 잘 기름칠 된 부품과 같이 호흡 좋게 맞물려 돌았다. 최고로 멋지진 않지만 끝내주게 간지나는 자동차와 같았다. 마감한 심야의 가게에서 역시 항상 향, 미제 담배, 테킬라… 그리고 가끔 기름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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